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오락가락' 기름값...정부가 걷는 유류세 개편해야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3. 3. 2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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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휘발유 평균 판매가 1천600원 육박. 연합뉴스 제공

휘발유·경유 등 기름값에 대한 고질적인 불신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국제 원유값이 오르내리기만 하면 어김없이 정유사의 부당한 폭리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도 그런 현실을 지적한 것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아무도 외면할 수 없는 기름값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자칫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원가 공개와 횡재세와 같은 국민 기만적인 정책에 영혼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니다. 국가 기간산업의 보호·육성을 책임지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것이 탈원전에 섣부르게 앞장서서 국가의 에너지 정책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실수를 만회하는 길이기도 하다.

● 기름값은 국제석유제품시장 가격

기름값에 대한 오해는 대부분 국제 원유시장에서의 두바이유 가격과 국내 주유소의 기름값 사이의 묘한 관계에서 시작된다. 

기름값이 국제시장에서 두바이유의 가격과 연동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기름값이 언제나 두바이유의 가격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전국의 소 시장에서 결정되는 소 값이 떨어져도 정육점에서는 여전히 쇠고기를 비싸게 파는 경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코로나19와 같은 돌발적인 상황으로 국제 경기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싱가포르 국제석유제품시장에서의 기름값은 곤두박질치게 된다. 산유국이 원유 생산량을 줄여서 국제 원유 가격이 치솟더라도 그런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멀쩡한 정유사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다. 수익은커녕 적지 않은 적자를 감수하게 된다.

실제로 작년 3분기까지 기록적인 수익을 챙기던 국내 정유사들이 4분기에 상당한 적자를 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언론의 불합리한 보도 관행을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 ‘두바이유의 가격은 떨어졌는데 기름값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는 혼란스러운 보도는 더 이상 납득하기 어렵다.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기름값은 두바이유의 가격이 아니라 싱가포르 국제석유제품시장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밝혀줘야 한다. 언론이 두바이유의 가격이 아니라 싱가포르 국제석유제품시장의 동향을 더 자세하게 알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원유 가격 인하가 국내 기름값에 반영되기까지의 ‘시차’에 대한 주장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물론 정유사가 중동에서 구입한 원유를 우리나라까지 운반하는 데는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원유를 정제해서 휘발유·경유와 같은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되는 두바이유의 가격은 지금 당장 중동에서 유조선에 싣고 있는 원유의 가격이 아니다.

정유사에 도착한 원유가 곧바로 휘발유·경유 생산에 투입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정유사는 석유사업법에 따라 상당한 양의 원유와 석유제품을 비축해야 하는 의무도 수행해야 한다.  결국 언론에 소개되는 ‘시차’는 사실 원유 가격이 석유제품시장에 반영되기까지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정부‧언론‧시민단체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오피넷(http://www.opinet.co.kr)에 소개되는 싱가포르 가격이 기름값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철저하게 감시하는 것이다.

싱가포르 국제석유제품시장의 가격이 떨어지면 정유사는 기름값을 내릴 수밖에 없다. 정유사가 중동의 산유국에 실제로 지급한 원유 가격은 아무 의미가 없다. 국내 기름값을 계속 비싸게 유지하면 외국의 휘발유·경유가 밀려 들어와서 시장을 잠식하게 된다. (실제로 기름값을 국제 원유 가격에 연동시켰을 때는 외국의 휘발유·경유를 수입해서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얌체 석유사업자가 활개를 쳤다.)

원유 가격과 기름값 보도에 사용하는 단위도 통일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언론에서는 원유에는 ‘배럴’(bbl)의 단위를 쓰고, 휘발유·경유에는 ‘리터’(liter)를 사용한다.  영국의 야드·파운드법에서 사용하는 부피의 단위인 배럴은 158.9리터에 해당한다. 그래서 배럴당 82달러인 두바이유의 가격은 리터당 670원(환율 1300원)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편하게 가격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서울의 한 주유소 유가정보. 연합뉴스 제공

● 휘발유와 경유의 결합원가

정유사의 공장도 가격을 지역·주유소별로 공개하면 주유소의 기름값이 떨어진다는 산업부의 해묵은 주장은 정치인·관료들이 고집하는 국민 기만적 억지다. 사실 공장도 가격의 공개가 소비자가 원하는 기름값 인하로 이어진다는 확실한 근거도 없다.

