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의 국민연금 개편 논의 관전법

박중언 입력 2023. 3. 21. 14:40 수정 2023. 3. 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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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언의 노후경제학]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2023년 2월8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여야 간사와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들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연금개혁 초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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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민연금 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 정부에서 한차례 개편 시도가 불발에 그친 탓에 이번에는 꼭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결의도 엿보인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알려진 논의 내용은 이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개편이 필요하다는 총론에는 모두 일치하지만, 각론에서는 견해차가 여전히 크다. 노후 대책의 대들보인 국민연금의 개편 논의가 불붙을 때마다 모든 국민,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은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중견기업 P부장이 막내 격인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는 이 논의의 영향권 밖에 있다. 올해 정년을 맞는 P부장의 연금보험료 납부 의무는 퇴직과 함께 종료된다. 60살까지 보험료를 낸 그는 3년 뒤인 2026년부터 달마다 150만원(현재 가치 기준)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이번 논의로 보험료를 올리는 방안이 확정돼도 당장 적용돼 그의 보험료가 늘어날 가능성은 없다. 또 덜 받는 쪽으로 개편돼도 그가 받을 연금수령액에는 변화가 없다. 개편안에 따른 연금수령액 변화는 이미 낸 부분에 적용되지 않는다. 연금 수령 나이가 2028년까지 65살로 5년마다 1살씩 늘어나는 터여서 그가 연금을 받는 시기가 늦어질 가능성 또한 없다. 1차 베이비붐 세대까지는 지금 벌어지는 연금 개편 논의와 무관한 셈이다.

불안의 온상

국민연금 개편 논의 때마다 ‘연금 고갈’이라는 유령이 고개를 든다. 고령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적립한 연금이 일정 시점에 사라지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연금전문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며, 선진국 모두 이런 과정을 밟고 있다. 독일은 적립한 연금기금이 몇 달 치, 미국은 3년 치, 일본과 스웨덴은 약 5년 치 정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처럼 적립한 기금이 이번 추산(2055년 고갈)을 기준으로 32년 치나 되는 나라가 없다. 우리는 연금기금이 소진된 뒤 부과식으로 넘어가는 준비를 할 기간이 그만큼 오래 남은 것이다. 부과식은 당해 걷은 보험료와 세금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연금 지급에 세금을 투입하는 것 또한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국민연금이 아동, 저소득층 보호 제도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운영하는 대표 사회보장제도이기 때문이다. 유럽에 견줘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한 미국에서도 연금보험료를 사회보장세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렇게 모든 선진국에서 부족한 부분을 세금으로 메우기 때문에 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은 연금에 들어가는 세금의 비중(국내총생산 대비)이 다른 나라보다 낮다.

30년이 넘는 준비 기간이 있고 투입해야 할 세금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데도 불안이 큰 것은 부과식으로 연착륙하는 게 어려울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비롯한다. 연금에 투입되는 세금을 줄이려면 보험료 수입이 늘어야 하고, 보험료율도 지금보다 높아야 한다. 다른 선진국에선 연금개혁으로 정년을 대부분 65살 이상으로 늦추고, 연금 보험료율도 소득의 20%(직장인은 그 절반) 가까이로 올렸다.

한국은 실제 은퇴 나이가 평균 72.3살로 선진국 가운데 1위다. 법정 정년만 60살일 뿐 훨씬 오래 일하는 만큼 나이 들어서도 보험료를 낼 여지가 충분하다. 게다가 대다수 선진국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따른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년이 없는 미국이나 70살까지 계속 고용하는 제도를 도입한 일본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그리 오래지 않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젊은 세대가 원치 않는 분야를 중심으로 고령자들이 맡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보험료율 인상뿐이다. 여기에는 국민 공감대도 높다. 공포를 불러일으켜 젊은 세대에게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불안을 부추길 필요가 없다. 전문가 사이에 이견이 가장 큰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액의 비율)을 얼마로 할지는 사실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국민연금의 부족한 부분을 기초연금 강화로 얼마든지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65살 이상의 70%가 받는 기초연금이 월 40만원으로 오른다. 세금으로 지급하는 기초연금이 꾸준히 오르면 모자라는 국민연금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중견기업에서 30년 이상 일한 P부장이 받을 국민연금(소득대체율 40%)이 150만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기초연금 40만원을 소득대체율로 환산하면 10%가 조금 넘는다. 다시 말해 70%의 중저소득 고령자가 생애평균소득의 10% 이상을 그냥 받는다. 중산층 이상(상위 30%) 고령자는 지금 연금 수준으로도 노후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다. 따라서 소득대체율을 놓고 입씨름하기보다 세금 투입이 당연시되는 기초연금의 액수와 지급대상을 늘리는 것이 노후보장에 훨씬 효과적이다.

세대 불평등?

P부장에겐 국민연금 개편 논의 때마다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를 ‘착취’하는 듯한 주장이 끊임없이 소환되는 것이 몹시 불만스럽다. 그를 비롯한 한국의 부모에게 가장 큰 문제는 자녀에게 너무 많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 노후빈곤의 가장 큰 원인이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자녀의 고교 졸업으로 부모의 양육 의무가 끝난다. 대학 학비도 학자금 대출로 조달한다. 우리나라처럼 부모가 사교육과 대학교육 뒷바라지는 물론 자녀가 결혼해 살 집까지 마련해주느라 끙끙대는 곳이 없다.

1950년대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한국이 경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데는 부모 세대의 저임금 초장시간 노동과 자녀교육을 위한 무한 투자가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돈을 번 부모는 선진국 생활이 자연스러운 자녀를 위해 돈을 쓰거나 물려주려 애쓴다. P부장의 아들이 달마다 2만~3만원짜리 머리 커트를 하는 사이 P부장은 두세 달에 한 번 1만원 수준의 남성커트전문점을 찾는다.

국민연금이라는 공적 영역에서 부모 세대가 낸 돈보다 더 가져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부모 세대가 훨씬 많은 자산을 자녀 세대에 넘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위해 돈을 쓰지도 않는 부모 세대의 빈곤율이 선진국 1위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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