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선소, 축구장 돌고 클럽댄스 추며 ‘구인’

박진성 기자 2023. 3.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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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수주호황인데 일손 태부족… “우리 회사 오라” 홍보전

지난 16일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은 소셜미디어 ‘틱톡’에 55초짜리 ‘쇼츠’(짧은 동영상) 하나를 올렸다. 이 영상에선 하얀 안전모를 쓰고 파란 작업복을 입은 한 중년 남성이 한 건물 복도에서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춤추듯 걸어가다, ‘배관’ 또는 ‘용접’ 등의 문패가 붙은 방의 문을 차례로 연다. 방 안에선 한창 작업에 열중하던 사람들이 이 남성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른바 ‘04년생 클럽춤’이라고 불리는 요즘 유행하는 춤을 춘다. 이 영상은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 건물 안에서 촬영한 것으로 조선업 관련 각종 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다. 이 남성은 기술교육원 교사인데, 조선업에 뛰어들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걸 홍보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이 지난 16일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게시한 영상 중 일부를 캡처한 것. 교육원 교육생 4명이 남색 작업복을 입은 채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인 이른바 ‘04년생 클럽춤’을 추는 모습이다.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

환경 규제로 친환경 선박 수요가 늘고 노후 선박 교체 수요가 증가하는 등 현대중공업이나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사들이 약 10년 만에 수주 호황을 맞았지만 막상 일할 사람이 부족해 구인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 12월 조선·해양산업인적자원개발위원회가 발간한 ‘2022년 조선ㆍ해양산업 인력현황 보고서’는 올해 국내 조선업 전체에 1만명가량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장에선 “10년 불황 동안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앞으로 조선 인력으로 커나갈 젊은 층이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도 크다. 대우조선에서 5년 근무한 경험이 있는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인력은 쿠팡에서 일해도 상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데 멀리 조선소까지 와 힘든 일을 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어 조선업의 매력을 더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각 기업에선 일할 사람을 모집하기 위해 각양각색의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 관계자들은 지난달 24일에는 부산 북구 한국산업인력공단 부산지역본부에 마련된 산업기사 필기 시험장에 ‘커피차’를 끌고 갔다. ‘현대중공업 전문 테크니션 육성 과정 모집’ 현수막을 걸고 응시생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커피를 나눠주며 조선업에 뛰어들어 보라고 제안했다. 그다음 날인 2월 25일에는 K리그 개막전에 울산 문수경기장을 찾아 경기를 보러온 젊은 층에게 1000장의 팸플릿도 돌렸다. 그 전까지 기술교육원은 지역지에 모집 공고를 올리는 것 외에 다른 홍보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경남 거제의 삼성중공업은 전국일주도 했다. 이 회사 기술교육원 관계자들이 지난해 1~12월 제주도부터 강원도 태백까지 전국 직업훈련학교, 취업 박람회, 시도교육청 취업지원센터 등 120곳가량을 찾아가 구인을 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직업훈련학교는 꼭 수료 시점에 맞춰 찾아다녔다”며 “물량은 많은데 인력이 모자라니 우리가 한 명이라도 더 구해오려는 발버둥이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모임인 협력사협의회도 지난 1~2월엔 전국 10개 지역 28개 용접학교도 돌았다. 부산에 방문했을 땐 “저희 회사 얼마나 좋은지 보여드리겠습니다”라며 취업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대우조선 선박 건조 현장 투어도 시켜줬다.

이런 중소업체는 대기업보다 사정이 더 다급하다. 전남 영암 대불산단에 자리잡은 선박 블록 제작 2차 협력사 ㈜청진의 정동현 대표는 매일 아침마다 인력 ‘경매’를 한다. 용접, 조립 등 급한 작업 물량이 생겼을 때 신속하게 처리하는 인력을 구하기 위해서다. 외국인 근로자 5~6명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팀의 팀장인 외국인이 협력사 대표들에게 매일 아침 전화를 돌리며 “오늘 우리 얼마 줄 거예요? 단가 안 올려주면 다른 업체 갑니다”며 몸값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우리같이 작은 회사는 이들이 일하러 안 오면 공장 가동이 멈춘다”고 말했다.

특히 대불산단 주변엔 농가도 많아 중소 조선소 협력업체가 농부들과 인력 쟁탈전을 벌인다. 현대삼호중공업 등에 선박 블록을 납품하는 협력사 ㈜유일의 유인숙 대표는 “시골이라 농가에도 사람이 없어 농부들이 외국인 근로자 팀을 빼가기도 한다”며 “한창 바쁠 때 양파 까고 배추 뽑으러 간다고 해 죽겠다”고 말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인력을 확보할 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경남 창원의 한 중견 조선업체 대표는 “정부가 동남아 국가에 조선업 기술교육원을 만들고, 여기서 교육받은 사람이 국내로 바로바로 공급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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