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연속 1순위 슈터지명, 진짜 최대어는 숨어있었다
직전해 방성윤에 이어 2006년 드래프트에서도 연세대 출신 슈터 전정규(39‧187cm)가 전체 1순위의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전자랜드는 함박 웃음을 짓지는 못했다. 1순위 지명권을 가져오게된 것은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었지만 선수층의 질이나 양적인 면에서 당시 드래프트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않았던 이유가 크다.
당장 직전 2번의 드래프트와 비교해봐도 방성윤같은 검증된 특급 스타는 그렇다치더라도 확실한 가드자원(양동근, 이정석), 모험을 해볼만한 해외파(김효범, 한상웅) 등 어느 쪽으로든 확실한 임팩트가 부족했다. 그런가운데 동년배 최고의 슈터로 불리던 전정규, 대학 최고의 센터 주태수, 고등학교 시절 천재 가드로 불리던 김학섭 등이 1순위 후보로 물망에 올랐는데 전자랜드는 대학 무대에서 꾸준하게 활약한 전정규에게 최종적으로 픽을 행사했다.
원년부터 확실한 1번에 목이 마른 팀인지라 김학섭 지명도 예상해 볼 수 있었으나 몸상태에 대한 의문이 따라붙었고 주태수같은 경우 동년배 중에서는 최고 빅맨이지만 김주성, 이규섭 등처럼 주전급으로 활약할 재능까지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어찌보면 가장 무난한 선택을 했다.
그만큼 2006년 드래프트는 확실한 최대어급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들 고만고만하게 잘했던지라 순위가 크게 의미가 없었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경향은 이후의 지명 상황을 봐도 뚜렷하게 확인됐다. 드래프트전 1순위 후보군이었던 전정규, 김학섭, 주태수는 이른바 '무늬만 빅3'였다. 이를 입증하듯 SK는 노경석(39‧188cm)을 2순위로 깜짝 지명했고 LG 또한 단신가드 이현민(39‧172.8cm)을 3순위로 선택한다.
김학섭(40‧182cm)은 4번째까지 밀린 끝에 모비스의 지명을 받을 수 있었다. 양동근이라는 확실한 1번이 있던만큼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김학섭을 백업가드로 활용할 의도였던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한양대 출신인만큼 선배 양동근의 의견이 지명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빅맨 최대어 주태수(40‧202cm)는 5순위에서 오리온의 지명을 받는다.
5순위 이후 지명자 중에서도 쏠쏠한 활약을 펼친 선수가 다수 나왔다. 6순위 이원수(이시준‧39‧180cm)는 1순위 전정규 못지않은 기록을 프로 생활에서 남겼으며 2라운드 5순위 한정원(38‧200cm)의 활약 역시 주태수에 크게 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8순위 조성민(39‧190cm)에서 대박이 터지며 '역대 최악의 흉작 드래프트'라는 불명예를 상당 부분 씻을 수 있었다.
‘조선의 슈터’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성민은 KBL의 한시대를 풍미한 레전드 슈터다. 소속팀은 물론 국가대표로도 맹활약하며 신기성, 함지훈 등과 함께 후순위 지명 성공의 대표적 예로 꼽히고있다. 드래프트 당시만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했을때 프로에서의 성공이 꼭 지명 순위만이 아님을 입증한 좋은 예로 회자된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던 1순위 전정규
2006년 신인드래프트 이전까지 각 대학교별 1순위 지명자들은 나름대로 고유의 색깔이 있었다. 중앙대는 큰 신장에 기동력까지 갖춘 빅맨(송영진, 김주성), 고려대는 묵직한 파워에 슈팅력을 겸비한 전천후 포워드(현주엽, 이규섭)가 돋보였다. 반면 슈터(조상현, 방성윤)하면 단연 연세대였다.
드래프트 세대는 아니었지만 이전 문경은, 우지원까지 짧은 주기를 바탕으로 연세대 출신 슈터들은 계속해서 배출되고 있었고 리그에서도 검증된 활약을 펼쳤다. ‘연세대 출신 슈터는 믿고 쓸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때문에 전정규 역시 쟁쟁한 연세대 슈터 선배들만큼은 아니더라도 한팀의 주전급으로는 충분히 성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농구대잔치에서 MVP를 수상하기도 했으며 연세대 주장으로서 양희종, 김태술 등 후배들을 잘 이끌면서 리더십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정규는 커리어 내내 1순위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현재까지도 박성진, 박준영, 박정현 등과 함께 ‘아쉬운 1순위’를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이름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전정규는 장단점이 뚜렷한 슈터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타입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단점이 장점마저 덮어버린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전정규는 연세대 재학 시절 슈팅력 하나 만큼은 제대로 인정받았던 선수다. 슛터의 필수조건인 두둑한 배짱은 물론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봇물처럼 외곽슛을 쏟아낼 수 있는 폭발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화력은 좋지만 제대로 쓰기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합이 필요했다. 2~3번을 오가기는 했으나 플레이 스타일을 봤을 때 그의 주포지션은 3번 스몰포워드였다. 사이즈적인 측면에서는 가드가 맞았지만 거기에 걸맞는 스피드도 갖추지 못했으며 볼핸들링, 시야, 패싱센스 등에서도 아쉬움이 많았다.
