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중혼’이라…한국 온 엄마와 함께 살 수 없는 ‘코피노’[플랫]

플랫팀 기자 2023. 3. 21. 11: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 법원 판결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른바 ‘코피노(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필리핀 국적 어머니들과 함께 한국에서 살고자 입국했지만 법무부가 이 어머니들에게 자녀양육(F-6-2) 비자를 내주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외국인이며 친부가 한국 여성과 결혼한 ‘중혼’ 상태이기 때문에 자녀양육 비자를 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코피노들은 주민등록도, 의료보험 가입도 못하고 있다. 이민·이주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법무부의 기조와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잊혀진 코피노들] 가난과 외로움만 남기고 떠난 ‘나쁜 아빠’…그는 ‘한국인’입니다

코피노 어머니인 아델 안젤라(왼쪽부터)와 그의 딸 김미안나아델양, 안데민핵키로고줌군과 그의 어머니 고줌 단디아 레인이 지난 6일 충북 청주의 필라델피아교회에서 자신들에게 지원해준 한국 시민들에게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들고 있다. 정진남 드림컴트루 대표 제공
연락두절하고 떠난 한국 아버지···“자폐 아동 키우기 위해 한국행”
코피노 어머니인 고줌 단디아 레인과 안모씨가 2012년 필리핀 산페르난도에 있는 단디아 부모님의 자택에서 안데민핵키로고줌군의 탄생을 축하하는 잔치에 참석하고 있다. 단디아 제공

필리핀 여성 고줌 단디아 레인(35)은 2011년 3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친구 소개로 한국 남성인 안모씨(49)를 만났다. 이들은 호감을 느껴 연인이 됐다. 안씨와 단디아는 필리핀 산페르난도에 있는 단디아의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았다. 단디아는 안씨의 아이를 임신했다. 안씨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미 아이를 가진 뒤였다. 단디아는 안씨와 함께 시청에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성당에서 영아세례도 받았다. 모든 것을 함께 해줄 것만 같던 안씨는 어느날 “한국에 다녀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안데민핵키로고줌군(11)은 중증 자폐를 가졌다. 자폐 아동을 엄마 혼자 키우는 건 어느 나라에서든 힘든 일이다. 안씨는 연락은커녕 양육비도 한번밖에 주지 않았다. 필리핀에선 정부에서 특수 교육이나 치료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 안군은 한국 법원에서 인지 판결을 받아 지난해 6월 한국 국적을 얻었다. 친부를 따라 ‘안씨’ 성을 갖게 됐다. “아들이 언제 돌발 행동을 할지 몰라 항상 지켜봐야 해요. 아이가 한국인이니 한국에서 교육과 치료를 받게 하고 싶어요.” 단디아가 한국행을 결정한 이유다.

코피노 어머니인 아델 안젤라가 김모씨와 2013년 필리핀 마닐라 등지에서 데이트를 하며 찍은 사진 등을 모아 놓았다. 안젤라 제공

필리핀 여성 아델 안젤라(34)도 비슷한 처지다. 그는 2013년 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국 남성들이 연 파티에 초대돼 한국 남성인 김모씨(37)를 만났다. 이들도 연인 사이가 돼 매일같이 데이트를 했다. 김씨는 안젤라를 만난 지 두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다. 안젤라가 임신 사실을 알리자 연락을 바로 끊어버렸다. 김씨는 이후 한국에서 한국 여성과 결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의 딸 김미안나아델양(10)도 한국 법원의 인지 판결로 지난해 7월 ‘김씨’ 성을 물려받았다. 안젤라도 딸이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그는 15일 “친부가 원치 않았어도 내 딸은 한국인”이라며 “최대한 빨리 딸이 한국 교육을 받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길 원한다”고 했다.

아버지가 이미 결혼해서, 혼외자라서···‘자녀양육’ 비자 안 된다는 법무부

단디아와 안젤라 가족의 한국 입국은 순탄치 않았다. 주필리핀한국대사관은 단디아와 안젤라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초청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충북 청주의 필라델피아 교회 류인선 목사가 이들을 돕겠다며 초청장을 써줬다. 이들은 지난 1월 가까스로 입국했다.

