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정수 확대 감정적 접근 말고 효과 따져야”···전문가들이 의원수 늘리자는 이유
국회에서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논의가 시작도 되기 전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위기에 처했다. 국민의힘이 “의원정수 확대는 절대 없다”(김기현 대표)고 선을 긋고, 더불어민주당도 “우리 당도 반대 의견이 다수”(오영환 원내대변인) 등으로 호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계에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 한국이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져 왔다. 행정부 견제와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도 의원 정수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의원 정수 확대 논의는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안하고 국회 정치개혁특위 정치관계법개선소위가 지난 17일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논의하자고 의결한 3가지 안 중 1·2안에서 의원 정수를 300석에서 350석으로 늘리자고 하면서 본격화됐다. ‘소선거구제 +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소선거구제 +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현재 지역구 의석 253석을 그대로 둔 채 비례대표를 47석에서 97석으로 늘리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국민의힘을 시작으로 민주당도 의원 정수 확대가 당론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나섰다. 여론의 반대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달 정개특위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비율(57.7%)은 동의하는 비율(29.1%)의 2배에 이르렀다.
여론과 달리 정치학계에선 꾸준히 의원 정수 증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 논거는 민주주의가 발전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국 의원 수가 부족하다는 논리, 행정부가 비대해진 추세에 맞춰 이를 견제할 입법부를 키워줘야 한다는 논리, 지역구 의원 수를 많이 줄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늘리는 개혁을 위해 의원 수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을 들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펴낸 <2022년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의원 1인당 인구는 17만명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만명)의 2배 이상이다.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미국(63만명), 멕시코(21만명), 일본(18만명) 뿐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미국 하원 기준으로 하면 국회의원 80명이면 된다”(지난 18일 사회관계망서비스)고 하지만 미국은 연방제 국가로서 특이성이 크고 각 주(state)가 주요한 정치단위라서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국회의장의 1·2안대로 정원을 350명으로 늘린다 해도 의원 1인당 인구가 14만명 수준으로 독일(13만명) 등 정치 선진국보다 여전히 높다. 한국과 인구가 비슷한 영국과 프랑스는 하원 의원만 해도 각각 650명, 577명으로 한국보다 월등히 많다.
한국도 1948년 제헌의회 때는 인구 1920만명에 의원 200명으로 의원 1인당 9만5000명 수준이었다. 이후 인구가 급속히 늘어 5000만명을 넘었는데 의원 수는 300명에서 멈추면서 의원당 인구 수가 크게 늘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2018년 정개특위 선거제도 공청회에서 “국회의원 1명이 대표하는 인구 수는 작을수록 좋다”며 “민주화가 된 1988년 수준에 맞추려면 372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힘이 큰 한국에서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 입법부를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행정부는 1987년 민주화 후에도 날로 비대해졌다. 예산 규모는 1988년 17조원대에서 올해 639조원으로 약 36배 늘었다. 정부조직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중앙공무원 숫자는 1987년 말 47만7000명 수준에서 지난해 말 75만8000명 수준으로 크게 증가했다. 입법부 공무원은 보좌진 및 국회 직원들을 합쳐도 4176명에 불과하다. 올해 국회에 배정된 예산은 7166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0.1% 수준이다. 의원 수를 늘려 대통령실, 검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비롯해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1일 통화에서 “예산을 감시·감독하는 비용 측면에서 보면 국회 의석이 늘어도 투자 대비 효율이 썩 나쁜 것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선 국회의원 증원에 대한 국민 반감을 줄이기 위해 국회의원이 받는 전체 예산을 동결한 상황에서 의석 수를 늘리자는 주장도 나온다.
제대로 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의원 정수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승자독식인 소선거구제의 문제를 완화하고 양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다당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지역구 대비 비례대표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은 이번 국회에서 300명 중 47석만 비례대표로 비중이 16%에 그친다. OECD에서 혼합형을 적용하는 독일(59%), 일본(38%, 중의원), 멕시코(40%, 하원)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그나마 2004년 총선 때 56석이었던 비례대표가 47석으로 도리어 줄었다. 지방 소멸에 대응해 농어촌 지역 의석 수를 지키면서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선거구간 인구 차를 2배 이내로 유지하려다 보니 점점 수도권의 지역구를 늘린 것이다. 특히 국회에서 논의가 활발한 권역별 비례제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비례 의석수가 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현재의 47석을 6개 권역으로 배분해봤자 권역당 10석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같은 공청회에서 “비례 의석 비율이 지역구의 절반 이상은 돼야 최소한의 비례성을 확보할 수 있다. 현역 의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려 지역구 축소는 쉽지 않고 지역구민과의 정치적 연계, 지역 대표성을 고려할 때 지역구 축소가 능사는 아니다”라며 “의원 정수를 늘림으로써 비례대표의 과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다원주의 연합정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출발선이 선거제도 개혁”이라며 “의원 정수 확대는 안된다고 먼저 선언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한국 상황에 맞는 논의를 통해 귀납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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