연세대 시절에는 그런 단점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의 단점을 메워주고 슈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원맨 리딩이 가능한 최고의 포인트가드 김태술,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하며 2인분 역할을 해주던 양희종 등이 옆에서 든든하게 받쳐주었기에 이것 저것 신경쓰지않고 받아먹는 슛만 잘 던져주면 됐다.
프로 무대는 달랐다. 평균 사이즈, 수비압박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컸다. 거기에 당시 전자랜드는 연세대 시절처럼 슈터 역할에만 충실해도 제몫을 할 수 있는 환경의 팀도 아니었다. 조성원의 스피드, 김병철의 드라이브인 등 사이즈에서 아쉬운 슛터가 경쟁력을 키우기위해서는 슛외에 다른 무기가 필요하다. 아쉽게도 전정규에게는 슛이 안터지는 상황에서도 공헌도를 이어갈 수 있는 제2의 옵션이 부족했다.
승부처에서 한방 꽂아주는 능력이야 나무랄 데 없었지만 수비가 불안해 자신이 올린 득점 이상을 허용하기 일쑤였고 슛이 안 터지는 날은 이른바 불필요한 선수로까지 전락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만약 다른 무기가 있었다면 슛감을 다시 잡기까지 코트에서 버티는게 가능했겠지만 그런 것을 가지고있지 못했던지라 슈팅이 부진하다 싶으면 금세 교체되기 일쑤였다. 그런 상황에서 본인 역시 편하게 플레이하기는 쉽지않았을 것이다.
◆ 전정규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476경기 출전 평균 5.8득점, 1.6리바운드, 1어시스트, 0.7스틸
⁕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06년 12월 17일 대구 오리온스전 = 35득점(3점슛 7개, 3점슛 성공률 58.3%) / 3점슛 성공 ☞ 2008년 3월 22일 안양 KT&G전 = 8개 / 스틸 ☞ 2008년 12월 19일 서울 삼성전 = 6개
부상으로 꺾여버린 2순위 노경석의 상승세
노경석은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 걸쳐 슈팅력이 좋은 가드로 이름을 알렸다. 때문에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후보로 꼽혔지만 2번째 픽까지는 예상되지 않았다. 때문에 2순위 지명권을 가진 SK에서 그의 이름을 호명하자 놀라는 반응도 적지않았다. 노경석이 실력으로 되갚아줬다면 멋진 반전드라마가 되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않았다.
슈팅이라는 확실한 장점은 있었으나 소극적인 플레이로 인해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혹평이 많았다. 물론 폭발력이 있는 선수답게 잘하던 시절도 있었다. 군 제대후 울산 모비스로 이적했을 당시가 바로 그때다. 당시 모비스는 팀내 주전 슈팅가드인 김효범이 FA로 팀을 떠났고 보상선수로 노경석을 지명했다. 김효범의 빈자리를 메우기위한 이유가 컸다.
물론 당시 보상선수를 선택하던 과정에서 그나마 노경석이 눈에 들어온 것일 뿐 그가 김효범의 공백을 제대로 채워줄 것으로 기대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저 다른 후보군들과 더불어 가능성의 수를 좀더 높혔다고 보는게 많다. 하지만 2010~2011 시즌 노경석은 심기일전하며 상당한 역할을 해준다. 양동근이 아시안게임 대표로 차출된 사이 주득점원으로 활약해준 것을 비롯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통해 쏠쏠한 역할을 이어나갔다.
개인 최다인 49경기를 뛰며 평균 11.3득점, 1.9리바운드, 2.4어시스트, 0.7스틸, 0.3굿디펜스 등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출장경기 및 시간부터 모든 기록이 이때가 가장 좋았다. 아쉽게도 상승세를 타고 치고나가려는 시점에서 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부상이었다. 반월판이 손상되는 부상을 입어 수술을 받아야했고 이후 제 기량을 찾지 못한 채 4시즌을 그냥 그렇게 보내다 은퇴 수순을 밟고 말았다. 이때 4시즌 동안 뛴 경기 숫자는 36경기에 불과했다.
