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성 없이도 그들의 증언이 힘을 얻도록, 논의는 다시 시작돼야 한다[플랫]

플랫팀 기자 2023. 3. 2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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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1~3화인 JMS(기독교복음선교회) 에피소드 방영 후 벌어진 논의는 조지 레이코프의 유명한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비틀어 인용하면 ‘선정성은 생각하지 마’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JMS 총재 정명석의 성범죄 사실을 증언하고 묘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음란한 요구나 성폭행 상황 묘사, 여성 신도들의 나체 사진이나 영상 자료가 사용되며 일종의 포르노그래피적인 전시를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그에 대한 제작진 및 또 다른 시청자들의 반박 역시 제기되었다. 당장 인터넷에 ‘JMS 선정성’이라 검색해보면 해당 작품에 대한 선정성 논란을 다루며 중립적이거나, 제작진을 옹호하거나, 제작진을 비판하는 여러 매체의 여러 입장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넷플릭스가 투자하고 MBC가 제작했다. 넷플릭스 제공

즉 선정성을 비판하는 견해뿐 아니라 선정성 시비가 다큐멘터리의 실천적 효용을 왜곡한다고 보는 견해 모두 결과적으로는 <나는 신이다> JMS 편에 대한 논의의 전선에 선정성을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순간 우리의 뇌가 코끼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는 것처럼.

나는 여기서 레이코프의 제언처럼 코끼리가 아닌 다른 프레임으로 비판적 논의의 전선을 이동시켜볼 필요를 느낀다. 선정성, 좀 더 정확히 말해 성범죄 재현 윤리에 대한 논의가 불필요하거나 양측 중 한쪽의 의견이 훨씬 더 옳기 때문은 아니다. 선정성 논쟁에서 그럼에도 양측 모두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 피해자의 권리와 존엄, 2차 가해에 대한 조심, 재발 방지 필요성에 대해선 공유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의 자원을 다큐멘터리 안과 밖에서 끌어오기 위해 새로운 전선이 필요하다. 만약 이 다큐를 미투 운동 이후의 정치학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JMS 에피소드를 보며 이런 상상을 해봤다. <나는 신이다>는 JMS(1~3화), 오대양(4화), 아가동산(5~6화), 만민중앙교회(7~8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JMS 편 다음 에피소드들로 사이비 교단이 아닌 정치권을 비롯해 미투 운동으로 밝혀진 다른 권력형 성범죄 사례로 채웠다면 어땠을까(물론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역시 성범죄자지만). 상상이지만 어떠한 위화감도 없었을 것이며 정명석의 성범죄 행각은 다른 사이비 교단 지도자들의 엽기적 범죄와의 유사성보다는 권력과 위계에 의한 여타 성범죄와의 유사성 안에서 해석되었을 것 같다. 노골적이고 극단적일 뿐 정명석의 사례는 권력형 성범죄의 전형성을 너무나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신이다>는 정명석의 범죄를 파고들며 수많은 권력형 성범죄의 살아 있는 예시를 제시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미투 운동 이후 훨씬 명료해진 소위 위력에 의한 성범죄의 개념으로 포착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

가령 중국에서 체포된 뒤 정명석이 10년형을 받은 것에 대해 그의 체포를 위해 애썼던 제보자는 20, 30년형이 아닌 10년형이라는 사실에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사실 한국 여성들은 성범죄에 있어 자발과 비자발의 경계를 최대한 남성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사법부의 판결에 오랜 시간 분노해온 경험이 있다. 당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권력형 성범죄로 구속된 2심 판결문에 ‘성인지 감수성’이란 개념이 등장하자, 남초 커뮤니티에서 ‘킹인지 갓수성’이라며 비아냥댄 게 겨우 4년 전 일이다.

다큐는 크게 두 축의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대학생 시절 여자친구가 정명석에게 추행당한 것을 계기로 반JMS 활동가가 된 김도형 단국대 교수의 집요한 추적이다. 또 다른 하나는 다큐에서 수미상관하게 등장해 정명석에게 당한 성범죄 사실을 증언하는 메이플의 자기 고백과 저항이다. 두 주체 모두 정명석의 성범죄에 치를 떨며 분노한다. 다만 김도형 교수가 자신의 여자친구부터 그보다 훨씬 어린 메이플에 이르기까지 여성 피해자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정의로운 남성 보호자의 서사를 구성한다면, 메이플은 자신의 취약함을 공략당하고 어느 정도 세뇌까지 당했지만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깨닫고 싸워 벗어나는 여성 피해자의 자기 극복 서사를 구성한다.

