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확산되는 현대차 절도놀이… 23개주 “방지책 만들라”
미국 위스콘신주와 일리노이주 등 23개 주(州) 법무장관은 20일(현지 시각) 현대차와 기아에 공식 서한을 보내 “차량 도난 방지 대책을 더 적극적으로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6월 미국 10대들 사이에서 시작된 ‘현대차·기아 절도’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주 정부가 제조사 측에 대책 마련을 촉구한 것이다. 이들은 서한에서 “취약한 보안으로 차량의 절도가 급증하는 것은 충격적”이라며 “그동안 두 회사는 차량 도난을 막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보안 시스템이 취약한 구형 현대차·기아 차량을 훔치는 이른바 ‘현대차 절도 챌린지’가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다. 지금까지 차량 수천대가 도난당하며 피해가 늘어나자, 미국 주요 지자체는 두 회사에 소송을 걸기 시작했다. 시애틀·클리블랜드시에 이어 지난 17일에는 샌디에이고시가 두 회사에 소송을 걸었고, 주 정부도 압박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현대차는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소송전에 휘말린 만큼 이번 사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美서 ‘현대차 절도 놀이’ 유행, 보안 어떻길래
미국에서 현대차·기아가 절도의 표적이 된 것은 지난해 6월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근거지를 둔 10대 차량 절도단이 기아차를 훔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다. 이들은 구형 기아차를 주로 훔쳐 ‘기아보이즈(kiaboys)’로 불린다. 이후 모방 범죄가 불과 두달 만에 미 전역으로 확산했다. 10대들은 범죄 장면을 틱톡, 유튜브 등 SNS에 생중계하면서 “오늘 기아 5대 획득”이라며 훔친 차를 경쟁적으로 자랑했다.
현대차·기아 차량 중에서도 도난 방지 장치인 ‘엔진 이모빌라이저’가 없는 차들이 타깃이 됐다. 엔진 이모빌라이저는 자동차 키 손잡이에 특수암호가 내장된 칩을 넣은 것으로, 암호와 동일한 코드를 가진 신호가 잡혀야만 시동이 걸린다. 이모빌라이저는 미국에서 필수로 장착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조사가 보안 강화를 위해 장착하는 추세다. 절도범들은 이 기능이 없는 2021년 11월 이전 출시 차종만 골라 훔쳤다. 2017∼2020년 미국에서 생산한 엘란트라와 2015∼2019년 소나타, 2020∼2021년 베뉴 등이 대표적인 모델이다. 충전용 USB케이블을 사용해 강제로 점화 실린더를 작동시키면 키가 없어도 시동이 걸린다는 점을 악용했다.
현대차·기아는 절도 범죄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지 6개월이 지난 올해 2월에야 미 교통 당국에 도난 방지 대책을 보고했다. 현대차 미국법인은 “원격으로 차량을 잠그면 시동이 걸리지 않게 업그레이드하겠다”며 “업그레이드가 안 되는 모델은 운전대에 거는 ‘도난 방지 자물쇠’ 구매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피해가 크게 확산한 뒤인 데다 현대차·기아 차량이 보안에 취약하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정부, 현대차·기아에 소송 걸며 적극 대응
시민들의 피해가 커지자 미국 지방정부들은 현대차와 기아가 공공 안전을 방해했다며 두 회사를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절도 범죄에 대응하느라 각종 공공 비용이 증가했다는 이유로 제조사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샌디에이고 검찰청은 17일(현지 시각) 현대차·기아가 판매 차량에 도난 방지 기술을 넣지 않아 범죄 피해가 크게 늘었다며 두 회사에 소송을 걸었다. 현대차는 앞서 클리블랜드시와 메디슨커먼카운슬시, 시애틀시로부터 같은 이유로 고소당했다.
주 정부도 현대차·기아를 압박하고 있다. 23개 주 법무장관이 현대차·기아에 서한을 보낸 데 이어 자체 조사에도 착수했다. 미네소타주는 7일 현대차와 기아가 도난 방지 기술이 없는 차를 판매한 게 소비자보호법 위반인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미네소타주에 따르면 지난해 미네아폴리스 지역 현대차·기아 차량 도난 건수는 전년 대비 836% 증가했다.
미 정부가 법규와 치안은 느슨하게 해놓고 제조사 측에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범죄 방법이 노출된 유튜브는 따로 제지하지 않고 있다”며 “이모빌라이저 장착을 법으로 의무화한 유럽연합(EU)·캐나다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여전히 선택 사항인 점도 문제”라고 했다.
미국 내 현대차 절도 챌린지 사태
―2022년 6월 위스콘신주 밀워키 10대 차량 절도단의 기아차 절도 영상 유튜브 통해 확산
―2022년 8월 현대차·기아 표적으로 한 절도 챌린지 미 전역으로 확산
―2022년 9월 피해 차주들, 현대차·기아 상대로 집단소송 시작
―2022년 11월 미국 내 각 도시, 현대차·기아 상대 소송 시작
―2023년 2월 현대차 미국 법인 “소프트웨어 강화하겠다” 발표
―2023년 3월 23개 주 법무장관, 현대차·기아에 “대책 마련하라” 공식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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