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바로보기]김호연재 조선을 넘다

김철홍 문화유산국민신탁 소대헌·호연재 고택 관장 2023. 3. 2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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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문화유산국민신탁 소대헌·호연재 고택 관장

매년 4월 중순이면 소대헌·호연재 고택 내부에는 수령 300년이 넘었다고 전해오는 흐드러진 핑크빛 영산홍이, 고택 담벼락 밑으로는 아주 붉게 물들은 영산홍이 만개하여 보는 이들의 마음을 흔들고 설레게 하여 이른 시각부터 사진작가는 물론 상춘객들로 붐비곤 한다.

예전 우리 조상들이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로 삼았다는 춘분을 갓 지난 요즘 고택 주변에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 봄을 알리는 전령사로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옛 성현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사군자 중 하나인 매화가 활짝 피어 그윽한 봄 향기와 더불어 온통 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필자는 오늘도 남자들의 공간이었던 두 사랑채 소대헌·오숙재를 지나 여인들의 공간인 안채로 들어가기 위해 중문으로 들어가 본다. 여기서 절묘함과 특별함 그리고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안채 벽을 만나게 되는데, 벽이 내외담과 내외벽의 기능이 있어 여인들의 사생활을 보호하도록 했다. 이 곳이 바로 김호연재가 살림을 하면서 244수의 한시를 탄생시킨 호연재 고택이다.

김호연재는 안동김씨로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우의정 김상용의 고손녀이고, 고성군수를 지낸 아버지 김성달과 어머니 이옥재의 5남4녀중 여덟째로 충남 홍성군 갈산면 오두리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바둑을 같이 두고 술을 대작할 정도로 금슬이 좋았고 일상생활에서 부부간의 사랑과 삶의 모습을 담은 남편 김성달의 시에 부인 이옥재가 화답하는 형식으로 만든 주옥같은 71수의 부부시집 '안동세고'을 냈는데, 가부장제도 속의 조선시대 여성이 대등한 부부생활과 오두리의 아름다운 어촌 풍경과 함께 화목한 가정의 일상생활이 그 시집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한다

호연재는 남녀 차별없이 평등하게 교육 받았으며, 부모의 문학적 기질을 이어받아 아버지의 무릎에서 시문을 일으켰고 유교경전과 역사에 능통하고 한시도 곧잘 지었다고 한다.

열아홉 나이에는 같은 학맥, 학파, 당맥 가문간의 결합이라 볼 수 있는 동춘당 송준길의 증손자로 한 살 적은 열여덟의 소대헌 송요화와 당시 혼인 풍습대로 신랑인 소대헌이 신부 호연재의 오두리 집으로 가서 혼례를 치렀고 법천(지금의 대덕구 계족산 아래)에 신혼집을 꾸렸다. 남편은 결혼 후에도 어머니를 모시며, 형 송요경이 근무하는 곳을 따라다니면서 과거시험에 전념하는 사이 그녀는 홀로 서른이 넘는 노비들을 거느리며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기에 그 고독과 절박함은 물론 가뭄이 들면 곡식이 떨어져 식량걱정으로 친척인 삼산(보은)군수에게 쌀을 꿔야하는 형편이었다.

그녀는 당시 여성에게는 순종의 미덕이 강요되고 유교사상과 남녀유별을 강조한 사회적 분위기 즉 주자학의 논리로 사회가 재편되면서 여성 억압을 우주적 진리처럼 여기던 시대에 저속하고 비열한 남성 중심가치관을 선명한 논리로 반박하며 여성들의 한숨을 통쾌하게 대변한 지식인이었으며, 행실도 매우 삼가서 여성의 도리를 잘 닦았고 시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오래 섬기지 못한 것을 원통하게 여긴 나머지 시숙부를 최후까지 정성을 다해 모시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의 244수의 한시 중 "꿈에 집으로 돌아가다"의 싯귀 "규방 여인의 몸이 된 것/ 한스럽다/ 아 할 수 있는 말/ 그 무엇이랴/ 뜻이 있어도 말할 수 없고/ 글이 있었도 감히 할 수 없네/ 소리 삼키며 통곡하니/ 눈물이 옷을 적시네"를 보더라도 "웅대한 포부를 가졌던 시대를 앞서간 여성 선비이자 탁월한 '젠더 감수성'의 호연재"라고 평가한 역사학자 컬럼에서 본 글이 요즘 사회적 이슈로 확대되고 있는 '젠더 갈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또한 40여년 살아가면서 맹자의 호연지기를 꿈꾸고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고 시대를 초월한 역사 속 시인으로만 알았던 호연재가 자신의 삶을 절제하면서 풀어낸 시와 재조명된 인간적 스토리에 빠져들었고 그러한 삶은 300여 년의 시차는 있지만 그녀의 시를 만나면 성리학과 유교, 남성과 여성, 조선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다.

시대를 앞서간 호연재는 조선 후기 여류문학을 대표하는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의 뒤를 이어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여류문학사의 공백을 메꾸어 줄만한 조선의 대표적인 여류시인으로 알려지고 있고 그녀의 시를 음악 정가(正歌)로 만나보고 정한(情恨)과 고뇌(苦惱)를 아름다운 춤사위로 표현함은 물론 문화콘텐츠 활성화를 위한 전문가 포럼 등 그녀의 시 세계와 선비적 삶을 재조명하는 등 그녀를 기리기 위한 많은 노력과 활동이 이루어 지고 있으나 한시적이고 주로 대전 충청권 지역에 한정되는 것 같아 현용 은행권 오만원권에 신사임당, 오천원권에 율곡 이이 모자가 지폐 인물(모델)이 되고 예전 학창 시절 강릉 오죽헌이 수학여행의 필수코스이기도 했던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가끔 안채 마루에 앉아 김호연재의 244수의 한시가 보관되었던 누다락 눈꼽재기창을 바라보노라면, 깊은 고뇌로 조선이란 사회에서 여성과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삶을 꼿꼿하게 살아낸 그녀의 숨결을 느끼고 그녀의 시를 듣고 싶어지곤 한다. 오늘따라 문득 몇 해 전 모 방송 창사특집으로 초등국어, 중고등 미술 교과서에 등재되고 국가표준영정 제작에 독보적인 윤여환 화백이 출연한 '3백년 전 김호연재의 생애를 돌아보고 초상화 제작과정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호연재 환생의 이야기'가 생각이 나면서 안채 마루의 그녀가 필자를 바라보는 듯하다.

소대헌·호연재 고택은 김호연재의 삶이 깃들고 시가 태어난 곳이다. 보전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는 활동과 관리를 진행하는 문화유산국민신탁과 대전 시민이 함께 가꾸어 나가고 있다. 2023년 문화재청 고택 종갓집 활용사업에 선정되어 지역 주민들의 전통 문화유산 기회 향유와 자발적인 문화유산 보전 인식 제고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 될 예정이다.

소대헌 호연재 고택의 풍경을 감상하며 진행되는 인문학 강연, 고택 마루에 앉아 전통 다도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 호연재의 시를 캘리그라피로 필사하는 체험 그리고 고향임 명창께 판소리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 등 호연재의 문학관을 들여다보고 도심에서 즐길 수 있는 전통 문화와 공연을 재조명하며 김호연재의 호기로움이 조선을 넘어 현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소대헌·호연재 고택이 우리의 문화와 삶을 인도하는 공간으로 다시 깨어나고 고택의 흐드러진 영산홍처럼, 김호연재의 풍만한 인문학 유산이 우리의 삶을 충만한 감동으로 채울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하고 또 고대해 본다.

김철홍 문화유산국민신탁 소대헌·호연재 고택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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