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문지방 건축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2023. 3. 2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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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공공건축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축 행위는 땅과 건물을 소유하게 되는 사적 주체의 자본으로 이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한 범위에 구획된 대지 안에 법적 요건만 충족시킨다면 사유 재산으로 자유롭게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건축은 재산 소유관계에 의해 단순하게 구분할 수 없는 복잡한 이해관계 위에 놓인다. 이는 곧 국가에서 건축행위를 수행하는 건축가에게 자격증을 부여하고 이들을 관리하는 배경이 된다.

모든 것은 건축이 지니는 스케일 문제와 연관된다. 도시에 지어지는 건축물은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땅 위에 서는 순간부터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주며 경관을 형성한다. 건축물 앞을 오가는 수많은 행인들이 이를 경험하면서 건축물은 우리의 일상적 공간 환경을 좌우하는 커다란 구성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이로 인해 건축가는 건축물과 도시가 만나는 접점에 대한 관심이 크다. 양자 간의 경계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어서다. 사회가 공간 환경에 어떤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도시의 공공성은 어떤 지향점을 지녀야 하는 지 등을 발견하는 재료들이 그 경계 위에 있다.

건축에서 문지방(門地枋)이란 '문 아랫부분에 위치해 문 안팎의 경계 역할을 하는 낮은 판 모양의 물건'을 지칭한다. 흔히 말하는 문턱이다. 문지방은 기술적으로 공간 내외부를 경계지을 때 문을 설치하고, 내부와 외부의 바닥 재료를 분리하기 위한 장치가 된다. 하지만 문턱의 기능적인 부분 바라보면 서로 다른 성격의 영역을 연결해주고, 구분 짓는 역할을 한다. 즉, 문지방은 건축과 도시 가로 환경이 만나는 경계를 처리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예로부터 장인정신의 문화가 건설 분야에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우수한 퀄리티의 현대건축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지리적으로도 가까워서 양질의 최신 현대 건축을 경험하기 위해 한국의 건축가들이 수시로 방문하는 답사 1번지다. 필자도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마다 특유의 집요한 손길로 마무리된 건축물을 확인하러 일본을 종종 찾는다. 후미히코 마키라는 건축가가 도쿄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인 다이칸야마에 2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건축한 힐사이드 테라스(Hillside Terrace)라는 상업시설이 대표적이다. 건축물은 다이칸야마의 4차선 도로인 규야마테도리를 따라 마주 보는 6동으로 구성돼 있다. 규야마테도리 보도는 여느 도시 공간에서 흔히 발견되듯이 얕은 경사를 이루며 건축물들과 만나고 있다. 그리 특별할 것 없지만 후미히코 마키는 조금씩 경사를 만들어 인도를 내려가다 보면 긴 건물을 유기적으로 만날 수 있도는 구조를 갖췄다. 건축물 내부의 바닥 높이를 미세하지만 섬세하게 조절해 행인과 건축이 만나는 문지방에 단차가 생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건축물 내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이렇게 경사진 도시 바닥 위에 건축 문지방의 존재감을 사라지게끔 하기 위해선 상당한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시공 편의성을 중시해 건축물 내부와 도시 가로가 부드럽게 만나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대부분 빗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도로를 향해 불편한 경사를 만들어 보행을 힘겹게 만들거나, 불필요하게 높은 단 차이를 건물 입구에 조성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도시와 건축이 만나는 문지방이 조화롭게 계획되지 않은 건물에선 자연스러운 수평 이동이 어렵고 편안하고 쾌적한 보행 경험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도시의 문지방이 열악하게 된 데에는 적당하게 쉬운 방식으로 시공하려는 건축관계자들의 편의주의와 건축과 도시의 길이 만나는 공간의 좋은 사례를 경험해보지 못한 대중의 무관심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도시는 현대인의 삶의 터전으로 가장 중요한 바탕을 이루는 곳이다. 개개인의 건축물이 모여 도시를 이루고, 우리는 그들이 만든 공간 환경 안에서 존재하게 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좋은 문지방을 경험하는 것은 곧 사회 공공성의 증진과 조화로운 도시 공간 환경에서의 거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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