◆ 노경석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79경기 출전 평균 5.2득점, 1.3리바운드, 1.2어시스트, 0.5스틸
⁕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10년 10월 29일 창원 LG전 = 27득점(3점슛 5개, 3점슛 성공률 55.6%) / 어시스트 ☞ 2011년 2월 11일 부산 KT전 = 7개 / 스틸 ☞ 2010년 10월 23일 서울 삼성전 = 4개
작은 거인 이현민부터 조선의 슈터 조성민까지…
드래프트 멤버중 신인상은 3순위로 지명된 이현민이 가져갔다. 이현민은 드래프트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는데 다름아닌 작은 신장(172.8cm) 때문이었다. 역대로 따져도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였는데 실력으로 사이즈에 대한 저평가를 완전히 불식시켜버렸다.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한다'는 말도 있기는하지만 그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이현민은 너무 작았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신인 시절 좋은 활약을 펼칠 때도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는 혹평도 적지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관리와 꾸준한 경기력을 통해 당시 드래프트 멤버중 가장 많은 경기를 뛰며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정확한 슈팅력에 더해 신장의 열세를 극복하기위해 갈고닦은 플루터 거기에 패싱센스도 뛰어났던지라 기복없는 꾸준함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혔다. 선수시절 내내 롱런에 대해 의심받으며 잦은 이적을 경험했으나 그때마다 늘 제몫을 해줬던 선수다.
◆ 이현민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702경기 출전 평균 5.1득점, 1.9리바운드, 3.8어시스트, 0.8스틸
⁕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13년 12월 4일 서울 SK전 = 25득점(3점슛 5개, 3점슛 성공률 83.3%) / 어시스트 ☞ 2016년 12월 15일 고양 오리온전 = 14개 / 리바운드 ☞ 2017년 3월 22일 고양 오리온전 = 10개 / 스틸 ☞ 2017년 3월 16일 서울 삼성전 = 5개
농구 팬들 사이에서는 아마 시절 천재 소리까지 들었지만 프로에 와서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지못한 아쉬운 선수들이 종종 언급된다. 4순위 김학섭도 그중 한명이다. 전주고 시절 게임리딩과 득점력을 고루 겸비했다는 극찬 속에서 고교랭킹 1위로까지 평가받았지만 한양대 진학후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며 한창 성장해야 될 시기를 흘려보내게 된다. 부상도 겹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순위 후보로까지 언급됐고 최종적으로 4순위에 뽑혔다는 것은 그만큼 어린시절 보여준 재능이 엄청났다는 것을 증명한다.
◆ 김학섭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19경기 출전 평균 2.6득점, 1.3리바운드, 1.9어시스트, 0.5스틸
⁕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07년 11월 3일 인천 전자랜드전 = 18득점(3점슛 5개, 3점슛 성공률 50%) / 어시스트 ☞ 2006년 12월 8일 대구 오리온스전 = 12개 / 리바운드 ☞ 2006년 12월 16일 전주 KCC전 = 10개
5순위 주태수는 자신만의 색깔을 앞세워 롱런에 성공한 케이스다. 기동성, 슛, 공격스킬, 패싱센스 등 어느 하나 특별할 것이 없어보였으나 그에게는 대다수 KBL 지도자들이 선호할만한 장점이 존재했다. 듬직한 체구를 바탕으로한 이른바 '몸빵'이 바로 그것이었다. 국내선수는 물론이거니와 외국인빅맨까지 어느정도 시간동안 수비가 가능할 정도였다. 준수한 자유투 성공률에 수비 이해도도 좋은 편인지라 특히 백업 빅맨으로서의 가치가 높았다.
◆ 주태수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356경기 출전 평균 3.9득점, 2.8리바운드, 0.6어시스트, 0.4스틸, 0.2블록슛
⁕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08년 11월 30일 원주 동부전 = 20득점(2점슛 4개, 3점슛 2개, 자유투 6개 모두 성공) / 어시스트 ☞ 2008년 12월 17일 대구 오리온스전 = 5개 / 리바운드 ☞ 2011년 11월 26일 울산 모비스전 = 13개
지금은 이시준으로 개명한 6순위 이원수는 경기 운영이나 조립에 강점이 있는 스타일의 가드는 아니었지만 빠른 발을 앞세운 악착같은 플레이로 프로에서 살아남은 케이스다. 특유의 스피드는 공격시에도 빛을 발했지만 발빠른 상대를 전담마크할 때 유용하게 쓰였다.
