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어봅시다] 연금개혁 `강 건너 佛구경`
청년세대 위해 정권리스크 감수
한국선 정부·국회 '핑퐁게임'만
"표 떨어질라" 정치권 주저주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국민 70%의 반대에도 연금개혁안을 밀어붙였다. 프랑스 미래세대를 위해 정권의 리스크를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청년 세대에 폭탄돌리기가 될 게 자명한데도 표 논리로 국민 여론의 눈치를 보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한국 정치권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반 근로자의 은퇴 연령(정년)을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늦추는 연금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마크롱 대통령의 서명만 남겨놓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개혁안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의 15.9%에 달하는 연금 지출로 인한 재정 압박 가속화 △30년간 지지부진했던 개혁 속도 △대선공약 이행 등이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16일(현지 시각) 연금 개혁 법안의 하원 표결을 앞두고 의회 동의 없이 정부 단독 입법을 가능케 한 '헌법 49조 3항'을 전격 발동했다. 하원 통과가 힘들 것으로 예상되자 프랑스 헌법 특유의 조항을 동원한 것이다.
프랑스 야당과 노동 단체들은 이날 파리, 마르세유, 낭트 등 24개 도시에서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야당은 연금 개혁 법안의 입법을 무산시키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내각의 불신임안까지 제출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하원은 20일(현지 시각) 불신임안을 9표차로 부결시켰다. 우파 공화당이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리비에 마를렉스 공화당 하원 대표는 이날 하원에서 "우리의 연금 제도를 구제하고, 은퇴자의 구매력을 보호하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크롱은 연금 개혁에 한 걸음 다가섰지만 정치적인 내상을 입었다. 여소야대 구조 속에서 남은 임기 4년 동안 의회 동의가 필요한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연금개혁처럼 정치적·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금 개혁이 계속 공전하는 한국의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은 정부와 국회가 연금개혁안을 놓고 핑퐁게임만 벌이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310일째 지지부진하다. 연금개혁 논의는 지난해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3대 개혁과제로 제시했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의 기본 방향성을 틀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권은 여론의 눈치만 보고 있다. 총선을 1년여 앞두고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는 1월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5%까지 올리는 것을 뼈대로 한 연금개혁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도가 나온 뒤 부정적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15% 단계적 인상 방안은 정부안이 아니다"라며 "향후 국회 연금특위에서 개선 방안이 마련되면 해당 내용을 참고해 국민 의견을 반영할 것"이라고 물러섰다.
이에 연금특위 여야 간사가 공을 넘겨받았다. 하지만 여야는 지난달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연금 수령 연령 등 연금체계의 여러 요소를 조정하는 모수개혁이 아닌 구조개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사실상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정부가 국회에서 먼저 논의를 거쳐 의견을 제시하면 정부가 이를 토대로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안을 내놓겠다는 계획이었으나 국회가 다시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연금개혁 일정도 계속 미뤄지고 있다. 애초 자문위는 연금개혁 초안을 1월 말 제출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국회 연금특위에서 4월까지 개혁안을 마련할 예정이었다. 일각에선 여야가 10월 발표될 정부계획안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다, 총선 이후에나 개혁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연금개혁이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는, 표를 얻는 데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정책"이라며 "당초 문재인 정부에서 개혁을 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켜봐야겠지만 윤석열 정부가 연금개혁을 추진한다면 정치적으로 타격을 크게 입을 수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할 일은 해야 한다. 평가는 역사가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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