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계인'이었을 때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2023. 3. 2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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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한때 ‘외계인’ 신분을 숨긴 채로 스무 살 청년 백수로 위장하고 음악감상실과 시립도서관을 오가며 세상 염탐에 마음을 쏟았다. 내가 외부자의 시선으로 지구의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처음으로 커피 향을 맡고, 까르륵 웃는 아기들을 보며, 모란과 작약이 피어나는 봄이라는 계절 현상에 놀란 나는 먼저 세상의 배열과 질서의 원리를 알아내고, 인간의 보이지 않는 마음이 분자적으로 작동하는 전모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우주를 떠돌다 어쩌다 지구라는 별에 불시착한 내가 캐낸 진실은 정말 단순하다. 인간은 태어나 일하고, 먹고, 웃고, 슬퍼하다 죽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 현실은 낙원이 아니다

외투 한 벌, 낡은 구두 한 켤레, 고물 타자기, 몇 편의 습작시, 이력서에 쓰지 못하는 독서편력, 방황의 여정들, 파산한 영혼을 위로하는 파가니니와 차이콥스키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들, 이것이 외계인인 내가 소유한 목록의 전부다. 더 많은 것을 가질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밤새 시를 쓰고 이튿날 아침엔 그걸 찢어버리는 가난한 청년이자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시간과 열정의 부자로 위장한 내가 하는 일은 종일 빈둥대며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제 현실이 낙원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심술궂고 뻔뻔하며 파렴치한 인간들은 어디에나 차고 넘쳤으니까. 정의롭다고 외치는 자들은 정의롭지 않고, 제 속내를 감추고 영혼의 스승으로 위장하는 자들은 대개 타락의 끝까지 가버린 더러운 속물이다. 지구를 쥐락펴락하는 자들은 사리사욕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탐욕에 가득 차 거시경제를 주무른다.

나머지 인간들은 갖가지 오염물질과 미세 플라스틱으로 지구를 뒤덮는 일에 힘을 보탠다. 그런 탓에 지구 대기는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고, 극지방의 두터운 얼음층은 녹고, 울울창창한 열대우림은 남벌로 사라진다. 지구에 번성하는 생물 종을 멸종시킬 기후 위기조차 인지하지 못하니 인간은 대체로 아둔하다고 할 수밖에. 죄 없는 길고양이의 밥에 독약을 타는 악마들의 내면에 들끓는 악의에 나는 경악한다. 악의에 사로잡힌 이들이 만든 뒤죽박죽의 세상은 한마디로 지옥일 뿐이다.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이 지옥에서는 수시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여기서 청춘 시절을 겪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누군가 쓴 ‘내 스무 살 때’란 인상적인 시를 읽은 건 우연이었다. 스무 살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시가 지구에서 청년기를 보내는 이들이 겪은 일말의 진실을 머금고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뛰어나다거나 매혹적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내 위장의 거푸집으로 삼기에는 적당한 시였다.

“참 한심했었지, 그땐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하는 일마다 실패투성이었지/ 몸은 비쩍 말랐고/ 누구 한 사람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지/ 내 생은 불만으로 부풀고/ 조급함으로 헐떡이며 견뎌야만 했던 하루하루는/ 힘겨웠지, 그때/ 구멍가게 점원 자리 하나 맡지 못했으니// 불안은 수시로 나를 찌르고/ 미래는 어둡기만 했지/ 그랬으니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내가/ 바닷속을 달리는 등 푸른 고등어처럼/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랬으니, 산책의 기쁨도 알지 못했고/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줄도 몰랐고/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을 건넬 줄도 몰랐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무지로 흘려보내고/ 그 뒤의 인생에 대해서는 퉁퉁 부어 화만 냈지”(졸시, ‘내 스무 살 때’)

고작 여든 안팎의 기대수명을 사는 주제에 인간은 너무나 많은 것을 설계하고 실행에 옮기려고 한다. 그 무모한 도전의 결과는 뻔하다. 그들은 숱한 실패를 불운 탓으로 돌리고 술이나 마약 같은 중독 물질에 취해 자기변명이나 일삼으며 세월을 낭비한다. 그러면서 인생이 덧없다느니 허무하다느니 푸념을 늘어놓는다.

정말이지 인간이란 종은 감상적이고 나약하다는 게 내 결론이다. 물론 시와 동화를 쓰고 천상의 선율로 된 음악을 만들며 남의 행복을 위해 제 생명을 바치는 이타적이고 아름다운 인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주제넘게 충고하자면, 인간이 잘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한 줌의 윤리, 옳고 그름에 관한 확신과 행동, 작은 인내심, 재치와 익살과 해학뿐이다. 행복을 위해서라면 충분한 모성과 우정, 면양말, 먹을 만한 수프 한 그릇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

인간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행복을 향한 집요한 몰입이다. 환상으로서의 행복은 탐욕스러운 장사꾼들이 퍼뜨리는 ‘시장 만능 해피니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펴내는 대중 매체에 넘치는 광고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 마음에 행복이라는 환상을 주입하는데, 그것들은 다 헛소리고 공허한 외침이다.

그럼에도 살아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단연코 지구보다 더 아름다운 별은 없다. 날이 흐리건 밝건 간에 이 별에서의 모든 날들은 눈부시다. 안타까운 것은 그걸 인간만이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살아있음으로 제 생의 날들을 올실과 날실 삼아 교직하는데, 그런 날을 한데 뭉뚱그려 인생이라고 한다.

제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아낌없이 나누는 무오류의 인간은 아름답다. 자장가로 아기를 재우는 엄마들과 전쟁에 징집된 자식의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무오류의 어머니들이 그렇다. 인간 중에 “왜 목요일은 스스로를 설득해/ 금요일 다음에 오도록 하지 않을까?// 청색이 태어났을 때/ 누가 기뻐서 소리쳤을까?”(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라고 엉뚱한 질문을 하는 자들이 있다는 데 나는 놀랐다.

제 마음의 순수와 태양에게 바치는 경의를 은유의 언어로 옮겨 적는 무욕한 자를 나는 사랑한다. 나는 시와 음악의 아름다움을 인생의 기쁨과 보람으로 삼은 자와 벗으로 어울리고, 세상 끝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외계인으로 남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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