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이승만 성경’ 속 책갈피 꽂힌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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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GMAN RHEE’
갈색 가죽 장정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이름이 영문으로 선명히 새겨진 영어 성경이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 영어 성경 표지 윗부분에는 ‘HOLY BIBLE’이라고 적혀 있고, 아랫부분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영문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가죽은 거의 닳아서 바스라지기 직전 상태입니다. 그런데, 표지의 영문 이름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일종의 수수께끼이지요.
윤보선 정권 경무대 근무한 공보수석 아들이 기증
이 성경은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가 재미교포 지인으로부터 기증받아 공개했습니다. 송 목사는 최근 페이스북에 이 성경을 기부받게 된 사연을 적었습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첫 번째 공보수석이었던 고(故) 장성철씨(후에 목사가 되어 선교사로 헌신)이 경무대 근무 당시 보관하게 되었고 그 아드님인 장범씨에게 건넨 것을 기부(기증)받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가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1899~1904년 한성감옥에 갇혔을 때로 알려졌지요. 이승만은 1896년 배재학당에 입학해 신학문을 배웁니다. 배재학당 시절까지도 크리스천이 아니었던 이승만은 독립협회 활동을 하다 한성감옥에 투옥되지요. 탈옥하려다 잡혀 종신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때 감옥에서 10㎏이 넘는 ‘칼’을 목에 쓴 채로 선교사들이 넣어준 신약성경을 읽고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이후로는 크리스천으로 평생을 살았지요. 1948년 제헌국회 개원식에 임시의장을 맡은 이승만은 제헌의원 중 목사인 이윤영 의원을 호명하며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4·19혁명으로 하야(下野)한 이 대통령은 하와이로 떠난 후에도 한인기독교회 예배에 출석하면서 마지막까지 성경을 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표지에 영문 이름 외엔 아무 단서 없어 수수께끼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성경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습니다. 서명도 없고, 밑줄을 그은 흔적도 없고, 가족 사항을 적는 페이지도 비어있다고 합니다. 서지사항도 없어서 언제 어디서 인쇄된 것인지도 알 수 없고요. 이승만 대통령이 주문해서 자신의 이름을 새긴 성경인지, 미국인 선교사 등 다른 사람이 이승만 대통령의 이름을 새겨서 선물한 것인지도 알 수 없고요. 이 대통령이 이 성경을 읽었는지, 읽었다면 어느 시기에 읽었는지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대통령이 하야한 후에 왜 경무대에 이 성경이 남아있었는지 등등이 모두 수수께끼입니다.
“종의 멍에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에 책갈피 꽂혀 있어
그렇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연결고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몇몇 페이지에는 종이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송 목사는 그 책갈피가 끼워진 부분을 펼쳐 보다가 울컥했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끼워진 책갈피였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은 우리말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입니다. 이 대통령이 이 구절에 책갈피를 끼웠는지, 다른 사람이 끼웠는지 역시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구절만큼은 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 대통령의 삶과 겹쳐지는 말씀입니다. 이 대통령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종의 멍에’를 자주 인용했다고 합니다. “이제 저의 천명이 다하여감에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던 사명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몸과 마음이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바라옵건대, 우리 민족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옵소서. 우리 민족을 오직 주님께 맡기고 가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굳세게 서서 국방에서나 경제에서나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 삼아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다.”
이 대통령 며느리도 “처음 보는 성경”
송 목사는 이 성경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이 대통령의 며느리 조혜자 여사와 이승만 연구 권위자 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을 만났다고 합니다. 두 분 모두 이 영어 성경을 처음 보는 것이라며 놀라워했답니다. 그렇지만 정확히 이 성경이 이승만 대통령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조 여사는 프란체스카 여사의 유언을 들려줬답니다. “어머님(프란체스카 여사)은 유언으로 세 가지를 부탁했어요. ‘틀니를 끼워주고 태극기로 나를 덮어달라. 그리고 성경책을 무덤에 꼭 넣어달라.’ 이렇게 무덤에 넣은 때문에 두 분이 날마다 기도하고 읽으셨던 성경은 남아 있지 않아요. 그런데 영문성경이 있다니.” 유영익 교수는 “성경의 영문 금박 이름으로 볼 때 이승만 대통령의 성경으로 보인다”며 “이 대통령이 쓰던 성경이 남아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참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답니다.
전문가와 연구자들의 성과에 따라 ‘이승만 영어 성경’의 수수께끼도 풀리겠지요. 송 목사는 “이 성경과 관련해 정보가 있는 분들의 제보를 기다린다”고도 했습니다. 앞으로 이 수수께끼가 풀려가는 과정 자체도 의미있는 스토리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역대 대통령 성경 수집-전시 계획도
송 목사는 이 대통령 성경을 기증받은 것을 계기로 역대 대통령들이 읽은 성경을 모아 전시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별세한 몇몇 전직 대통령의 유족·관계자는 기증 의사를 밝혔다고 하네요. 생전에는 정치적 의견이 다르고 정적(政敵) 관계이기도 했지만 사후에 그들이 읽은 성경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부활절을 맞아 하이패밀리 내 전시장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영어 성경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부활절엔 길이 100미터 ‘성경의 벽’ 제막식
한편 하이패밀리는 부활절인 4월 9일 ‘K-바이블(성경의 벽)’ 제막식을 갖습니다.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내 안데르센 메모리얼파크에 길이 100미터, 높이 3~9미터 벽면에 성경 66권(개역개정판)을 금속판에 새겨 붙인 벽입니다. 저도 지난해 하이패밀리를 방문한 길에 작업중인 현장을 봤습니다. 전병삼 작가가 가로세로 20센티미터 금속 패널 6770장에 성경 구절을 새겨넣은 벽입니다. 바람이 불면 금속 패널은 살랑살랑 움직이며 햇빛을 반사하는 모습이 장관인 ‘K-바이블’은 또하나의 명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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