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금융완화' 고집할 수밖에 없는 3가지 이유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물가·금융완화 효과 약화에도 "금융완화 지속"
이유는 국채 이자 급증..올해만 1조원 불어나
국채매입 중단하면 日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도
출구전략 나서면 日 경기회복에도 '찬물'
그럼에도 전문가 전원 "장단기금리통제 개선할것"
총재 바뀌는 일본은행의 3·3·3 고민(上)에서는 대규모 금융완화가 10년째 계속되면서 일어난 3가지 부작용을 살펴봤다. 그런데도 구로다 하루히코 현 일본은행 총재와 우에다 가즈오 차기 총재 모두 금융완화를 계속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일본의 물가가 2022년 3%까지 올랐지만 올해와 내년은 다시 1%대로 떨어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반면 시장은 3가지 이유로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를 중단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첫번째 이유는 물가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일본의 음식료품 업체들은 2만800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14% 올렸다. 올해도 가격인상이 결정된 식료품이 7000개를 넘는다. 먹거리 가격이 이렇게 치솟는데 서민들 입장에서 '올해와 내년 물가상승률이 다시 1%대로 떨어지기 때문에 금융완화를 계속한다'는 일본은행 총재의 설명은 한가한 투정으로 들릴 뿐이다.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올랐다. 42년 만의 최고치다. 일본은행의 물가관리 목표인 2%의 두 배가 넘는다. 물가상승으로 소비가 얼어붙으면 코로나19의 충격에서 가까스로 회복돼던 일본 경제는 허리가 꺾이게 된다.
지난달 7일 후생노동성은 2022년 일본인들의 실질임금이 1년 전보다 0.9%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물가가 임금보다 더 가파르게 오르는 현재의 상황이 이어지면 소비가 늘어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내각의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일본은행은 금리를 낮추기 위해 국채를 무제한으로 사들이고 있다.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국채를 사서 가격을 높이면 금리는 떨어진다. 일본은행이 금리 방어를 위해 사들이는 국채는 지속성이 의문시될 정도로 늘었다.
일본은행은 작년 12월~올해 1월까지 두달 간 34조엔어치의 국채를 사들였다. 지난해 한 해 동안에는 100조엔의 국채를 매입했다. 1월 국채 매입규모는 23조6902억엔으로 월간 기준 사상 최대치, 1월13일 매입규모는 5조80억엔으로 1일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규모 금융완화 직전인 2013년 3월 125조엔이었던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잔고는 작년 10월말 556조엔으로 5배 늘었다. 일본은행이 전체 국채의 절반이 넘는 50.3%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10년 만기 국채는 88%를 일본은행이 갖고 있다.
일본은행이 아무리 기축통화 보유국 지위를 이용해 엔화를 마구 찍어낼 수 있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를 계속할 수 없는 두번째 이유다.
세번째 이유는 대규모 금융완화의 효과가 갈수록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10년물 국채 금리는 일본은행의 변동허용폭인 0.5%를 넘기 일쑤였다. 일본은행은 가격지정 공개시장 운영을 통해 10년물 국채를 무제한 0.5% 금리에 사준다. 금리를 0.5% 이상 올릴 수 있는 수요를 말리기 위해서다.
금리가 0.545%에 거래됐단 건 누군가가 10년물 국채를 0.5%보다 헐값에 팔았다는 뜻이다. 일본은행이 더 높은 값에 사준다는데도 말이다. 일본은행에 팔고 싶어도 팔 수 없었던 시장참가자가 있었다는 의미다.
국채를 싹쓸이하는 일본은행은 증권사 등에 사들인 국채를 빌려준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채권의 양을 늘리기 위한 임시방편이다. 일본은행이 국채의 씨를 말려서 채권시장의 기능을 마비시킨다는 비판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조치다. 국채시장의 기능을 망가뜨린 일본은행이 국채 시장의 생태계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사들인 국채를 도로 빌려주는 것이다.
'빌려준 국채는 일본은행에 되팔지 못한다'는 규정이 따라 붙는다. 일본은행이 빌려준 국채가 공매도의 수단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다. 이 규정 때문에 증권사는 빌린 국채를 팔 데가 없어졌다. 국채 시장에서 일본은행 외에는 국채를 사겠다는 투자자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이 헐값에 국채를 내다팔고 금리가 툭하면 0.5%를 웃도는 이유다.
