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농사철 맞은 농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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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이 지나면서 훈풍이 불어오니 마당 한구석의 산수유며 매실나무며 꽃이 피고, 모과나무 등걸에서도 어린싹이 얼굴을 내민다.
산중이라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니 봄이 오기는 오는가보다.
200년 전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 2월령인데 그 무렵 봄에 심던 보리와 목화·담배, 그리고 뽕나무 등은 찾아보기 힘들고 재를 모아 퇴비를 만들거나 씨암탉에 알을 품게 하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농가월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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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시각에 농부들 허탈
국민들 힘찬 응원가 불러야
‘겨레 위해 가장 많이 일해도
버림받고 시달리는 이들이여
웃으며 일하는 맘에 복 있길’
경칩이 지나면서 훈풍이 불어오니 마당 한구석의 산수유며 매실나무며 꽃이 피고, 모과나무 등걸에서도 어린싹이 얼굴을 내민다. 산중이라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니 봄이 오기는 오는가보다. ‘반갑다 봄바람이 문을 여니 말랐던 풀뿌리는 속잎이 맹동한다. 개구리 노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멧비둘기 소리나니 버들빛 새로워라. 보쟁기 차려놓고 춘경을 하오리라’. 200년 전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 2월령인데 그 무렵 봄에 심던 보리와 목화·담배, 그리고 뽕나무 등은 찾아보기 힘들고 재를 모아 퇴비를 만들거나 씨암탉에 알을 품게 하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농사가 전업화하면서 재배하는 작목수가 줄고 대부분의 농자재도 시장에서 구입해 쓰기 때문이다.
축산과 비닐하우스가 늘어나면서 농한기가 따로 없지만 우리 지역은 요즘 마늘 유인작업이며 과일나무를 관리하느라 바쁘다. 많은 비용을 투입해서 고생한 만큼 소득이 돼야 할 텐데 워낙 비료·농약·기름값이 오르고 일할 사람마저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니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며칠 전 이웃 마을 숙모에게 농사가 어떤지 물었더니 지난해는 고추농사 열마지기에 농약값만 600만원, 여기에 인건비 1000만원과 비료값 등을 제하면 남는 게 없지만 그게 농촌에서의 삶이 아니냐며 어색하게 웃으신다.
사실 영농방법이며 농기계가 발달돼 예전에 비해 노동 강도는 한결 낮아졌다. 하지만 여느 직업과 달리 자연에 의존하다보니 때에 맞춰 비배관리 하고 제초와 병해충 방제를 하지 않으면 기대한 수확을 할 수 없고 투입비가 늘어난 만큼 돈을 만들기는 더욱 어렵다. 강희맹이 쓴 <금양잡록> 서문에 ‘사농공상 네가지 백성 중에 오직 농민만이 가장 괴로우니 추울 때도 갈고 더워도 김매어 몸에 땀이 흐르고 발에 흙칠을 하며 일년 내내 부지런히 움직여도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지 못한다’면서 그럼에도 이 일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 까닭은 농사가 근본이기 때문이라 했다.
조선시대에는 농사철이 시작되면 임금이 발표한 <권농문>에 따라 농사를 독려하는 것을 고을 수령의 가장 큰 일로 삼았다. 태조 때부터 순종까지 역대 임금들은 경칩 이후 첫 돼지날 선농단에 제사를 올리고 직접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농사의 소중함과 농민에 대한 고마움을 알렸다. 1444년 세종대왕이 내린 <권농교서>에는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식량을 하늘로 삼나니 농사는 의식의 근원인지라 왕정의 우선되는 바라’며 밝히고 백성들이 농사에 힘써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윗사람이 먼저 실천하기를 강조하고 있다.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고 농촌 지역사회를 유지하는 농업·농촌 본래의 역할은 변함이 없는데 농업과 농민을 바라보는 위정자나 국민의 시각은 크게 달라진 것 같다. 성공한 농민이 돈을 번 이야기는 자주 하면서 정작 논밭에서 묵묵히 일하는 보통 농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이들을 천하의 근본이라 믿어주던 사회적 분위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일 철이 되어 다시 들판으로 나서는 농부의 처진 어깨를 보면서 권농사(勸農辭) 삼아 조지훈의 ‘농민송(農民頌)’ 한 구절로 위로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겨레를 위하여 가장 많이 일하고도 가장 버림받고 시달린 사람들이여! 새벽닭 울 때 들에 나가 일하고 달 비친 개울에 호미 씻고 돌아와 마당가 멍석자리 삽살개와 함께 저녁을 나눠도 웃으며 일하는 마음에 복은 있어라’.
스마트농업 시대라지만 일을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그중에서도 희망을 갖고 용기를 내는 마음과 이를 믿어주는 국민의 응원이 중요하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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