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간의 오복과 죽음

경기일보 2023. 3. 2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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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운 가평군청 자치행정과 주무관

인간은 누구나 많은 축복을 향유하면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동양에서는 일찍이 사서삼경에 장수(長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오복이라 했고, 그후 세월이 흘러 청나라 때는 수(壽), 부(富), 귀(貴), 강녕(康寧), 자손중다(子孫衆多)를 오복으로 여겼다. 우리나라 옛 선조들의 오복도 중국의 오복과 비슷한데 치아건강, 부부해로(夫婦偕老), 죽은 후 명당에 묻히는 것 정도가 차이가 있다. 결론은 인간은 누구나 건강하고 부유하게 살면서 자손이 번성하고 선행을 베풀며 덕을 쌓고 존경받으면서 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돼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지금 상당부문 오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우리의 평균 수명이 80세에 이를 정도로 장수하고 있고, 1인당 GDP 3만5천달러 시대에 살고 있으니 과거의 절대 빈곤은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또 나이가 들었어도 건강을 챙기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어르신도 많으며 봉사활동이나 자선을 베풀며 타인을 위해 베풀며 사는 인생도 많다. 또 많은 국민이 치과병원의 이용률을 높여 건치를 유지하며 산해진미의 미각을 느끼며 잘 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임종(臨終)과 관련된 고종명(考終命)의 실현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 삶은 죽음에 의해 완성된다고 봤을 때 고종명은 오복의 중요한 요소이다. 자기 집에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천수를 누리다가 편안하게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 쉬워보여도 쉽지않다. 그래서 와석종신(臥席終身)이라는 말까지 있는지 모른다. 오늘날 지구촌에는 지진과 전쟁으로 많은 생명이 뜻하지 않은 죽음과 조우하고 있다. 또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것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집 밖에서 객사하는 것도 고종명과 거리가 멀다.

상당수 노인들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한다. 이제 부모님이 노쇠하고 여러 질병으로 거동이 불편해 요양병원이나 종합병원에 입원하게 될지라도 상황이 악화돼 임종이 가까워지면 집에 모시고 와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세상과 하직하게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몸이 늙으면 마음도 함께 늙는다. 늙을수록 어린이와 같이 된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늙을수록 마음이 약해지고 감수성이 예민해져 인생이 허무해지고 센티멘탈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래서 많은 노인들이 죽음 자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한다. 이럴 때 친숙한 가족, 자신이 사용한 가구, 옷, 방 등의 체취는 당신의 마음을 편안히 가라앉히고 죽음을 기꺼이 껴안을 수 있게 할 수 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하찮은 미물인 여우조차 죽을 때는 고향을 그리워 할진데 감정의 동물인 인간이 죽음과 직면해 익숙한 고향집 자신의 방이 그리워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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