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NOW] ⑤경직된 연구자 인건비 운용, 인력 이탈 부른다(끝)

고재원 기자 ,박정연 기자 2023. 3. 2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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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31조 1000억 원. 올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다. 전년 대비 1조 3000억 원, 약 4.4% 증가했다. 최근 10년 간 정부 R&D 예산은 매년 상승 곡선을 그렸다. 연평균 증가율이 6.42%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다. 막대한 금액을 연구개발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연구기관 총예산은 2022년 기준 약 5조6000억원이다. 이 중 정부 출연금은 총 2조1426억원으로 인건비가 8035억원을 차지한다. 직접비에 해당하는 R&D 비용은 1조1241억원에 달했다. 

이같은 규모의 정부 출연금을 받는 출연연 연구개발 현장에선 그야말로 '곡소리'가 나온다. 매년 늘어나는 연구개발비에 비해 인건비와 인력은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연구를 수행할 인력의 숫자는 한정돼 있고 보수도 늘어나지 않으나 수행해야 할 일만 많아지는 모양새라는 게 현장의 불만이다. 

21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따르면 올 1월 NST 산하 25개 과기계 출연연 총 정원은 1만 5858명이다. 지난해에 비해 고작 11명 늘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개발 사업으로 5명,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심해저자원 개발을 위한 물리탐사연구선 '탐해3호' 사업으로 4명, NST가 2명의 신규 인력을 배정받았다. 출연연 현장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 25개 출연연 올해 349명 인력 증원 요청...11명만 늘어나

항우연과 지질연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연의 인력 증원 요구들은 모두 묵살됐다. 25개 출연연들은 349명의 인력 증원을 요청했으나 11명을 제외하고 모두 반영되지 못했다. 최근 5년 간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22년 442명을 증원 요청해 55명이 늘었다. 2021년은 444명 요청에 54명, 2020년 364명 요청에 59명, 2019년 264명 요청에 109명이 늘었다. 

요구하는 규모보다 적은 인력이 충원되는 상황에서 R&D에 투입되는 비용이 늘어나면서 참여 연구 개수와 규모는 확대되고 있는 구조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연구비가 증가하는 속도에 비해 인력 증가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기존 인력이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연구개발 예산을 450억원을 배정받아도 이 금액은 직접비 개념이라 인건비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직접비에는 연구개발 비용과 시설 비용이 포함되고 인건비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직접비가 아무리 늘어나도 인건비가 늘어나지 않는 이상 인력 충원은 물론 출연연 연구자들의 사기 진작도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이 관계자는 “직접비에서 쓸 수 있는 인건비는 주로 박사후연구원이나 계약직 등 R&D 활동에 필요한 인력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연구비와 인건비 지갑이 따로 관리돼 연구비와 인건비가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라 말했다. 

○ 총액 인건비에 묶인 연구자 보상...경직된 인건비 운용으로 인력 이탈

개별 연구자에 대한 보상 역시 제자리 걸음이다. 현재 출연연 인건비는 예산당국의 총액 인건비 제도 하에 운영되고 있다. 정해진 규모 내에서 인건비를 분배한다. 제한 금액 내에서 인건비를 모두에게 쪼개다보니 개별 연구자가 원하는 수준의 인건비를 맞춰주기 쉽지 않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개별 연구자에 대한 보상을 늘리기 위해 출연연이 각자 알아서 벌어서 쓰는 구조도 불가하다”며 “인건비 한도액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출연연은 인건비 운용 자율권도 상실했다. 인건비 상하한선이 이미 정해져 있어서다. 예를 들어 A 기관과 B 기관 각각 인건비로 500억원을 받았다. A 기관은 1억원씩 500명을, B 기관은 5000만원씩 1000명을 고용할 수 있는 자율권이 없다는 것이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규모에 맞는 인력을 제때 수급할 수 없는 구조”라며 “현장에서는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하는 게 아닌데 정부는 돈만 준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공공기관 지정에 따른 임금피크제 적용도 약점으로 작용한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박사학위를 마치고 30대 중반 정도에 입사하는 연구직은 사실상 근속 연수가 30년 정도에 불과한데 도중에 임금까지 삭감되니 더 좋은 여건을 찾아 대학이나 다른 기관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지적했다. 사기업과 비교하면 임금과 근무 조건은 더욱 열악해진다고 덧붙였다. 결국 경직된 인건비 운용은 출연연 인력 이탈의 원인이 되고 있다. 

○ "출연연 경쟁력 확보 위해 변화 모색해야"

출연연 인력을 증원하거나 인건비를 올리지 못하는 것은 기획재정부가 돈줄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기재부는 타 공공기관과의 형평성, 기관 운영 효율화 등을 내세운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나라 살림살이를 하는 기재부의 입장은 백 번 이해한다. 돈과 관련된 문제는 항상 밀고 당기기의 싸움 같다”며 “그러나 이제는 한번 기재부가 져줘야 할 시기가 온 것으로 보인다. 출연연이 연구자들에게 매력이 없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출연연 인력 수급이나 처우 개선은 전망이 밝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공공기관의 파티는 끝났다’며 공공기관 고강도 혁신을 추진해오고 있다. 재정건전화가 제1목표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기재부가 출연연의 정원 감축을 압박하고 강제 구조조정을 예고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출연연 인건비 문제는 총액의 증원뿐만 아니라 세부적 손질도 시급하다. 대다수 출연연은 출범 당시 책정된 인건비 규모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설립 당시 출연연별로 생긴 격차 또한 그대로란 설명이다. 지난해 과기정통부 국정감사에 따르면 출연연 중 임금이 가장 높은 곳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으로 1인당 평균 보수가 1억1300만원에 달한 반면 녹색기술센터(GTC)는 6700만원에 불과해 약 4600만원이 차이가 났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총정원 대비 인력을 채우지 못하는 기관도 속출하고 있다"며 "출연연의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리고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만들기 위해선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의지를 보여주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재원 기자 ,박정연 기자 jawon1212@donga.com,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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