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라더니···‘합리와 과학’ 무시한 탄소중립기본계획

강한들 기자 2023. 3. 2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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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협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이 21일 오전 세종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관련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내겠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21일 발표한 기본계획은 ‘과학적’으로 필요한 온실가스 감축 경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정부가 밝힌 재원 규모도 기존 국제기관 등의 연구에서 추정한 값과 큰 차가 있다.

정부가 내놓은 ‘제1차 기본계획’은 현 정부 임기 내인 2023~2027년에는 약 5000만t, 다음 정부 시기에는 약 1억5000만t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연도별 감축 계획을 골자로 삼고 있다. 2028~2029년 2년에 걸쳐 약 5000만t, 2030년에는 1년 동안 1억t을 줄여야 한다. 3년간 윤석열 정부 임기 전체 감축량의 3배에 달하는 1억5000만t을 줄이도록 계획을 짰다.

현 정부 내 연평균 온실가스 감축률은 2%에 불과하지만 다음 정부 3년 동안의 연평균 감축률은 9.3%에 달한다. 총배출량을 기준으로 기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은 2018년 대비 30.2% 감축이었다. 이번 정부안에는 국외감축, CCUS(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등이 반영되며 감축량이 29.6%로 줄었다.

기본계획의 내용은 지난 20일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제6차 종합보고서에서 향후 10년 이내에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과 동떨어졌다. IPCC 6차 종합보고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탄소배출량을 500Gt(기가톤, 5000억t)으로 묶어야 한다면서 2019년 전체 온실가스 연간 배출량이 590억t이라고 설명한다. 각국이 NDC를 상향하지 않아 배출량이 늘어나면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은 2100년에 2.8도에 달할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IPCC의 (탄소)저배출, 초저배출 시나리오는 이런 점을 반영해 (초기에 감축폭이 더 큰) 아래로 볼록한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그리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가 내놓은 감소 곡선은 (후반부에 감축폭이 큰) 위로 볼록한 모양이다. 기후단체 플랜 1.5의 분석을 보면 이번 기본계획에 따른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2023~2030년)은 2021년 정부가 냈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보다 총 5억1500만t이 더 많다. 5억1500만t은 정부가 예상한 2029년의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 버금가고, 2018년 전환,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 합과 유사한 규모다. 2021년 NDC 상향안은 2018년부터 2030년까지 선형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할 것으로 가정했다.

김상협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 위원회 민간위원장은 21일 브리핑에서 ‘다음 정부로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온실가스 감축이 갑자기 떨어지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을 양해해달라. 결코 다음 정부에 떠넘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나 필요 재원 등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정부는 이번 기본계획에서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비중을 기존 목표보다 3.1%포인트 줄이고, 전환 부문 감축률을 1.5%포인트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얼마나 될지 정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21.6%+α”로만 표기했다. CCUS를 통한 감축량은 2030년 한해에만 총 800만t이 늘어나야 하는 상황인데 관련 비용은 알려주지 않았다. 온실가스 국제감축분은 연도별 목표를 공개하지 못하고 2030년까지 3750만t을 줄이기로 했다. 탄녹위가 “보조적 수단”이라고 강조했지만 이는 산업 부문 감축량보다 큰 수치다. 김상협 탄녹위원장은 브리핑에서 국제감축과 CCUS 모두 불확실한 수단이 아니냐는 질문에 “불확실하다”고 인정했다. 정부는 CCUS와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못했다.

정부가 향후 5년 동안 탄소중립 정책을 위해 쓰겠다고 한 정부 재정은 2023년부터 5년간 총 89조9000억원이다. 2022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개정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세계는 청정에너지로의 전환만을 위해서도 2030년 이전에는 연평균 GDP의 4.5%를, 이후 2050년까지는 2.5%를 써야 한다고 전망했다. 국내 싱크탱크인 사단법인 넥스트, 녹색전환연구소,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가 지난해 함께 냈던 ‘대한민국 K-MAP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도 탄소중립을 위해는 2050년까지 총 약 1300조원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고, 정부 재정과, 민간 투자를 합쳐 연평균 45조원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재원과 감축 수단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나와야 했는데 2021년 계획에서 산업 부문의 비중을 낮춘 것과 전력 부문의 재생에너지 비중을 줄이고, 원전을 늘린 것 이외에 바뀐 것이 없다”며 “지난 2년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 불성실한 계획”이라고 말했다.


☞ 윤석열 정부,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 부담 줄인 ‘탄소중립 기본계획’ 발표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303210920001


☞ 환경단체 “윤석열 정부, 산업계 민원 해결 위해 기후 대응 포기”
     https://www.khan.co.kr/environment/climate/article/202303211600001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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