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부 다이어리] 옆은 천길 낭떠러지…의지할 건 못 믿을 사다리뿐

거칠부 2023. 3. 2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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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랑탕 간자 라 트레킹
10개 넘는 4,000m 고개와 험로… 네팔에서 맛보는 알파인 트레킹 80km 여정
하이캠프부터 급경사가 시작돼 게처럼 옆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런 중에도 맞은편에 보이는 걍진 곰파와 랑탕 히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간자 라Ganja La(5,130m)가 시작되는 타르케걍Tarkeghyang (2,600m)에 가기 위해 버스를 빌렸다. 가이드와 포터들, 우리 2명까지 모두 10명이었다. 낡은 버스는 구불구불한 비포장 길을 힘겹게 올라갔다. 길이 엉망인 데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서 가는 길이 고됐다. 커브 구간마다 기사는 엑셀을 세게 밟았다. 엔진 소리가 커지면 버스는 뒤뚱뒤뚱 조금씩 고도를 높였다.

카트만두Kathmandu에서 출발한 지 8시간쯤 됐을까. 갑자기 버스가 멈췄다. 창밖을 내다보니 길 한쪽이 무너졌다. 포터들은 약속이나 한 듯 우르르 내리더니 무너진 길을 돌로 메웠다. 잘 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인절미를 으깨놓은 듯한 진흙 길이 나타났다. 기사는 더 갈 수 없다며 두 손을 들었다. 우리는 짐을 내리곤 별일 없다는 듯 마을까지 걸어갔다.

나는 지도를 펼쳐놓고 어디에 갈지 고민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네팔 히말라야 지도만 20장이다. 이번 간자 라(고개)도 같은 맥락이었다. 지도를 보다가 문득 간자 라와 틸만 패스Tilman's Pass(5,308m)를 이어보고 싶었다.

간자 라 정상에서 포터들과 함께. 칼날 같은 고개라 정상이 몹시 좁았다.

두 고개는 예전에 히말라야 횡단 트레킹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던 곳이다. 틸만 패스는 선답자들의 후일담에 지레 겁을 먹었고, 간자 라는 포터의 심한 동상으로 포기했다. 그런데 왠지 이번엔 갈 수 있을 듯했다.

히말라야는 첫날부터 봐주지 않았다. 3시간 반 만에 고도를 1,000m나 올렸다. 4월 중순인데도 여전히 추웠고 오후만 되면 구름이 몰려왔다. 어디쯤에서 멈춰야 하는데 가도 가도 물이 없었다. 몇 개의 카르카(목초지)를 지났지만 허사였다. 해가 질 무렵이 돼서야 걸음을 멈췄다. 다들 털썩 주저앉아 있는 동안 가이드 인드라가 응달에서 눈을 발견했다. 급한 대로 눈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포터들이 큰 비닐봉지에 눈을 가득 담아왔다. 많아 보여도 막상 녹여서 물을 만들면 얼마 되지 않았다. 눈을 녹인 물은 시커멓고 탁했다. 눈에 있던 먼지와 검불이 그대로 가라앉았다. 가이드 인드라는 목에 두르고 있던 멀티 스카프를 벗어 거름망으로 썼다. 내가 보고 있었던 게 민망했는지 그는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이거 깨끗한 거예요."

봄철 히말라야 트레킹은 궂은 날씨를 각오해야 했다. 그나마 오전에는 날씨가 좋은 편이라 주변 산이 보였다. 11시 방향으로 보이는 고개는 라우리비나 패스Lauribina Pass(4,610m) 같았다. 고사인쿤드Gosainkund(4,380m)에서 넘어오는 고개로 랑탕Langtang 지역의 대표적인 코스 중 하나다.

해가 들지 않는 작은 움막 안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보통 일행과 직접 준비했다.

이른 봄이라 그럴까? 매일 흐리고 눈이 왔는데도 또 눈이 쏟아져 내린다. 야영지라고 생각되는 곳마다 물 사정이 좋지 않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그야말로 '아무 곳'에나 텐트를 쳤다. 가이드 인드라가 적당히 눈이 남아 있는 곳에 멈추자 포터들이 눈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날보다 더 많은 시커먼 물을 만들어냈다.

'빌어먹을' 눈에 자꾸 발이 빠졌다. 다시 발을 빼낼 때마다 힘이 쭉 빠졌다. 지금까지 4,000m 전후의 고개를 10개쯤 넘었다. 이젠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보이는 건 흰 눈과 그 안에 숨어 있을 검은 산, 앞뒤로 흩어져 있는 포터들뿐이었다.

