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본드가 왜 주식보다 후순위”…스위스, 상식 깬 걸까요? [뉴스AS]

이재연 2023. 3. 2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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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로이터 연합뉴스

“코코본드는 채권인데 왜 주식보다 더 큰 손실을 강요받아야 하죠?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요?”

크레디스위스(CS·크레디트스위스) 매각 과정에서 ‘코코본드’(조건부자본증권) 22조원어치가 전액 상각된 데 대한 투자자들의 반발이 뜨겁다. 원칙적으로 채권의 변제 순위는 주식보다 높아야 하는데 스위스 당국은 이런 상식을 무시했다는 논리다. 그 여파로 다른 글로벌 은행들의 코코본드 가격도 추락하며 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코코본드의 태생적인 딜레마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코코본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강화하고 위기 상황에는 투자자에게 손실을 부담 지우기 위해 도입됐다. 투자자 보호나 투자심리 안정이라는 가치와는 상충될 가능성이 내재돼 있는 셈이다. 특히 지금처럼 시장 변동성이 클 때는 상충관계가 심화할 수 있는 만큼 혼란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9년 전 이미 경고…“주식보다 채권 후순위 가능”

코코본드가 시장에 본격 등장한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다. 당시 파산 위기에 처한 대형 금융회사들에 공적자금이 투입되자, 이들을 구제하는 데 납세자의 세금이 쓰이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특히 위기 상황에도 손실을 크게 떠안지 않는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도 은행의 자기자본으로 인정받아왔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은행의 자본은 손실을 흡수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도입된 바젤3 규제는 은행 자본의 손실 흡수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영구채 성격을 띠는 동시에 특정 상황에는 자동으로 채무가 소멸(상각)되거나 보통주로 전환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야만 자본으로 인정했다.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이라는 이름이 붙은 배경이다. 코코본드는 바젤3 규제상 기타기본자본(AT1)에 해당하며, 기타기본자본과 보통주자본의 합계는 위험가중자산 대비 6% 이상이 돼야 한다.

코코본드는 태생적으로 고위험 채권이라는 얘기다. 21일 금융위원회가 코코본드 도입 당시 발표했던 자료를 보면, 공적자금 등의 투입 없이는 은행의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금융위가 판단할 경우 코코본드를 강제로 상각하거나 주식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시장이 크게 흔들릴 때는 예고 없이 휴지 조각이 될 리스크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신용평가사들도 시중은행의 코코본드에는 선순위채권보다 두 단계 정도 더 낮은 등급을 부여한다.

주주보다 채권자가 더 큰 손실을 보는 것도 가능하다. 2014년 유럽 증권감독당국(ESMA)이 낸 자료를 보면, 당국은 코코본드의 상각 조건에 따라 손실 흡수 순위가 역전될 리스크가 있다고 명시했다. “통상적으로는 주주들이 가장 먼저 손실을 흡수해야 하지만, 코코본드의 경우 주주는 손해를 입지 않으면서 채권자만 손실을 떠안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위험 알고 투자했는지 의문”…흥국생명 때와 비슷

문제는 코코본드의 시장가격에 그런 리스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4년 유럽 증권감독당국은 “투자자들이 코코본드의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고 그런 위험을 가치평가에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불분명하다”고 했다. 그 덕에 은행들이 비교적 저렴한 금리로 자본을 조달하고 있지만, 향후 투자자 보호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내비쳤다. 은행의 건전성 강화와 투자자 보호 사이의 ‘줄타기’가 실패할 조짐이 그때 이미 드러났던 셈이다.

크레디스위스 사건으로 혼란은 가중되는 분위기다. 코코본드를 둘러싼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되자, 유럽중앙은행(ECB)은 20일(현지시각) “가장 먼저 손실을 흡수하는 건 보통주이며, 보통주가 모두 활용된 뒤에만 기타기본자본(AT1) 상각이 요구될 것”이라고 밝혔다. 9년 전 증권감독당국의 성명과는 방향성이 달라진 셈이다.

결국 금융회사 자본의 손실 흡수 기능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흥국생명보험의 신종자본증권 사태와도 닮아 있다. 보험사 등의 경우 영구채 특성을 띠지만 상각·주식전환 조건이 없는 신종자본증권도 자본으로 인정된다. 보험사들은 이를 5년마다 조기상환할 수 있는데 그 여부는 전적으로 보험사 선택권이다. 시장 상황이 나쁠 때는 조기상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지난해 흥국생명이 조기상환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히자 시장은 패닉에 빠졌고, 결국 금융당국 주도로 조기상환이 이뤄진 바 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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