비자 발급도 난관에 부딪힌 상태다. 단디아와 안젤라는 입국하자마자 법무부 청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자녀양육(F-6-2) 비자를 신청했다. 자녀양육 비자를 받으면 한국에서 취업할 수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날까지 2개월째 비자를 내주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경향신문에 “자녀양육(F-6-2) 비자는 우리 국민과 혼인관계(사실혼 포함)에서 출생한 미성년 자녀를 국내에서 양육하는 부모에게 부여된다”며 “중혼관계에서 출생한 자녀(혼외자)를 국내에서 양육하려는 외국인의 경우 혼인관계를 전제한 결혼이민(F-6) 자격 부여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친부인 김씨와 안씨가 한국 여성과 결혼한 상태여서 단디아와 안젤라에게 자녀양육 비자를 발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대한민국 국적 혼외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외국인에게 방문동거(F-1) 체류자격 외 다른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사회적 협의 및 공감대 형성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당초 주필리핀한국대사관은 단디아와 안젤라 측에 자녀양육(F-6-2)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고 안내했지만 이제 와서는 “원칙적 답변을 한 것뿐”이라며 말을 바꾸었다.

단디아와 안젤라는 방문동거(F-1) 비자로는 한국에서 아이들과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경제 활동이 불가능해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가 없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코피노 어머니인 아그네스 산타리시스(47) 사례가 이들의 어두운 미래가 될지 모른다. 산타리시스는 지난해 3월 법무부로부터 경제 활동이 불가한 방문동거(F-1) 비자를 받았다. 그는 한국에서 한국 국적을 얻은 전저스틴원군(9)을 키우고 있지만 비자 탓에 정식으로 일하지 못하고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머니 비자 발급 지연에···아이들 아파도 병원 못 갔다

단디아와 안젤라 가족은 현재 충북 청주의 필라델피아 교회 유아방과 인근 주택에서 산다. 비자 문제로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이라 교회와 시민단체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상에서 시민들로부터 아이들 물품도 지원받았다.

비자 발급이 지연되는 탓에 단디아와 안젤라는 아직 외국인등록증도 받지 못했다. 안군과 김양은 어머니의 외국인등록증이 없어 주민등록, 의료보험 가입 등 기본적인 행정 절차도 밟지 못했다. 얼마 전 안군의 온몸에 발진이 생겼지만 병원비가 걱정돼 병원에 가지 못했다.

코피노 어머니인 고줌 단디아 레인과 안데민핵키로고줌군은 현재 충북 청주의 필라델피아교회 유아실에서 거주하고 있다. 단디아가 지난 1월 18일 류인선 목사님으로부터 성경 공부를 하고 있다. 정진남 드림컴트루 대표 제공

안젤라는 “중혼을 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친부인 김씨인데 왜 나와 내 딸이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김씨의 자녀들은 어떤 불이익을 받나”라고 했다. 단디아는 “나는 당시 안씨가 유부남인 걸 알지도 못했다. 이 때문에 경제 활동이 불가능한 비자가 나온다면, 나는 한국에서 돈도 없이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 목사님께 몇달째 신세를 지고 있어 죄송한 심정”이라고 했다.

코피노 지원단체 드림컴트루의 정진남 대표는 말했다. “한국 정부가 코피노 어머니들에게 자녀양육 비자를 주지 않으려는 건 이들을 대한민국 국민인 아이들의 보호자로 보기보다 일반 외국인으로만 보는 거예요. 아이들의 유일한 보호자인 어머니들에게도 대한민국 국민에 준하는 대우가 필요합니다.”

이주민 사건을 맡아온 이일 변호사는 “법무부는 한국 국적을 가진 코피노의 어머니들이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한국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고 있다. 인구 소멸과 인력난이 우려돼 이민 정책을 강화하겠다면, 이들을 환영해도 모자랄 판이다. 이민 정책이 이민을 환영하고 이주민을 포용하는 정책이어야 하는데, 수십년째 이주민을 관리·통제하고 고급 인력만 받아들이겠다는 수준에만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방문동거(F-1) 체류자격 소지자는 원칙적으로 취업활동을 할 수 없지만, 외국인 생계유지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예외적으로 심사를 거쳐 체류자격외 활동 허가를 받으면 취업활동이 가능하다”며 “방문동거(F-1) 체류자격 소지자는 국내 입국한 날로부터 6개월이 경과하면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당연가입된다”고 했다.

▼ 이보라 기자 purple@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