두 서사는 비슷한 도덕적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로 꿰어 구성하기엔 조금 이질적이다. “유해조수 같은” 존재에 분노하는 김도형 교수의 추격전은 위대하지만, 그의 서사엔 위력에 의한 성범죄의 기저를 이루는 젠더 권력의 불평등과 남성 중심적 담론의 보편적 문제가 어쩔 수 없이 결여되어 있다. 그게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메이플의 서사와 김도형의 서사를 매끈하게 연결하는 과정에서 미투 운동과 젠더 정치의 맥락과 개념으로 접근해야 할 많은 요소가 정명석 개인의 악마성과 변태 성욕으로 환원되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넷플릭스 제공

메이플, 그리고 그보다 한 세대를 앞선 피해자들은 입을 모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잘못된 걸 직감하면서도 그걸 부정하기 위해 애쓰고 심지어 때론 정명석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쓴 경험에 대해 고통스럽게 고백한다. 미투 운동 이후의 우리는 이에 대해 ‘가스라이팅’이라는 매우 좋은 개념적 자원을 지니고 있다. 사이비 교단이 벌인 최악의 참사 중 하나인 존슨타운 사건부터 현대 피트니스 산업까지 컬트 문화라는 키워드로 분석한 어맨다 몬텔의 <컬티시: 광신의 언어학>(김다봄·이민경 역)에서는 “직장에서든 교회에서든 언어가 당신 자신의 인식을 의심하게 만든다면, 그건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다. (중략) 분야를 막론하고 가스라이팅은 누군가를 심리적으로 조종해 그가 자신의 현실을 의심하도록 만듦으로써 통제권을 얻고 유지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같은 저자의 전작인 <워드 슬럿>에서 분석한 남성 중심적 언어 수행의 맥락을 덧붙여보자. “가부장제가 시작될 때부터 언어는 남성들이 여성 및 여타 억압받는 젠더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하는 주된 도구였다.” 온갖 음란한 말을 하며 계속 상대에게 동의를 강요하는 정명석의 발화는 단순히 색정광의 구역질 나는 음담패설이 아니라, 일종의 지배 전략이다. 이렇게 자발적 복종을 요구받고 실제로 복종했던 피해자들은 전통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관점에서의 순수한 혹은 진정한 피해자 상과 거리가 멀다. 오직 지난 몇 년간 발전한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만 그들이 겪은 피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신이다>에 대한 아쉬움은 다시 선정성과 재현 윤리의 문제로 돌아온다. 선정성을 비판하는 쪽에선 굳이 자극적인 영상 및 음성 자료 활용 없이 피해 당사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만으로 정명석의 죄는 입증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반대로 선정성은 불가피했다는 쪽에선 이러한 실제 자료를 통해서만 정명석의 잘못이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믿어줄 거라 말한다. 안타깝지만, 이 역시 맞는 말이다. 안타까운 이유는 우리 사회가 미투 운동과 여러 권력형 성범죄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여전히 명백한 시각적 물적 증거를 통해서만 피해자의 서사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우회적 방증이기 때문이다. 위력과 상냥한 강압에 의해 벌어지는 성범죄 다수는 범죄 특성상 물적 증거가 남기 어렵고 많은 경우 피해자 증언의 구체성과 일관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2018년 당당위 시위에서 볼 수 있듯 지난 몇 년간 여성운동에 대한 백래시는 이러한 성범죄 수사의 특수성을 ‘유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공격하는 데 집중됐다.

그렇기에 <나는 신이다> 선정선 논란에 대해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자극적이다 못해 초현실적인 시각 자료의 제시 없이도 피해자들의 증언을 경청하고 신뢰해 힘을 실어줄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고 <나는 신이다> 제작진은 과연 이번 다큐를 통해 미래의 다른 피해자들은 굳이 이런 자료의 제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젠더 담론의 토대를 조성하였는가?

내 생각에 대답은 둘 다 ‘아니오’에 가깝다. <나는 신이다>의 선정적 요소는 재연 파트를 제외하면 앞의 ‘아니오’를 통해 어느 정도 정당화된다. 하지만 그 불가피함을 알리바이 삼는 데 그치며 더는 불가피하지 않을 미래에 대한 전망을 딱히 열어놓지 못한다. 그렇기에 미투의 정치학이라는 논의의 전선을 긋고 다시 독해하고 질문하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다큐 말미 JMS 측은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그들의 말을 신뢰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일이 있었다면 바로 선교회를 탈퇴하고 추후의 조치를 강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통상적인 것이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의 성범죄 피해 사실 고발과 공론화가 있을 때마다 가해 정치인 지지자나 가해 연예인 팬덤에게, 혹은 남초 커뮤니티 회원들에게 천 번 만 번 듣던 논리다. 이 익숙함에서 변화를 위한 논의는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 위근우 칼럼니스트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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