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푸틴 “친애하는 친구”…한계 없는 협력 재시동
국제사회 신냉전적 진영화 가속
지난해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거리 두기’에 고심해왔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일(현지시각) 모스크바 방문을 계기로 러시아와 협력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이는 결단을 내렸다.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깨뜨리고, 중·러가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다극 체제’를 형성하기 위해선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모습이다.
20일 오후 시 주석은 모스크바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에서 6개월 만에 얼굴을 마주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웃음을 띠며 악수했다. 푸틴 대통령이 “중국 친구들은 중-러 관계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대부분의 국제 현안에서 공정하고 균형 잡힌 입장을 보여줬다”며 감사의 말을 전하자, 시 주석은 “우리 두 나라는 함께 앞으로 끌어가야 할 많은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다”고 화답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은 “당신들의 제안을 우리는 진지하게 살펴보았다”고 말했다. 중국이 지난달 24일 내놓은 중재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두 정상은 서로를 “친애하는 친구”라 부르며 우정을 과시했다. 두 정상은 21일 ‘포괄적 동반자 관계 심화’와 ‘2030년을 목표로 한 경제협력’에 대한 두 건의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이날의 우호적인 만남이 이뤄지기까지 두 나라는 적잖은 부침을 겪었다. 두 정상은 지난해 2월 초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계기로 만나 “두 나라 간의 우정엔 한계가 없고(no limits), 협력하지 못할 영역이 없다”는 내용이 담긴 장문의 선언문을 내놓았다. 미국 등 서구 주요국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확장하고, 오커스(AUKUS)와 쿼드(Quad) 등을 통해 포위망을 강화해오자 중·러가 협력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는 외침이었다.
하지만 약속했던 ‘한계 없는 협력’은 이뤄지지 않았다. 러시아가 이 만남 직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크게 놀란 시 주석은 대외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면서, 러시아가 요청하는 무기 지원에 응하지 않았다. 중국 국가지도자로서 ‘3연임’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발생한 돌발 변수로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됐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두 정상의 관계도 차갑게 식었다. 시 주석은 지난해 9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때 푸틴 대통령과 만나 “러시아와 협력해 혼란으로 뒤엉킨 세계에 안정을 가져오겠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당혹한 푸틴 대통령은 “이(우크라이나 전쟁)와 관련한 중국의 의문을 이해하며, 오늘 그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설명할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올해 2월 초 발생한 중국발 ‘기구 갈등’으로 인해 미국과 관계 개선에 실패한 뒤 중국은 결국 다시 돌아와 러시아의 손을 잡는 길을 택했다. 시 주석은 이달 중순 중국 국가주석 3연임을 확정하자마자 첫 해외순방 행선지로 모스크바를 택했다. 세번째 5년 임기를 확보한 뒤 ‘미국과 대결’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서 ‘다소 불편했던’ 러시아를 다시 한번 강하게 끌어안은 것이다.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은 2019년 6월 이후 약 4년 만이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의 방문을 크게 환영했다. 중국은 미국·유럽의 혹독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에 경제를 떠받치는 사실상 ‘유일한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인 원유·천연가스를 수입하고, 러시아 경제에 꼭 필요한 생필품을 수출한다. 러시아는 이를 통해 결정적인 경제 파탄을 피할 수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20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낸 기고에서 중-러 관계가 “역사상 최고점에 있다”고 말했고, 그날 오후 시 주석의 얼굴을 마주 보며 양국 간엔 “수많은 경제적 협력 이슈가 있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두 대국의 전략적 접근을 바라본 미국은 날 선 반응을 보였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0일 중국이 러시아의 범죄에 “외교적 보호막을 제공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중-러 밀착은 “애정이라기보다는 정략결혼”이라고 의미를 깎아내렸다. 미국은 중·러 사이를 갈라 냉전 승리를 이끌어낸 1970년대 ‘키신저식 접근’에 나서기보다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을 강화해 ‘두 개의 전선’ 모두에서 승리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공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중국을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유일한 경쟁자”, 러시아를 “평화와 안정에 대한 급박하고 지속적인 위협”이라고 자리매김했다. 미국과 중·러 양쪽 모두 자신의 견해를 바꿀 가능성이 크지 않아, 지금과 같은 대결 구도는 점점 더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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