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덕칼럼] 다시 제조업

손현덕 기자(ubsohn@mk.co.kr) 2023. 3. 2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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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가 '제조업주권' 강조
절호의 기회 맞은 한국
22일 매경 국민보고대회서
제조강국 도약의 길 선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획처장으로 있는 김경수 교수는 기계공학 전공이다. 로봇, 자동차 등에 100편이 넘는 특허를 보유한 그는 지난 2017년 퓨처이브이(EV)라는 기업을 창업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필수품이었던 '다마스'와 '라보'가 사라진 틈새를 노리고 소형 상용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전공도 그렇고 비즈니스도 그렇다 보니 제조업, 특히 공장과 친숙하다.

강의 중 산업시찰은 필수다. 학생을 데리고 자동차, 조선, 철강 등 대기업뿐만 아니라 뿌리산업에 해당하는 주조, 금형, 금속가공 공장도 둘러본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턴 기본이 되는 산업시찰을 그만뒀다. "공장 갔다 오면 전공 이탈자가 우수수 생기거든요." 그의 푸념은 우리나라 제조업 현장에 젊은 피 수혈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영학에 생산관리란 분야가 있다. 한때는 잘나갔다. 취업도 자동 보장. 그러나 요즘은 이 분야를 전공하는 교수들이 줄어든 데다 일부 대학은 필수에서 선택으로 돌렸다. 김연성 인하대 교수는 생산관리 전공으로 31년 만에 경영학회장에 선출된 인물. 그동안 얼마나 찬밥 신세를 받았는지를 단적으로 입증하는 사례다. 그나마 스마트공장 등의 이슈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 자위하는 김 교수.

숭실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해 40년을 생산 현장에만 있었던 김종호 전 스마트공장지원센터장. 생산과 관련해서는 신(神)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그는 "제조업은 기능과 기술이 복합된, 즉 장인과 컴퓨터(자동화), 더 나아가 AI(지능화)가 함께 시너지를 내는 종합예술"이라며 "그 점에서 지금 한국은 장인들의 경험이 컴퓨터의 첨단에 접목되지 못하는 단절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경제의 성공 신화를 쓴 주역은 제조업이며 그 핵심은 공장에 있었다. 최근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의 소형모듈원전(SMR) 기업인 뉴스케일파워와 원전설비 제작협약을 맺고 본격적인 생산에 착수했다. 원전 기자재를 제작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를 통틀어 모두 6개국. 중국과 러시아는 논외고 나머지 일본, 프랑스, 스페인이 있는데 다들 제조 역량이 부족하다. 결론은 코리아다.

조선업은 지난 1993년 일본으로부터 1등을 탈환한 이후 30년간 꿋꿋하게 세계패권을 지키고 있다. 수주 절벽을 맞고 대규모 적자에 시달린 적도 있었지만 여전히 달러박스다. 벌크선 같은 저가 선박이야 중국에 내줬지만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은 한국 빼곤 주문 낼 나라가 거의 없다.

미국이 중국과의 기술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내건 전략이 '제조업 부흥'이다. 혼자서만 할 수 없으니 연합군을 형성하고자 한다. 반도체 배터리는 한국이 필수다. 설명을 주렁주렁 달면 글이 구질구질해진다. 기능과 기술의 문제만은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시기에 정해진 물량을 댈 수 있는 나라는 흔치 않다. 50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혼을 불어넣어 시작한 중화학공업 육성이 오늘날 대한민국 제조업을 강하게 키웠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제조업은 짧은 시간에 갑자기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고 말한 건 그런 맥락에서다.

전 세계가 제조업 주권을 찾고자 하는 지금이야말로 한국으로선 절호의 기회라는 주장은 그래서 타당하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오히려 위험 신호를 보내는 아이러니. 오늘 아침 매일경제가 제33차 국민보고대회를 앞두고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혁신지수는 프랑스에도 밀려 세계 7위다. 자동화 탈탄소화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탓도 있지만 핵심은 인적자원 부족과 정부 규제 등 인프라의 열세였다. 전 세계가 제조업 육성에 총력전을 펼치면서 국가대항전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은 언제부턴가 제조업에 손 놓고 뒷걸음질 친 결과다. 매일경제가 다시 제조업을 외치는 이유다. 강한 제조업이 강한 경제를 만든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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