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전설의 드라마 '모래시계'와 설정 같은데 정서 다른 까닭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3. 2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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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사막 속 장동윤, ‘오아시스’ 찾아낼까
가진 것 없는 장동윤에게서 현 시대의 청춘이 겹쳐 보이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요것이 다 아버지 때문이잖아요. 공부하지 말라 해서 공부도 접었고, 감방 가라 해서 감방도 갔고 그라고 나니까 할 수 있는 짓거리가 깡패 짓밖에 없는데... 나는 분명히 아버지 아들 아닐 겁니다." KBS 월화드라마 <오아시스>에서 이두학(장동윤)은 왜 깡패 짓을 하냐는 아버지의 질책에 그렇게 토로한다.

두학의 말 그대로다. 최철웅(추영우)의 할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어 그 집의 머슴을 자처했던 아버지 때문에 두학은 모든 걸 포기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철웅보다 공부를 더 잘 했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농고로 전학을 가야했고, 급기야 철웅이 저지른 살인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방에 가야 했다. 사랑하는 정신(설인아)에게도 다가가지 못하고 그 주변만 뱅뱅 돌면 살아야했다. 그만 놓아달라는 정신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학과 철웅의 이야기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래서 시대극이 가진 특징들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를 테면 <모래시계>의 태수(최민수)와 우석(박상원) 그리고 혜린(고현정)의 관계와 직업(?) 설정이 유사하다. 혜린은 훗날 카지노 사업에 뛰는 인물이고 정신은 영화계에 야망을 품고 있는 인물이지만 둘 다 만만찮은 여걸이고, 태수가 정치깡패이고 우석이 검사인 것도 두학과 철웅의 직업 그대로다.

이건 80년대의 시대상을 그릴 수밖에 없는 시대극으로서 당대의 사회상이 반영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가진 것 없는 흙수저들은 결국 주먹 하나로 버텨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 주먹이 권력과 손잡아 정치깡패 역할을 했던 게 그 시대의 그늘이었기 때문이다. 또 검사라는 직업이 비슷하게 등장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당대의 중요한 또 하나의 권력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니 말이다.

하지만 <오아시스>에는 <모래시계>와는 다른 현 시대의 정서와 연결되어 있는 지점이 있다. 그건 두학의 대사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바로 '수저 계급'이다. 이중호(김명수)라는 두학의 아버지가 왜 그토록 머슴을 자처하는 인물로 그려졌을까 싶지만, 이런 인물만큼 수저 계급이 과거나 지금이나 형태만 바꿔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가 있을까. 직업이라는 틀을 쓰고 있지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만들어진 주종 관계는 지금도 현실이 아니던가. 흙이냐 금이냐에 따라 그 수저가 대물림되는 것도 여전하고.

그래서 이러한 수저를 더 이상 노력에 의해 바꿀 수 없게 된 현재 속에서 80년대로 시간을 되돌린 <오아시스>는 묘한 판타지를 자극한다. 그것은 현 시대에 할 수 없지만, 당대에는 가능했던 노력에 의해 바꿀 수 있는 미래라는 판타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상처 뿐인 성공이 될 수도 있지만, 두학처럼 가지고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인물이 맨주먹으로 버텨내며, 영화계에 야망을 품은 정신을 남모르게 돕고 철웅도 검사의 길을 걷게 만들며, 공장에서 일하며 노동운동에 발을 들인 여동생까지 챙기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드라마틱한 판타지로 다가온다.

시대극의 묘미는 결국 현재의 결핍을 채워주는 무언가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두학과 철웅으로 대비되는 흙수저와 금수저의 다른 태생 속에서 두 사람의 성장과정을 보는 건 흥미로워진다. 결국 흙수저인 두학이 이 사막 같은 시대를 돌파해 오아시스를 찾거나 스스로가 오아시스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밝혀진 출생의 비밀처럼 두학과 철웅이 친형제였다는 사실은 이러한 수저 계급을 묘하게 비틀어 놓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수저 계급이 우리네 현실이 되어버렸지만, 똑같은 사람에게 덧씌워진 수저라는 것이 그저 허울에 불과하다는 걸 이 출생의 비밀이 에둘러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두학이라는 인물에 현 시대의 청춘을 겹쳐보면 거기 담겨진 판타지와 유쾌하게 꼬집어놓은 시대의 비의가 느껴진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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