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회담 날 우크라 찾은 일본 총리“비살상장비 등 지원” 약속

이종섭·이윤정 기자 2023. 3. 2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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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해 전사자 추모의 벽에 헌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비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전격 방문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기시다 “평화 회복 때까지 우크라이나 지원” 약속

기시다 총리는 이날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을 한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평화가 회복될 때까지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NHK 등이 보도했다.

기시다 총리는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일본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71억달러에 더해 5억달러(약 6500억원)를 추가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이와 관련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기금을 통해 살상 능력이 없는 3000만달러 상당의 장비를 제공하고 에너지 분야 등에서 4억7000만달러를 무상 지원할 것 이라고 설명했다.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국제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폭거”라며 “키이우와 부차를 방문해 참극을 직접 보고 이를 다시 강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또 오는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회의에 젤렌스키 대통령을 초청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기시다 총리를 “국제질서의 강력한 수호자”라고 표현하며 G7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기시다 총리에게 일본이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사업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루 휴가’ 내고··· 극비리 추진된 우크라이나 방문

22일 아사히신문 등 현지 매체들은 이번 방문이 극비리에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총리가 해외로 출국하기 위해 밟는 국회 사전 보고도 없었고, 관저 간부나 외무성 관계자도 총리의 우크라이나 방문 일정을 몰랐다.

총리 관저는 이달 초 자민당에 “3월 22일은 총리의 국회 출석 일정을 넣지 말아 달라. 총리를 쉬게 하고 싶다”고 전달했다. 국회는 총리의 인도 귀국 직후 사정을 고려해 하루 휴양을 받아들이고 일정을 조정했다. 앞서 기시다 총리는 지난 19일부터 인도를 방문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21일 오후에 귀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는 극비리에 우크라이나를 방문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인도에서 일본으로 오는 대신, 폴란드 남부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눈에 띄지 않도록 정부 전용기가 아닌, 19인승 민간 제트기로 이동했다. 일본 야구대표팀 투수 오타니 쇼헤이가 지난 1일 미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올 때 탔던 것과 같은 기종이다.

이후 차로 우크라이나 국경과 인접한 폴란드 프셰미실 역까지 이동했고, 이곳에서 열차로 10시간을 달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도착했다. 기시다 총리는 정장 차림으로 키이우역에 내렸고, 마츠다 쿠니노리 우크라이나 주재 일본 대사, 에미네 제파르 우크라이나 외교부 1차관 등이 그를 맞이했다. 지난달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같은 경로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방문 때 휴대전화를 수거하는 등 비밀 유지를 약속받고 기자 2명을 동행시켰지만, 일본 정부는 사전 정부 유출을 경계해 기자들을 동행시키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같은 시간 총리와 인도에 동행한 기자단은 대혼란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갑자기 우크라이나 방문 속보가 나오자 동행 기자단은 현지 외무성 담당자에게 설명을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자도 공지를 받지 못해 “저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확인 중”이라며 급히 외무성에 연락을 취하는 등 현장 혼선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기시다 총리 방문 전 러시아에 방문 사실을 알렸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미 “강력 지지” ···중국 “정세 안정 위해 노력해야”

기시다 총리의 이번 우크라이나 방문은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처음이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투가 진행되는 국가 또는 지역을 방문한 첫 일본 총리이기도 하다.

기시다 총리는 5월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일본이 G7 의장국으로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주도하는 자세를 보이고자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으로 분석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우크라이나를 찾으면서 G7 정상 가운데 우크라이나 땅을 밟지 않은 정상은 기시다 총리가 유일했다.

일본 NTV뉴스는 “기시다 총리가 극비리에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데는 G7의 의장국으로 히로시마 정상 회담을 앞두고 ‘초조함’을 보여주는 행보”라고 해석했다. 일본 총리가 직접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국제사회에 우크라이나에 연대하는 자세를 보여주기 위한 행보였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은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한 당일 기시다 총리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한 데 대해 일본이 G7 의장국으로서 중국의 중재 외교에 맞서려는 목적이 있다고 전했다.

미국과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미 국무부는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 시점에 맞춰 우크라이나를 찾은 기시다 총리를 향해 지지 메시지를 보냈다.

베단트 파텔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지지하고 유엔 헌장과 그 보편적 가치를 지지하는 기시다 총리의 역사적인 방문 결정을 강력 지지한다”라고 밝혔다.

반면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기시다 총리의 우크라 방문에 어떤 입장인가라고 묻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자 “국제 사회는 평화와 협상을 촉진하는 올바른 방향을 견지함으로써 우크라 위기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일본이 정세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길 바란다. 그 반대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기시다 총리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일본과 서방의 동맹을 강조하는 행보”라며 “아시아에서 가장 큰 두 경제국인 중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이 같은날 각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면 지정학적 분열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종섭 기자 nomad@kyunghyang.com,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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