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초보운전, 그 어두움의 기억
대학생이 된 아들이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대개 그렇듯 면허가 있다고 운전을 바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운전대를 잡고 도로에 나서려면 상당한 준비와 용기가 필요하다. 우선 운전할 때 옆자리에 태우고 스스로 운전하는 것처럼 예행연습을 하게 했다. 몇 가지 일러주고 이런저런 질문에 답도 해주다 보니 잊고 있던 초보운전 시절이 떠올랐다. 손으로 핸들과 기어를 작동하면서 발은 클러치와 액셀, 브레이크를 오가느라 허둥지둥, 전방과 사이드미러를 흘끔거리는 사이에 시야는 극도로 좁아지고 등에는 진땀이 흥건해서 별것 아닌 상황에도 앞이 캄캄해지곤 하던 그때의 기억이, 수면 위로 하나둘 떠올랐다.
주역의 몽(蒙)괘는 산(☶) 아래에 물(☵)이 있는 모양이다. 산에서 처음 생긴 물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채 위험 앞에 멈춰 서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 한없이 어둡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를 두고 주역은 형통하다고 했다. 지금은 어둡지만 앞으로 밝아질 변화의 가능성이 있으며, 무엇보다 그만큼 유순하고 겸손하기 때문이다. 두 개의 양효가 몽매함을 깨우쳐주는 스승에 해당하는데, 각각 포용과 엄격함으로 그 방식을 달리한다.
“내가 몽매한 어린아이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몽매한 어린아이가 나에게 구하는 것이다. 처음 묻거든 알려주지만 두 번 세 번 물으면 알려주지 않는다.” 괘 전체의 의미를 담은 이 짧은 대목은, 자발적으로 배우려는 의지가 있어야 가르치며, 한 귀퉁이의 단서만 열어줄 뿐 나머지는 스스로 유추해서 터득하도록 한다는 교육의 원칙으로 해석되어왔다. 일방으로 주입하는 획일적인 교육과는 궤를 달리한다.
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능숙하게 운전하게 될 것이다. 다만 아들에게 운전을 가르치다 보니, 운전 중에 내가 무심코 하는 어떤 행동들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언제부턴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습관처럼 운전해온 것이다. 잠시 멈춰 서서 나는 어디까지 어떻게 흘러왔는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나의 물음은 무엇인지, 유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볼 일이다. 손발은 서투르고 눈과 귀는 어두워서 당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그때, 그 처음을 다시 떠올리며.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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