금리를 낮추기 위해 실시하는 대규모 국채매입이 거꾸로 금리를 올리는 요인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 장단기금리조작, 나아가 대규모 금융완화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사례다.
이처럼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은 더 이상 정책을 지속하기 힘들 정도로 부작용이 커졌다. 그런데도 일본은행이 정책 지속을 고수하는 건 금융완화를 중단하기 어려운 3가지 상황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 정부가 마구 찍어놓은 국채의 이자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의 정부 부채는 1026조엔에 달한다. 일본은 100조엔을 조금 넘는 1년 예산의 30% 가량을 국채 원리금 상환에 쓴다.
지난 2월3일 일본 정부는국채 발행 규모와 원리금 상환 부담 예상치를 새롭게 내놨다. 작년 12월 일본은행의 장기금리 변동폭 확대 이후 금리가 상승한 영향을 반영한 시뮬레이션 결과다.
이에 따르면 2026년 국채 원리금 상환 규모(국채비)는 29조8000억엔으로 2023년보다 4조5000억엔 늘어날 전망이다. 원금을 제외한 이자만 11조5000억엔으로 올해보다 3조엔 증가한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0.2%대에서 0.4% 중반대까지 오른 올해만 이자가 1000억엔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를 중단해 10년물 국채 금리가 지금보다 2%포인트 오르면 2026년 국채비는 33조4000억엔으로 늘어난다.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때보다 부채 부담이 3조6000억엔 증가한다.
국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면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외화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일본 기업의 해외 활동은 물론 일본 경제 전체가 위축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구로다 하루히코 현 총재 임기 만료인 오는 4월 이후 일본은행이 출구전략에 나서면 일본의 국가신용도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의 재정 압박이 심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2014년 이후 일본의 신용등급은 5번째로 높은 'A+'(S&P 기준)를 9년째 유지하고 있다. 신용등급이란 한마디로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파산하지 않고, 돈을 제때 갚을 수 있는 능력치의 등급이다.
2014년 774조엔이었던 일본의 정부 부채는 대규모 금융완화 10년간 1026조엔으로 불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264%로 선진 7개국(G7) 가운데 압도적인 꼴찌다. 선진국 가운데 파산할 가능성과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인 셈이다.
그런데도 일본의 신용등급이 'A+'라는 비교적 양호한 등급을 유지한 건 국채의 절반 이상을 사준 일본은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피치의 크리스야니스 쿨스틴 국가신용등급 담당자도 "일본은행의 국채구입은 신용등급을 지탱한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일본은행이 출구전략에 나서 국채 매입을 중단하면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물가가 정체하는 가운데 금리가 오르면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세수 증가보다 국채 상환 부담이 더 커져서 연쇄적으로 채무구조가 악화하기 때문이다. 올해 물가가 1%대로 떨어지는데 금리는 크게 오르는 현재 일본의 상황은 국제 신평사들의 등급 하향 조건과 일치한다.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시중은행의 신용등급도 떨어져 외화조달 루트가 줄어들게 된다. 미쓰비시UFJ리서치&컨설팅은 최근 "국가 신용도가 흔들리면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6%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하라 마사히로 미즈호파이낸셜그룹 사장은 "장기금리가 3~4%가 되면 대재앙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금리가 상승하면서 주가도 급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를 중단하지 못하는 두번째 이유다.
일본은행이 금융완화 정책을 중단하기 어려운 마지막 이유는 그렇지 않아도 선진국 가운데 가장 부진한 일본의 경제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즈호리서치&테크놀로지는 "장기금리가 1% 오르면 이자 부담 증가로 기업의 수익이 5% 줄고, 일본의 GDP도 0.3%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월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일본은행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20명 전원이 '올해 일본은행이 장단기 금리조작 정책을 개선할 것'이라고 답했다. 가장 많은 8명은 일본은행이 변동폭 추가 확대와 같은 과도기적 정책을 건너뛰고, 단숨에 장단기 금리조작을 폐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유일의 마이너스 금리 국가' 지위도 내려놓을 전망이다. 20명의 전문가 가운데 4명은 올해, 11명은 내년에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려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폐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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