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사랑도, 애도도 할 수 없었던 시대… 공감하고 싶었죠”

김용출 2023. 3. 2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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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소설 ‘도둑맞은 자전거’ 한국어판 출간한 작가 우밍이
어느날 자취 감춘 아버지와 자전거 추적
자전거 궤적 따라가는 아들의 여정 그려
베일 싸인 아버지 과거·전쟁 실상과 대면
매혹적인 서사… 대만 첫 부커상 후보에
“서민사 등 다양한 자료 읽고 상상력 자극
시대 빠져들어 ‘허구’ 아닌 애정으로 집필
가장 애착 가는 인물은 전투코끼리 린왕”
“작가 선생님! 소설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이 타이베이 중산탕(中山堂) 앞에 자전거를 세워뒀는데, 그 자전거는 어디로 갔나요?”
대만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랐던 우밍이의 장편소설 ‘도둑맞은 자전거’가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생태문학으로 분류되는 그의 또다른 장편 ‘복안인’도 내년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출판사 제공
미처 생각해본 적이 없던 질문이었다. 일제 식민 시대 징용으로 일본 전투기 공장에서 일했던 타이완 소년공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수면의 항로(睡眠的航線)’를 2007년 출간한 뒤, 한 독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읽는 순간, 어떤 기억과 감각이 떠올랐다. 소설을 쓰기 위해 일본에 답사 갔다가 ‘들새의 숲’이라고 적힌 팻말 앞에 놓여 있던 오래된 자전거를. 마치 자전거 주인이 숲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지 못한 것처럼 숲에 빠져 들어가던 기분을. 자전거를 세워둔 채 혼자 숲으로 들어간 사람이 바로 자신 같다는 느낌을.
그는 답신을 보냈다. 앞으로 계속 소설을 쓰게 된다면, 소설을 통해 그 질문에 대답하겠노라고. 그로부터 적지 않은 곡절을 거친 뒤, 소설가 우밍이(吳明益)는 ‘흔적을 찾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먼저, 자전거에 스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타이완 근현대사를 추적했다. 타이완 근현대사와 서민사, 개인 회고록 등 다양한 자료를 읽고 상상력을 부풀렸다. 집필 도중에는 자전거를 실감하기 위해서 스무 대가 넘는 고물 자전거를 수집했다. 물론 그 사이 세 권의 책도 썼고. 그 가운데 한 권은 소설에 나오는 사진 작가를 더 선명하게 그려내기 위한 사진 에세이 ‘빛 위를 부유하다(浮光)’였다. 그는 “실제로 이 책을 쓰기까지 많은 곡절을 거친 셈”이라고 회고했다.
우여곡절 끝에 장편소설 ‘도둑맞은 자전거’(비채)가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었다. 2015년 대만에서 처음 출간됐고, 2017년 영어판, 최근 한국어판이 차례로 번역 출간됐다. 소설은 자전거를 매개로 아버지의 과거와 전쟁의 실상을 마주하게 되는 아들의 이야기다. 장 사이에는 별도 섹션으로 자전거 역사와 에피소드, 철학적 사색도 담겨 있다.

주인공 샤오청은 타이베이의 대형 상가 중화상창이 철거된 날 자취를 감춘 아버지와 자전거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청은 고물 수집가 ‘아부’를 통해서 사라진 자전거의 행방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되고, 자전거의 여정을 거슬러 올라간다. 여러 인물과 사건을 거치면서 자전거의 궤적은 뜻밖에도 말레이반도, 미얀마의 밀림 등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으로 이어지는데.

쩌우족 출신의 카페 주인이자 사진가 ‘압바스’, 전쟁 피해자임을 고백하지 못한 채 숨죽여 지내는 압바스의 아버지 ‘바쑤야’,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소설 쓰는 ‘사비나’, 식민 지배의 기억을 간직한 동물 애호가 ‘스즈코’…. 그리하여 베일에 싸여 있던 아버지의 과거는 물론 전쟁에 휘말린 인간들과 생명의 운명을 대면하게 된다. 특히 코끼리 시점에서 전쟁의 참상을 표현하는 대목에선 서정적 정서에 매혹적 분위기가 더해져 복합적인 감정이 휘몰아칠지도.

