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진흙은 불가마를 거쳐 도자기가 된다
국내 은행들, 외부 충격에 민감
그동안 IMF 등 숱한 어려움 극복
위험점검·대비책 강화 계기 삼아야
이달 초 미국 은행 가운데 16번째로 큰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다. 재무구조를 개선하려고 22억달러를 조달하는 증자를 할 것이라는 소식이 나온 뒤 파산까지 걸린 시간은 44시간에 불과했다.
이번 SVB사태는 우리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의 과점 체제를 깨겠다며 추진하던 소규모 특화은행 설립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에서 은행업 인가 단위를 세분화하는 ‘스몰라이선스’나 영국의 소규모 특화 은행인 ‘챌린저 뱅크’ 사례를 제시했다. SVB도 벤치마킹 대상이었는데, 이번 사태로 논의 자체가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SVB 파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난해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꼽히는데, 대외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국내 금융시장에는 적합하지 않은 모델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SVB는 총자산의 56.7%를 장기 유가증권에 투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은행들은 투자보다는 대출 중심으로 자산을 운용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란 평가다. 고금리 시대에 서민들이 대출 이자 부담으로 고통받는 동안 과점 체제 안에서 예대마진(예금·대출 금리 차)으로 손쉽게 돈을 벌어 고액 퇴직금 지급 등으로 ‘돈 잔치’를 벌였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오히려 이것이 장점으로 부각되는 묘한 상황이 됐다.
SVB사태와는 구조가 다르지만 국내 금융권에서는 부동산시장 침체로 인한 제2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가능성이 ‘지뢰’로 꼽힌다. 부동산 경기 불황기에 금융시장이 경색되면 고금리 상황에서 차환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대출, 지급보증, 유동화증권 등 비은행권의 부동산 PF 금융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191조7000억원으로 2018년 말(94조5000억원)의 두 배를 넘는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최근 ‘회사채·단기 금융시장 및 부동산 PF 리스크 점검 회의’를 열어 부실 우려가 있는 PF 사업장을 지원하기 위해 다음 달에 ‘PF 대주단 협약’을 가동하는 한편 정책금융을 28조4000억원으로 늘려 공급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경제다. 외부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상황은 다르지만 이번 SVB사태를 위험도 점검과 대비책 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은행들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숱한 어려움을 헤쳐왔고, 그때마다 더욱 단단해졌다.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사 로비에는 메시지 보드가 있다. 임직원들이 2023년 한 해 각오를 한 마디씩 적어놓았는데, ‘진흙은 불가마를 거쳐야 도자기가 된다’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금융회사들은 글로벌 리더를 꿈꾸지만 현재 세계 시장에서의 위치는 ‘수저 계급론’으로 보자면 아직 ‘흙수저’ 정도일 듯하다.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금수저’보다 더 값나가는 도자기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우상규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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