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초등 의대반 보내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것들
저출산으로 수강생 줄어든 학원 불안 마케팅에 편승 아닌가
얼마 전 ‘초등 의대 준비반’이 성행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내가 학부모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보았다. 서울 특정 지역만 아니라 부산·경기·경북 등 전국적으로 ‘초등 의대반’을 홍보하는 학원이 많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런 학원의 커리큘럼은 대체로 초등 4학년까지 초등 수학을 마치고 5학년 때 중학 수학, 6학년 때 고교 수학까지 가르친다고 한다.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걸까. 자녀를 위해 사교육을 시키는 것은 부모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파격적인 일이 분명하므로 초등 자녀를 ‘의대반’에 보내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것이 많을 듯하다.
먼저 초등학생들이 1~2년도 아니고 고교 과정 미적분까지 선행학습하는 것은 어떨까. 교육과정은 나름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아이들 인지 발달 단계를 고려해 짜놓은 것인데 이를 훨씬 뛰어넘는 교육을 해도 부작용이 없을까. 서울교대 수학교육과 A교수에게 물어보았다. A교수는 “아이들이 인지 발달 단계에 맞게 배우지 않고 몇 단계 건너뛰어 공부하면 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어려서부터 너무 몰아붙이면 중간에 번아웃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사교육을 많이 받는 초등학생들은 정작 학교에 와서 “피곤하다” “(학교 공부는) 시시해서 재미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연령이 3~4학년에서 점점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 현장 교사들 얘기다. 교육학자들이 사교육을 많이 받는 학생들을 추적 연구라도 해서 이들이 정말 대입에서 원하는 학과에 가는지, 정신적인 측면에서 별다른 문제는 없는지 알아보았으면 좋겠다.
다음으로 학원의 ‘불안 마케팅’에 편승하는 것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요즘 저출산 여파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학원들도 학원생 모집에 고전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학원들이 주요 마케팅 대상을 중·고교생에서 초등학생으로 넓히고 있다고 한다. 부모들이 선망하는 의대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광고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숙고하지 않고 여기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아이들이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할 시기에도 의사라는 직업이 매력적일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현재 초등학생이 성인으로 살아갈 시대는 지금과 다른 세상일 수 있다. 지금처럼 의대 선호 현상이 강해진 것도 IMF 외환 위기를 겪은 이후,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초등 3~4학년이면 의대에 진학하기까지 10년 정도 남아 있고, 의대에 들어간 뒤에도 사회에 나오기까지 최소 10년은 걸린다. 20년 세월이 지나서도 의사라는 직업이 지금처럼 각광받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본인 의사와 적성을 살핀 다음 준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이 늘어서 학생들 역량이나 국민 수준이 높아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한국의 과잉 사교육, 선행학습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일어서서 영화 보기’가 자주 쓰였다. 영화관에서 맨 앞자리 관객이 일어서서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뒷좌석 관객도 줄줄이 일어서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 같이 안 할 수 있는데, 일부에서 시작하자 누구나 할 수밖에 없는 피곤한 상황에 빠졌다는 얘기다. 초등 의대반에 보내는 것은 아예 의자 위에 서서 영화 보려는 것 아닌가.
초등 의대반이 성행하고 있다는 뉴스에도,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이 전년보다 10% 이상 증가해 26조원을 기록했다는 소식에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보다 불안감에 편승하려는 움직임만 있는 것 같아 몇 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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