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해야 할 이유와 하지 않을 이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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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매년 3월 말이면 돌아오는 연례 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공개하는 '고위공직자 재산' PDF(Portable Document Format)를 엑셀 형태로 변환하는 지루한 작업입니다.
애당초 공직자 재산 내역을 PDF가 아닌 엑셀로 공개하면 앞서 말한 불편한 점들이 해소될텐데 말이죠.
바꿔 말하면 정부가 고위공직자 재산 내역을 엑셀로 공개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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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매년 3월 말이면 돌아오는 연례 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공개하는 ‘고위공직자 재산’ PDF(Portable Document Format)를 엑셀 형태로 변환하는 지루한 작업입니다. 해마다 공개하는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는 1993년 2월27일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공직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접 본인의 재산 내역을 공개함으로써 뿌리를 내리게 됐습니다. 올해로 벌써 30년째입니다.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예방을 목적으로 시행된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는 언론의 공직감시(watch dog) 수행에 유용한 도구가 됐습니다. 최근만 보더라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의혹,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의 백지신탁 논란, 2019년 국회의원 농지법 위반 등의 언론 보도가 공직자 재산 공개 내역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즉, 공직자들의 비리를 감시하는데 있어서 재산 공개 제도는 중요한 단서이자 탐사보도의 시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30년째 바뀌지 않는 포맷과 비효율적인 공개 방식에 기자들과 시민단체는 계속해서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현재 공개하고 있는 포맷인 PDF는 텍스트를 읽고 수정하기 위해 개발된 포맷이라 재산의 증감을 파악하고 분류별 재산 내역을 분석하기에는 어려움이 큽니다. 수천 명의 공직자 재산을 꼼꼼하게 전수 분석하기에는 적합한 파일 형식이 아니란 뜻이죠.
실제로 특정 공직자가 보유한 일부 재산 내역을 읽고 확인하는데 PDF는 불편한 게 없습니다. 하지만 다주택자 검증 혹은 개별 공직자들의 농지 보유 현황과 같이 수상하거나 의심가는 재산 내역을 한 번에 산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다 보니 언론에서도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배포한 보도자료 안의 간단한 통계(평균, 증감 등)만 인용할 수 있을 뿐 재산 내역을 전수 분석하고 불법성과 꼼수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깁니다. 애당초 공직자 재산 내역을 PDF가 아닌 엑셀로 공개하면 앞서 말한 불편한 점들이 해소될텐데 말이죠. 그래서 언젠가 인사혁신처에 그 이유를 문의한 적이 있었는데 답변이 기가 막힙니다. 담당자는 공직자윤리법에 공직자 재산 내역은 관보나 공보를 통해 공개하도록 되어 있는데 관보가 PDF로 공개되다 보니 재산 내역도 PDF로 공개하고 있다는 겁니다. 법률상 엑셀로만 공개하라는 문구가 없다는 게 골자입니다.
과연 맞는 말일까? 관보 발행의 근거 법령인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을 보면 ‘종이로 발행되는 관보와 전자적인 형태로 발행되는 관보’로 운영한다고 명시되어 있을 뿐 PDF, HWP, 엑셀과 같은 전자파일의 형태까지 규정하고 있진 않습니다. 바꿔 말하면 정부가 고위공직자 재산 내역을 엑셀로 공개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작년 1월에 유튜브 쇼츠(shorts)를 통해서 공직자 재산 DB 일원화를 약속하며 기자들과 시민단체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사실 해당 문구만 보면 모호한 표현이었습니다. 저처럼 데이터를 다루는 이들에게는 DB라고 하는 표현은 데이터베이스(Database)이거든요.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준다는 걸로 희망을 가졌지만 실상은 다수의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공개하고 있는 PDF를 한곳에 모아 공개한다는 의미에 그쳤습니다. 결국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게 됐네요.
그럼에도 언론이 해야 하는 건 ‘감시’입니다. 한 방송사의 기획 주제였던 ‘공개가 곧 감시’란 말을 좋아하는데요. 그전에 더 중요한 게 있다면 바로 정부의 의지입니다. ‘공개하면 안 되는 이유’가 아닌 ‘공개해야 할 이유’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30년 전 그가 그랬듯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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