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웃지만…석유화학업계 ‘기후 무역장벽’ 가로막힐 수도

박상영 기자 2023. 3. 21. 21: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원료 확보 어려운 상황 등 감안해 감축률 줄었지만
3년 뒤 유럽 ‘탄소국경조정제’ 도입…규제 산업 되면 ‘부담’

정부가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률을 14.5%에서 11.4%로 줄인 데는 석유화학 기업들이 현실적으로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친환경 원료 확보가 어려운 데다 최근 정유사들이 대규모 석유화학 설비 투자에 나서자 부담을 덜어준 것이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기후규제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이번 온실가스 감축목표 후퇴가 산업 경쟁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1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국회 보고자료를 보면 정부는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률을 낮추는 근거로 “바이오 나프타 부족, 수소혼소기술 상용화 지연으로 석유화학 온실가스 감축이 곤란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석유화학업종 온실가스 부담 완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도 “기술 개발 지연과 원료 확보 등의 문제로 석유화학업종의 탄소 감축량이 주로 조정됐다”며 “철강 등 다른 업종의 경우 소폭 조정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석유화학은 대표적인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 상위 30대 기업 중 석유화학 기업이 9개일 정도로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석유화학 업체들이 막대한 규모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이유는 원유 기반인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프로필렌 등의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는 나프타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주로 배출된다. 석유화학 업체들도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나프타를 대두유, 팜유, 폐식용유를 재활용한 바이오 나프타로 대체하려 하지만 원료 조달의 안정성과 높은 가격이 발목을 잡고 있다.

나프타를 분해하는 데 필요한 고온의 열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온실가스가 나온다. 업체들은 기존 석탄화력 대신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생수소를 연료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아직 상용화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국내 1위 화학업체인 LG화학 감사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 추정치는 862만t으로 5년 전인 2017년(766만t) 대비 12.5%나 늘었다.

최근 정유사들이 석유화학 설비에 대규모 신규 투자를 한 점도 석유화학 온실가스 감축률을 재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에쓰오일은 단일 사업으로는 최대 규모 외국인 투자 사업인 ‘샤힌(shaheen) 프로젝트’를 통해 2026년까지 석유화학 사업 비중을 2배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현대오일뱅크도 롯데케미칼과의 합작사인 현대케미칼 대산 HPC 공장 가동을 시작으로 석유화학 사업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GS칼텍스는 2조7000억원을 투자해 전남 여수에 설립한 석유화학 설비인 올레핀 생산시설을 올해부터 본격 가동한다.

석유화학업계는 이번 감축률 재조정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온실가스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조달해야 하는 바이오 연료 규모는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신규 투자 반영 등 현실화가 필요한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가 탄소배출 감축 규모를 완화한다 하더라도 2026년부터 도입되는 유럽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기후규제는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EU 수입업자는 한국산 제품에 포함된 탄소량만큼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석유화학은 일단 규제 품목에서 빠졌지만 향후 시범시행 기간 새로 포함될 가능성도 크다. 산업부 관계자는 “EU 규제 수준을 맞추다 보면 생산비용이 늘어나 오히려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에서 수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