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수록 영리한 ‘세이렌’ 디자인, 스벅 브랜딩의 비결

한겨레 입력 2023. 3. 21. 22:05 수정 2023. 3. 2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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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편집자에게 듣는 경제와 책 | 패스트컴퍼니 디자인 혁명
스타벅스는 새 이미지를 구축할 때마다 디자인에 차별화를 주어 브랜드 쇄신에 성공한 대표 기업이다. 이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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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비즈니스리뷰>(Harvard Business Review) 에디터 출신의 빌 테일러와 앨런 웨버가 비즈니스 잡지의 고루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뭉쳤다. 정장 차림으로 출퇴근길에 경제 이슈를 탐닉하는 회사원이 아니라, 창의적 아이디어와 세련된 감각으로 무장한 힙스터가 찾는 혁신적인 잡지를 만들고자 했다.

그들이 생각해낸 가장 강력한 혁신의 주체는 디자인과 디자이너다. 그렇게 비즈니스와 일상생활 모두에 영향을 미치며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브랜드, 디자인, 디자이너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잡지의 외현에 구현해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클래식함과 <롤링스톤스>(Rolling Stones)의 섹시함을 겸비한 잡지, 바로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의 창간 비하인드 스토리다. <패스트컴퍼니 디자인 혁명>은 바로 이 잡지가 30년간 축적한 디자인 역사의 산실이다.

브랜딩에서 디자인은 필수 요소다. 스타벅스는 새 이미지를 구축할 때마다 디자인에 차별화를 주어 브랜드 쇄신에 성공한 대표 기업이다. 2011년 스타벅스는 그들의 주력 상품이던 커피 메뉴에서 베이커리, 와인으로 품목을 늘리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로고에도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스타벅스 커피’(STARBUCKS COFFEE)라는 문구가 회사를 상징하는 마스코트인 세이렌을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문양이었다. 이번에는 문구를 없애고 세이렌의 얼굴을 확대했다. 그리고 다소 완벽해 보이는 세이렌의 얼굴에서 오른쪽 눈이 더 음영이 지도록 하고, 오른쪽 코가 더 깊어 보이도록 비대칭의 형상을 만들어 ‘인간적 느낌’이 드는 효과를 냈다. 게다가 기존 로고를 교묘하게 따라 한 싸구려 커피숍들의 카피 제품 때문에 생긴 골칫거리를, 고작 몇 픽셀의 수정으로 감히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난제로 만들어버리는 효과도 거뒀다.

디자인에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악하고 무식하다고 폄하되는 디자인이 의외의 힘을 발휘하는 일이 있다,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문구가 새겨진 새빨간 모자는 2016년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이끈 일등공신이었다. 반면 그의 적수인 힐러리 클린턴이 내세운 디자인은 고급스럽고 절제됐지만, 기득권층의 내러티브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유권자에게 버림받았다. 여기서 ‘좋은’ 디자인의 한계가 드러난다. ‘디자인이랄 게 없는 디자인’을 갖춘 모자 하나를 관광상품으로까지 발전시키며 대중의 뇌리에 박히게 한 전략은 선거 과정에서 얻은 숱한 비방과 인물이 야기한 논란에도 트럼프에게 승리를 가져다줬다.

더 이상 디자인은 겉으로만 그럴싸한 포장지 구실을 하지 않는다. 기후위기, 인종차별, 코로나19 등 인류의 생존과 존엄을 위협하는 여러 사회적 재난 앞에서 디자인과 디자이너가 짊어져야 할 책임은 더욱 막중해졌다. 그에 따라 장애인을 위한 게임기, 혹독한 기후에도 생존하는 주택, 코로나바이러스 검출을 위해 특수 제작된 면봉, 무라벨 생수병 등 의미 있는 결과물이 탄생했다.

브랜딩부터 공공서비스까지 아우르는 디자인의 가장 큰 존재 의의는 다름 아닌 ‘문제 해결’에 있다. <패스트컴퍼니>는 분야를 불문하고 디자인을 도구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저널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자신들의 지난 과오(예로, 그간 극찬해온 기업과 산업이 실은 불평등을 강화하고 묵인했다는 점)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그렇게 모두를 위한 디자인의 중요성을 천명하며 마무리 짓는 이 책은 우리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겨야 할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한다. 정말이지 디자인의 손길이 닿지 않을 곳은 어디에도 없다.

박영서 이콘 편집자 bookoming@econ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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