[도현정의 현장에서] 정작 ‘학교’는 빠져있던 ‘학교폭력’ 대응

2023. 3. 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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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이거 형제폭력이야."

무슨 소리인가 들어보니 학교에서 벌어진 폭력은 '학교폭력'이니, 형제 간 폭력은 '형제폭력'이라는 논리다.

학교에서 요즘 학폭 예방교육을 철저히 시키다 보니 모든 관계 간 마찰을 '폭력'으로 치환해 얘기한 것이다.

피해자 측 요구가 있으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열리고, 학폭위는 교육지원청으로 넘어가 학교는 손을 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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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이거 형제폭력이야.”

자려고 누워 뒹굴거리던 아이 중 막내가 형과 다리가 부딪치자 뜬금없이 외쳤다. 무슨 소리인가 들어보니 학교에서 벌어진 폭력은 ‘학교폭력’이니, 형제 간 폭력은 ‘형제폭력’이라는 논리다. 학교에서 요즘 학폭 예방교육을 철저히 시키다 보니 모든 관계 간 마찰을 ‘폭력’으로 치환해 얘기한 것이다.

내친김에 학교에서 한다는 학폭 예방교육이 어떤 건지 더 들어봤다. 우선 가위, 풀 등 간단한 준비물도 반드시 지참하게 강조한단다. 빠뜨린 준비물을 주변 친구에게 빌리는 행동을 절대 금지하기 때문이다. 준비물 빌리는 행위도 친구 간 ‘힘의 우위’가 생기는 단계에서는 학폭으로 간주될 수 있어서란다.

어떤 형태든 친구들과의 신체접촉을 전면 금지하는 것도 학폭 예방교육의 일환이다. 친구가 좋아서 끌어안거나 팔짱을 끼는 행위도 자칫 불쾌한 신체접촉으로 몰릴 수 있으니 아예 논란의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다. 한창 친구들과 유대감을 쌓을 시기의 아이들이 코로나19에 이어 학폭 때문에 거리두기를 강요당하는 셈이다. 얘기를 듣다 보니 온라인상 학폭을 예방한다며 중·고교에서는 ‘카톡 단톡방 금지’를 강조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게 과연 근본적인 교육이고 해법인지 묻고 싶다. 시비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 친구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행동을 하나씩 전면 금지시키는 것. 폭력 등의 충돌이 있을 때 가장 첫 번째는 피해 입힌 학생이 피해 입은 학생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 아닌가. 그래야 반성과 사과가 나오고, 피해 입은 학생도 마음을 회복할 것 아닌가. 시작은 타인 역시 나와 동등한 인격과 권리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역지사지를 할 수 있는 인성교육은 제쳐두고 문제 소지가 있는 행동만 ‘전면 금지’딱지를 붙이는 것. 이건 지극히 행정편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의 학폭 대처방안은 학폭 근절이란 목표에 부응하지 못한 채 법률가들에게 틈새시장만 열어줬다. 그 배경에는 학교 교육의 부재가 있다. 학폭 예방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대응 과정에서 학교의 역할도 교육보다 행정 지원에 쏠려 있었다. 피해자 측 요구가 있으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열리고, 학폭위는 교육지원청으로 넘어가 학교는 손을 떼게 된다. 학폭위부터는 아이의 미래를 걸고 부모들이 덤벼드는 싸움이 된다. 전문변호사까지 동원해 어른들이 벌이는 전쟁 중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여지는 더 없어지게 마련이다.

학폭 예방에 대해서는 교사들도 엄벌주의보다 학생지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부터라도 학교, 교육의 역할을 세우려면 실효성 있는 학폭 예방교육을 해야 한다. 전교생이 모여 동영상 보고 친구에게 가위 빌리지 말라는 게 교육의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 설령 문제가 발생해 학폭위 등으로 공이 넘어갔더라도 학교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본인의 행동을 돌아볼 계기를 마련해줘야 한다. 엄벌은 그 이후에 꺼내도 늦지 않다.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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