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20년' 트라우마 시달리는 청년들…"유년기 빼앗겼다"

김성진 2023. 3. 2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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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친지 잃은 상처 있어…일상 되찾는 가운데 전쟁 상흔과 희망 혼재
지난달 말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골목을 걷는 여성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전쟁은 우리의 유년 시절을 빼앗아 갔다."

이라크전 당시 미군 차량 행렬의 교전 중 어머니가 다친 누르 나비흐(26·여)는 이같이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이후 차량폭탄 폭발로 또 중상을 입었다.

그는 "아직도 내 안에는 공포가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전쟁 발발 후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라크 젊은 세대가 전쟁의 상흔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26세 이하는 약 2천300만명으로 인구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들에게 트라우마는 일상이며, 대부분 가정에는 친지를 잃은 아픔이 있다.

지난달 24일 바그다드에서 핸드폰을 들고 걷는 이라크 남성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라크전은 2003년 시작해 종파 분쟁으로 번지며 6년을 끌었다.

이제 수도 바그다드의 많은 젊은 층은 삶의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 한다. 도시도 전쟁에서 어느 정도 복구돼 부유한 젊은 친구들은 커피숍과 쇼핑몰, 라이브 콘서트에 간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전쟁 중에 죽은 친척, 헤어진 가족이나 이라크의 미래에 관해 맴도는 의심으로 향하곤 한다.

전쟁으로 몸은 다치지 않고 살아남더라도 상처는 남는다. 헬리콥터 날개가 윙윙거리는 소리, 번쩍이는 신호탄 섬광, 폭탄이 터진 후 타는 냄새, 두려움, 상실의 고통 등 이 모든 것은 전투가 멈춘 후에도 오랫동안 머문다.

NYT는 최근 바그다드의 젊은 이라크인들과 그들의 삶, 미국의 침공, 나라의 상태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며 이같이 전했다.

이 젊은이들은 전쟁의 상처와 삶의 희망에 대해 말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랜드마크인 이슬람사원 돔(위)과 미군에 끌어내려지는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 동상 합성사진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모하메드(25)는 미국의 침공 당시 다섯살이었다. 모든 폭발에 소스라치게 놀라던 그는 미군 차량이 도로변 매설 폭탄에 부딪혀 폭발했을 때 몸을 뒤흔든 진동을 기억한다.

이후 쏟아지는 총알 속에 그는 "너무 무서워 길에 얼굴을 파묻고 누워있었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되길 꿈꿨던 그는 2019년 민생고와 정부의 부패에 항의한 젊은 층의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을 때 최루탄이 눈앞에서 폭발하면서 시력을 잃었다. 그의 소원은 자신의 실명후 태어난 한 살배기 아들 아담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이다.

파디(26)와 여동생 파디아(24)는 전쟁의 폭음 속에서도 바그다드 음악발레학교에 다녔다. 무슬림이 대부분인 이라크에서 드물게 기독교 신자인 이들은 다른 기독교인들이 이라크를 떠났을 때도 음악학교에서 위안을 찾았다.

현재 이라크 국립오케스트라 플루트 연주자이자 이라크중앙은행 컴퓨터 감사 기술자인 파디는 "연주를 할 때 (몰입해) 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잊는다"고 말했다.

전자결제회사 마케팅 담당이자 역시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파디아는 12살 당시 차량 폭탄이 학교 옆 시법원에서 터졌을 때 파편에 다친 교장선생님의 다리에 붕대를 감아주고 1학년 아이들을 대피시킨 경험이 있다.

지난 2003년 이라크전 당시 영국 병사에게 몸수색을 당하는 이라크인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 '라라랜드'의 주제가를 좋아하는 그는 오빠와 달리 이라크의 미래를 낙관한다. 그는 "난 이곳에 애착이 있다. 여기에 있으면 편안하다"고 말했다.

약사 부부인 달리아(24)와 후세인(26)은 모두 어렸을 적 스쿨버스 기사가 종파 갈등 와중에 숨진 기억이 있다.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 출신인 이들은 종파 차이에도 결혼했다. 결혼 전날 약국에서 야근하던 후세인은 강도에게 흉기와 총으로 습격당한 적이 있다. 이들은 폭력이 일상이 된 바그다드에서 건강과 안전을 바란다.

술레이만(22)은 3살 때 미군 작전 중 집안에 날아든 유탄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후 척추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을 때 인근 유엔 본부를 겨냥한 폭탄에 병원 건물이 심하게 파손돼 잔해더미에 묻히기도 했다.

수개월 후 아버지가 그를 미군 기지 정문에 데려가 치료를 요청했을 때 미군은 미국에서 치료받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휠체어를 탄 술레이만은 장애인 양궁을 하면서 어렵게 자신을 추스르고 있다.

함자(24)의 아버지는 이라크전 당시 대령으로, 반군에 가담한 동료에게서 '반역자'라는 말까지 들으면서 별을 달았지만, 2014년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와 전투에서 숨졌다.

군사학교 수석 졸업에 이라크전 이후 최연소 소위로 임관한 그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장군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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