오히려 정유사의 공장도 가격 공개가 기름값의 상향 동조화를 불러와서 기름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한국경제연구원의 결론이다. 정유사의 석유제품 수출 가격 협상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2009년에 부결시켰던 원가 공개 방침을 원안 그대로 다시 규제개혁위원회에 상정한 것도 합리적인 행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난 10여 년 동안 상황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특히 휘발유·경유의 공장도 가격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영업비밀이라는 정유사의 입장은 절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동네 구멍가게에도 원가 공개를 강요하지 않는다. 더욱이 석유사업법 제38조에 따라 반드시 지켜줘야 하는 정유사의 영업비밀을 공개하라는 산업부의 요구는 불법‧탈법적인 것이다. 

휘발유·경유의 원가 공개가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다. 회계사 출신임을 앞세워 기름값의 원가 구조를 밝혀내겠다던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것도 그런 상식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휘발유‧경유와 같은 석유제품은 대표적인 ‘결합상품’이다. 한 공장에서 같은 원료를 이용하는 동일한 공정으로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를 결합상품이라고 한다. 함께 생산되는 제품의 원가들이 서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제품별 원가 계산은 불가능해진다. 부품의 가격을 더해서 원가를 추정할 수 있는 자동차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특성이다.

소를 도축해서 생산하는 갈비와 등심도 대표적인 결합상품이다. 갈비와 등심을 팔아서 소 값을 회수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갈비를 공짜로 주고, 등심을 비싸게 팔아도 되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사실 ‘결합원가’는 모든 관리회계 입문서에 반드시 소개되는 원가 산정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정유사가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을 아무렇게나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격이 수요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격이 높을수록 수요는 줄어든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래서 휘발유 가격을 너무 높게 책정하면 수요가 줄어든다. 자칫하면 재고가 쌓이게 되고, 정유사는 적지 않은 재고 관리 비용을 떠안게 된다. 결국 휘발유와 경유의 상대적인 가격은 시장의 수요와 정유사의 생산 특성에 따라 전략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사실 정유사가 부당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산업부의 주장도 억지다. 오피넷에 공개된 3월 9일의 휘발유 공장도 가격은 생수보다 싼 리터당 815원이다. 배럴당 82달러(리터당 670원)의 원유 가격을 뺀 나머지인 리터당 145원이 모두 정유사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원유를 대형 유조선으로 운반해서, 정제하고, 첨가제를 넣는 비용도 정유사가 부담한다. 그래서 휘발유는 싱가포르 국제석유시장에 내다 팔더라도 리터당 790원을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주유소까지의 배달비도 정유사가 떠안는다. 

4월 중 유류세 인하 연장안 발표. 연합뉴스 제공

● 유류세를 개편해야

정작 휘발유로 엄청난 수익을 챙기는 것은 정유사가 아니다. 리터당 697원의 '유류세'를 챙기는 정부의 몫이 훨씬 더 크다. 실제로 정부가 거둬가는 유류세가 매년 30조원이 넘는다. 정유사가 적자를 기록해도 정부가 차지하는 유류세는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운송·정제비를 부담해야 하는 정유사와 달리 정부는 유류세 징수에 들여야 하는 비용도 없다. 결국 소비자의 입장에서 휘발유가 비싼 것은 정유사의 폭리가 아니라 정부의 유류세 때문이다.

유류세 조정 때마다 불거지는 논란도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정부가 휘발유의 출고 시점에 정유사로부터 유류세를 징수하는 것이 문제다. 주유소의 저장탱크에 들어있는 휘발유는 이미 유류세를 납부한 물량이라는 뜻이다. 산업부가 그런 사실을 정확하게 밝혀서 소비자의 오해를 풀어주지 않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비겁한 행정이다.

정부가 유류세를 징수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현재 정유사의 출고 시점에 부과하는 유류세를 주유소에서 소비자에게 기름을 판매하는 시점에 부과하면 된다. 그러면 정부가 탄력세 제도를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미 주유소는 소비자로부터 국세청을 대신해서 부가가치세를 수납해주고 있다. 이제는 유류세의 세액도 소비자에게 분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정유사·주유소의 뒤에 은밀하게 숨어서 기름값을 ‘묘하게’ 만들고 있는 산업부·기재부·국세청의 비겁하고 옹졸한 행정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도 정상화·합리화시켜야 한다. 싱가포르 국제석유시장에서 휘발유보다 배럴당 9달러(리터당 73원)나 더 비싼 경유를 거꾸로 휘발유보다 리터당 42원이나 싸게 만든 것은 명백한 시장 왜곡이다. 환경과 기후를 위해서 소비를 줄여야 하는 경유를 불합리한 유류세 때문에 더 싸게 공급하고 있는 현실은 명백한 자가당착이다.

기름값을 묘하게 만들어서 정유사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낡은 행정은 획기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물론 정유사도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국가기간산업으로서의 지위를 되찾아야 한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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