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소주 넘어선 위스키

심윤희 기자(allegory@mk.co.kr) 2023. 3. 2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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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의 직업은 가사도우미다. 일당을 많이 받지 않지만 그녀의 취미는 혼자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 한잔을 마시는 것이다. 집세와 물가가 뛰자 그녀는 방을 뺀다. 위스키라는 '취향'을 지키기 위해 집을 포기한 것.

영화 속 얘기라지만, 현실 세계 MZ세대의 위스키 열풍도 영화 못지않게 뜨겁다. 인터넷 위스키 카페에는 위스키 초보자 '위린이'들의 입문기가 줄을 잇는다. 한 위린이가 쓴 글. "블렌디드만 마시다 싱글몰트 셰리 맛을 알아버렸네요. '발베니' 더블보단 트리플이 더 맛이 좋았던 기억이…." 복잡한 표현을 해석하면 이렇다. 여러 증류소의 위스키를 섞은 것(블렌디드)만 마시다가 한 증류소에서 맥아로 만든 위스키(싱글몰트), 그것도 스페인산 셰리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한 오크통에 숙성시킨 싱글몰트를 알게 됐다는 것. 게다가 3개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원액을 섞어 풍미가 다양한 발베니를 좋아한다는 의미다. 일본에서도 단종되거나 품귀인 야마자키, 히비키를 구한 무용담도 넘쳐난다.

'중장년 남성의 술'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위스키가 2030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코로나19로 혼술·홈술 문화가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다. 도수가 높은 위스키에 탄산음료를 섞은 하이볼 인기 영향도 컸다.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 '위스키 오픈런' 진풍경이 펼쳐지고 희귀템들이 순식간에 동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얘기. 급기야 이마트의 올해 1~2월 위스키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소주를 추월했다고 한다. 지난해 위스키 수입도 2억6684만달러로 전년 대비 52.5%나 폭증했다.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2030의 문화도 위스키 열풍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젊은 층의 '소확행'을 허세와 사치로만 몰아갈 일은 아니다. 석탄 향이 나는 피트 위스키 '라가불린' 마니아인 영화배우 조니 뎁은 잠시 술을 끊었던 시기에도 라가불린을 주문해 향만 맡았다고 한다. 위스키든 소주든 술에 대한 진심, 개인의 취향은 존중돼야 한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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