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손 부족하다고…'차명근무' 눈감은 물류업체
타인 신분증 보여줘도 고용
업체는 각종 수당 안줘도되고
근로자는 국세청 감시망 피해
실업급여 부정수급 온상으로
물류업계 인력난이 심화하면서 일부 물류창고 업체들이 인력 수급을 위해 '차명근무'를 통한 내국인 불법 고용을 눈감아주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같은 불법 차명근무로 업체와 근로자 모두 세금을 피해 가고 실업급여 등 각종 정부 지원금을 부정 수급할 수 있어 국고가 줄줄 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일부 물류창고에서 업체 측이 근무자 신분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차명으로 근무하려는 이들을 채용하는 관행이 암암리에 널리 퍼져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차명근무를 하는 근로자들은 가족이나 지인의 신분증을 사용해 업체 측과 계약을 맺는 것으로 파악됐다. 원칙적으로는 일용·단기 근무자라 하더라도 근무자 본인 명의의 신분증을 제출한 뒤 그 명의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인력난에 근무자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구인이 시급한 업체들이 최대한 많은 이들을 모으기 위해 차명근무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물류센터는 인원 맞추기에 급급해 차명근무를 눈감아 주고 있다"며 "근무자 본인의 신분증이 아니라 타인 명의 신분증을 가져가거나 휴대폰으로 타인의 신분증 사진만 보여줘도 고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물류업계에서 차명근무가 성행하는 이유는 고용주와 근로자 모두의 요구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차명근무를 한 경우 대부분 현금으로 일당을 당일 지급하거나 명의를 빌린 이의 통장으로 돈을 받는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근로기준법을 피해 인력을 자유롭게 고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근로자의 약점을 빌미 삼아 각종 수당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불법을 눈감아 주는 업체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들은 주52시간제를 준수해야 하며 월 8일 또는 월 60시간(8회 출근 시) 이상 근무 시 4대 보험에 필수로 가입해야 한다. 업체는 각종 야간·연차·퇴직 수당 등도 지급해야 하지만 차명근무 시 이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류업체 관계자는 "업체는 각종 수당 지급을 피하기 위해 차명근무를 명목으로 근로자와 5일 단위 쪼개기식 계약을 체결하면서 근로비 지출을 줄이는 꼼수를 쓰곤 한다"고 전했다.
국세청의 눈을 피해 소득을 챙길 수 있어 근로자들이 차명근무를 먼저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이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어 이 방법을 선호한다. 처음에는 본인 명의로 근로계약을 맺은 뒤 실업급여를 수급할 수 있는 기간을 채우면 회사를 그만둔 것처럼 서류를 만들고, 이후에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가족이나 지인 명의를 빌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식이다.
매일경제 취재 결과 물류센터에서 근무하기 힘든 나이가 많은 근로자들이 있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부모의 명의를 빌려 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물류센터에 기자가 직접 '차명근무 가능 여부'에 대해 문의한 결과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실업급여 수급자의 경우 근로를 통해 돈을 벌었거나 현금으로 돈을 받았어도 신고해야 하며, 이 경우 월 9일까지만 근로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월 60시간 이상(주 15시간 이상 포함) 혹은 3개월 이상 계속 근로하고, 월 80만원 이상 계약을 체결한 상태에서 실업급여를 받으면 부정수급 대상자가 된다. 하지만 차명근무를 하면 이 같은 제한에서 모두 자유로울 수 있다. 불법 고용이 정부 지원금 부정수급자 적발 사각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물류업계의 이 같은 관행이 부정수급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실업급여 부정수급은 2013년 2만1735건에서 2022년 2만3907건으로 늘었다. 부정수급액은 같은 기간 117억900만원에서 269억1000만원으로 더 큰 폭으로 증가하며 환수율이 89.29%에서 72.08%로 감소했다.
물류센터 차명근무는 '실업급여 부정수급 안 걸리는 방법'으로 수급자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공유되고 있어 실제 적발되지 않은 건수와 금액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나은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3000만원에 이만한 車 없다”…7년 품질내공, 말썽없는 갓성비 SUV [카슐랭] - 매일경제
- 오죽 급하면 30만원에 ‘알몸 대출’…문턱 높아진 급전 시장 - 매일경제
- 정용진도 인증샷 올려…아침부터 주차장 만석 ‘핫플’ 가보니 [르포] - 매일경제
- 은행만 돈잔치 하는게 아니네…연봉 1억원 넘는곳 ‘수두룩’ - 매일경제
- 대한항공 기내 실탄 반입 용의자 누군가 했더니...70대 미국인 남성 - 매일경제
- “다리 후들, 심장 벌렁”…5성호텔 화장실서 여배우 ‘공황발작’ - 매일경제
- “라떼만 마시면 배 아팠는데”…커피숍이 도입하고 있는 이것 - 매일경제
- 한강에 떠서 노들섬 감상해볼까...이촌에 덴마크식 부유 수영장 - 매일경제
- 편의점서 삼겹살을…열흘만에 천마리 분 팔아 - 매일경제
- 귀화선수 오주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이종세 칼럼]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