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일본 ‘첨잔 외교’ 지켜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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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술친구가 술잔을 다 비우지 않아도 술을 계속 채워준다.
첫 잔은 한 번에 모두 비우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여러 번 나눠 마신다.
서울에서 도쿄(東京)까지 비행기로 채 2시간이 안 되는 거리지만 이따금 접하는 일본 문화는 생경할 때가 많다.
일본 정부가 술잔에 첨잔하듯 물컵의 물도 조금씩 채워나갈지 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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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술친구가 술잔을 다 비우지 않아도 술을 계속 채워준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첨잔’ 문화다. 술을 권하는 줄 알고 계속 잔을 비우다 보면 자칫 본인의 페이스를 잃고 취하게 된다. 첫 잔은 한 번에 모두 비우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여러 번 나눠 마신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16일 정상회담 후 2차 친교에서도 윤 대통령은 한 번에 맥주잔을 다 비운 반면, 기시다 총리는 몇 모금씩 나눠 마셨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은 이렇듯 다른 나라다. 서울에서 도쿄(東京)까지 비행기로 채 2시간이 안 되는 거리지만 이따금 접하는 일본 문화는 생경할 때가 많다.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 신중을 기하는 ‘네마와시(根回し)’ 문화도 우리와는 다른 풍경이다. 나무를 옮겨심기 전 잔뿌리를 잘라버리는 작업을 뜻하는데, 주로 사전 교섭이나 물밑 작업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결단과 추진력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와는 대비되는 단어다. 기시다 총리는 그런 일본 정계에서도 신중한 성격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윤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을 전후해 예상대로 그 승부사 기질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윤 대통령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제3자 변제 방식, 전격 방일과 한일 협력 강화 방안은 모두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한 여권 정치인은 “충분히 고민해 결정을 내리면 좌고우면하지 않는 윤 대통령다운 방식”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시다 총리는 ‘사과’나 ‘반성’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으로 갈음했다. 공동기자회견장에서 ‘한국의 노력에 비해 일본 측의 호응이 부족하다’는 한국 기자의 지적은 “앞으로 결과를 내고 싶다”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야당은 벌써 ‘굴욕외교’ 비판에 나섰지만, 대통령의 전략 성패를 판단하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네마와시’를 거듭하는 일본 정부가 어떤 결론에 다다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결국 아무런 호응 없이 자국 이익과 정치 논리에만 매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진짜 굴욕 외교가 될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한 대전환이 될지는 적어도 기시다 총리의 답방 때까지 판단 유보의 영역으로 남겨놔야 한다.
일본 내 여론의 움직임은 눈여겨볼 만하다. 아사히(朝日)신문의 하코다 데쓰야(箱田哲也) 논설위원은 18일 칼럼에서 ‘윤석열식 대일 햇볕정책’을 집중 조명했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에 계속 햇볕을 비추고 있는 반면, 기시다 정부는 우파의 비판이 두려워 아베 정부 노선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점을 꼬집었다.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는 윤 대통령 접견 시 손목에 ‘윤석열 시계’를 차고 나왔다. 일본 학계에서도 일본 정부의 호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이런 작은 움직임이 모여 큰 물줄기를 만들어내기까지는 보통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6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해법을 발표하면서 “물컵의 물이 절반 이상 찼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술잔에 첨잔하듯 물컵의 물도 조금씩 채워나갈지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때까지는 한국이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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