◆ 이원수(현 이시준)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400경기 출전 평균 5.2득점, 1.5리바운드, 1.5어시스트, 0.9스틸
⁕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11년 12월 17일 서울 SK전 = 27득점(3점슛 4개, 3점슛 성공률 80%) / 어시스트 ☞ 2013년 3월 15일 전주KCC전 = 10개 / 스틸 ☞ 2013년 11월 23일 울산 모비스전 = 5개
임휘종은 준수한 사이즈를 갖춘 1번으로서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던 기대주였으나 KT&G의 1라운드 지명권과 삼성의 2라운드 지명권 맞교환으로 인해 삼성에 입단한 것이 불운이었다. 당시 삼성은 이상민, 강혁, 이정석 등 쟁쟁한 가드들이 즐비한 '가드왕국'이었기 때문이다. '프로는 실력으로 말한다. 스스로 이겨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으나 팀내 입지가 탄탄한 스타급 가드 선배들을 새까만 후배가 밀어낸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드문 일이다. 꾸준히 코트에 나섰어도 기대만큼 못컸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경기에 나설 기회 자체가 아주 적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임휘종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57경기 출전 평균 0.9득점, 0.5리바운드, 0.7어시스트, 0.3스틸
⁕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07년 2월 6일 전주 KCC전 = 7득점 / 어시스트 ☞ 2007년 3월 14일 부산KTF전 = 4개 / 리바운드 ☞ 2007년 3월 16일 전주 KCC전 = 3개
흉작이라고 불리던 2006년 드래프트가 낳은 최고 스타를 꼽으라면 부산 KTF에 8순위로 지명된 조성민이 가장 앞줄에 서야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당시 드래프트 출신중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 것을 비롯 어지간한 역대 1순위 스타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문경은, 조성원 등과 함께 KBL 역대 최고슈터 중 한명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국가대표팀에서의 맹활약으로 '조선의 슈터'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김학섭과는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동기인데 학창시절에는 늘 2인자로 가려져 있었다. 조성민은 다재다능함이 돋보이는 슈터였다. 빼어난 슈팅능력에 더해 볼핸들링, 패싱능력 등을 고르게 갖추고 있었던지라 보조리딩이나 2대2플레이에도 능했다. 한창 때는 수비력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을 정도로 공수겸장의 면모를 뽐냈다. 2라운드 출신 중에서는 단연 한정원이 빛난다. 무려 15년가량 현역을 이어갔으며 통산 성적 역시 주태수와 별반 차이가 나지않는다.
◆ 조성민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550경기 출전 평균 9.8득점, 2.2리바운드, 2.3어시스트, 1.1스틸
⁕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13년 12월 1일 서울 SK전 = 34득점(3점슛 10개, 3점슛 성공률 83.3%) / 어시스트 ☞ 2017년 3월 5일 서울 삼성전 = 9개 / 리바운드 ☞ 2018년 3월 1일 울산 현대모비스전 = 8개 / 스틸 ☞ 2019년 1월 12일 인천 전자랜드전 = 6개
◆ 윤호성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23경기 출전 평균 3.6득점, 0.3리바운드, 0.1어시스트, 0.2스틸
⁕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16년 12월 16일 울산모비스전 = 14득점(3점슛 4개, 3점슛 성공률 66.7%) / 어시스트 ☞ 2007년 3월 16일 서울 삼성전 = 1개 / 리바운드 ☞ 2006년 12월 29일 안양 KT&G전 = 2개
◆ 배경한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8경기 출전 평균 2득점, 0.3리바운드, 0.2어시스트, 0.2스틸
⁕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07년 1월 7일 울산모비스전 = 6득점(3점슛 2개) / 어시스트 ☞ 2011년 2월 12일 서울 SK전 = 1개 / 스틸 ☞ 2008년 3월 16일 서울 SK전 = 2개
◆ 한정원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423경기 출전 평균 3.3득점, 1.8리바운드, 0.3어시스트, 0.2스틸
⁕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12년 1월 8일 전주 KCC전 = 21득점 / 어시스트 ☞ 2015년 10월 20일 전주 KCC전 = 3개 / 리바운드 ☞ 2007년 10월 30일 전주 KCC전 = 11개
현재 전정규는 명지중, 이현민은 휘문고, 김학섭은 전주남중, 주태수는 충주 국원초, 배경한은 무룡고에서 코치로 활약중이다. 이원수(이시준)는 WKBL 부천 하나원큐, 조성민은 KGC 인삼공사에서 코치로 재직중에 있다. 노경석은 고양 오리온에서 매니저로 있다가 데이원에 매각되는 시점에서 팀을 떠났다. 한정원은 현재 KBL 심판으로 현장에서 뛰고 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표필상 농구클럽 제공
#이미지편집_김종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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