“코끼리는 이미 갑작스러운 죽음에 익숙했다. 사람의 것이든 코끼리의 것이든. 그들은 심지어 제 어미의 죽음을 목도하기도 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포탄이 토치카를 명중하자 깨진 돌조각이 세찬 빗발처럼 사방으로 날아갔다. 작고 날카로운 조각이 암컷 코끼리의 상처를 닦아주고 양동이 하나가 가득 차도록 쇳조각과 돌멩이를 빼냈지만, 사신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언젠가는 인간도 알게 될 것이다. 코끼리도 자신들처럼 캄캄한 밤과 밀림, 우기를 알고 슬퍼할 줄도 안다는 것을.”(375쪽)

대만 근현대사라는 씨줄과 가족사라는 날줄을 교직한 소설은 “대만 100년사의 기억과 자연환경에 대한 고찰이 뛰어나며, 매혹적인 서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등의 찬사를 받으며 2018년 타이완 작가로선 처음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랐다.

대만의 젊은 작가 우밍이는 왜 자전거를 매개로 대만 근현대사와 가족사를 이야기해야만 했을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향해 갈까. 우밍이 작가를 최근 출판사의 도움을 받아서 이메일로 만났다.

―왜 자전거를 소재로 했는지요.

“자전거의 역사에 빠져들수록 그 안에 아주 매력적인 소설 소재와 문화가 감춰져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 스스로 고물 자전거 수집가가 됐지요. 현재 서른 대가 넘는 고물 자전거를 갖고 있어요. 그것들을 수리해 복원한 뒤 직접 타고 달릴 때 무척 강렬한 느낌을 받습니다. 시대의 어느 작은 귀퉁이에 나사를 돌려 끼우는 느낌이랄까요. 인류의 역사 중에는 영웅사, 서민사도 있지만, 사물의 역사도 있죠.”

―집필 과정에서 어려움도 작지 않았을 텐데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상상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기 때문이죠. 한편으론 역사, 서민사 등 다양한 자료를 읽었습니다. 그중에는 개인들의 전기도 있었는데, 얼마 되지 않지만 아주 귀중한 자료들이었지요. 실제 역사를 소설에 접목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쓰는 사람이 그 시대에 진정으로 ‘빠져들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그 시대에 대해 ‘허구가 아닌’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청 이외에도 압바스, 바쑤야, 라오쩌우, 사비나, 스즈코 등 빛나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특별히 독자들이 더 관심을 갖거나 사랑해줬으면 하는 인물이 있는지요.

“그 인물들은 소설을 써 내려가며 점차 입체적으로 완성됐습니다. 물론 작가로서 그들의 삶에 애틋한 감정을 느끼지요. 라오쩌우 이야기 중 몇몇 단락에서 감정이 북받쳐 오른 적도 있고요. 하지만 제가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전투코끼리 린왕입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린왕으로 인해 제 글쓰기가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높이 날아오를 수 있었죠.”

―소설을 통해 독자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까.

“저는 이 소설의 대만판 표지글에 ‘그때 우리는 마음껏 애도할 수도, 마음껏 사랑할 수도 없었다’고 썼습니다. 그런 시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이 책을 읽어준다면, 제게 무척 감사한 일이 될 것입니다.”

1971년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태어난 우밍이는 1997년 소설집 ‘오늘은 휴일(本日公休)’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장편소설 ‘수면의 항로’, ‘복안인(複眼人)’, ‘도둑맞은 자전거’ 등을 발표했다. 타이베이국제도서전 소설 부문 대상, 프랑스 리브르 앵쉴레르상, 차이나타임스 오픈북어워즈 올해의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이나 작가로서의 비전은 어떤 것인가요.

“너무 당돌한 대답이 아니길 바라며, 사실 지금 쓰고 있어요. 보통 작가가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이 바로 그 시점에서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죠. 제 가족을 제외하고, 제가 현재 가장 관심 있는 문제는 중국의 위협입니다.”

그는 현재 대만 원주민과 시멘트 공장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환상, 신화적 요소를 가미한 소설 ‘해풍주점’(가제)을 집필 중이라고 전했다. 국립 둥화(東華)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창작과 문학 연구를 병행하는 그는 열렬한 환경생태운동가이기도 하다.

철커덕철커덕. 어느 날 오후 타이베이 거리에서 소가죽 안장 위에서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고 있는 우밍이를 볼지 모른다. 그의 자전거는 노면의 진동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거리를 달리고, 들판과 산을 달리다가 나무와 새와 맹수를 만나고, 하늘에 올라선 구름을 뚫고 별과 달 사이를 누빌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반대로 미래로 내달리기도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저 무한한 이야기의 세계로. 철커덕철커덕~.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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