그리스신화의 시시포스Sisyphus는 죄를 짓고, 그 벌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 했다. 힘겹게 정상까지 올려놓은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때마다 그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을 반복했다. 히말라야에서 고개를 만날 때마다 그 장면이 떠올랐다. 영원한 벌을 받는 시시포스처럼 이 오르막과 내리막도 영원히 반복되는 것만 같아서.

봄철 히말라야 트레킹은 궂은 날씨를 각오해야 한다. 오후만 되면 흐리거나 눈이 내렸다.

5,000m 넘는데 파리와 나비가 있어

해가 들지 않는 작은 움막에서 점심을 준비했다. 우리는 포터들이 덜어준 밥에 김치, 미역, 즉석 된장국으로 국밥을 만들었다. 그 잠깐 사이에 땀이 식어서 수전증 환자처럼 손이 떨렸다. 오랫동안 겨울 산행을 하고 히말라야에 다녔어도 추위는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김치죽으로 아침을 먹고 오전 6시에 출발했다. 시린 손끝을 꾹꾹 누르며 걸음을 뗐다. 2시간쯤 올라가자 간자 라가 보였다. 셰르파 겔젠 뒤에 바짝 붙어서 그가 찍어 놓은 발자국을 따라갔다. 대각선 방향으로 돌탑이 보이자 겔젠이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저 아래로 희미한 길이 보였다. 이때부터 포터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나이 많은 포터 셋은 이 길이 맞다 하고, 젊은 포터들은 겔젠을 따라 돌탑 쪽으로 향했다.

인드라와 겔젠은 돌탑을 한참 지나 왼쪽 고개로 올라갔다. 2015년 네팔 대지진 후 길이 바뀌었을지 모른다며 확인해야겠단다. 나이 많은 포터들은 고개를 저으며 오른쪽 고개를 가리켰다. 일행도 지도를 보며 오른쪽 고개가 간자 라일 것이라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다니는 고개는 그 부근에서 가장 낮은 고개일 확률이 높단다.

까마득하게 높은 곳이라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배낭을 내려놓고 기다렸다. 눈 위에 반사된 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5,000m가 넘는 곳인데도 파리와 나비가 있었다. 파리는 도대체 어디서 알을 까는 것이며, 나비는 꽃도 없는 곳에서 어찌 사는 걸까? 자연은 언제나 이해의 영역을 넘어섰다.

간자 라 정상은 로프를 붙잡고 올라가야 했다. 한 발자국 올라서면 두 발자국 미끄러졌다.

두 사람이 도착한 건 2시간이 지나서였다. 결론은 나이 많은 포터들의 말이 맞았다. 그사이 눈이 녹으면서 등산화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우리는 미끄러지는 눈 사면을 따라서 간자 라 바로 아래까지 갔다. 먼저 도착한 겔젠이 배낭에서 로프를 꺼냈다. 그는 순식간에 간자 라 정상에 다녀오더니 로프를 붙잡고 올라가라고 했다.

이런 곳이 길이라니 말도 안 됐다. 급경사에 쌓인 눈은 한 발자국 올라서면 두 발자국 미끄러졌다. 로프를 잡고 올라가는데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런 곳인 줄 몰랐다. 그냥 다른 고개들처럼 맨몸으로 걸어가는 곳인 줄 알았다.

칼날 같은 고개인 간자 라(5,130m) 정상은 몹시 좁았다. 나는 배낭에서 타르초(만국기 형태로 경전이 적힌 오색 깃발)를 꺼내 작은 돌탑에 묶었다. 바람이 불자 오색 깃발이 날갯짓하며 경전을 읽어 주었다. 우리가 내려갈 곳에서 하얗게 빛나는 랑탕 히말Langtang Himal도 보였다.

셰르파 겔젠이 정상을 내려서기 위해 고정 로프를 설치했다. 주변은 오로지 절벽뿐이었다

사다리를 묶은 건 얇은 철사, 순간 철렁

어디에도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살펴도 깎아지른 절벽뿐이었다. 그사이 겔젠이 내려가기 위한 로프를 설치했다. 그가 있는 곳은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날 정도로 비좁았고, 그나마도 쇠사슬을 붙잡아야 했다. 오른쪽을 내려다보니 수직 절벽에 사다리 하나가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내려가는 유일한 방법이 부실한 알루미늄 사다리라니.

겔젠은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내 하네스(등반용 안전벨트)를 확인하고 로프를 단단히 걸어주었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겔젠의 신호를 기다렸다. 숨을 길게 내쉬고, 그의 천천히 내려가라는 말과 함께 곧바로 내려섰다. 아이젠의 뾰족한 발톱이 사다리에 얹힐 때마다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사다리 중간쯤 왔을 때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2개의 사다리는 가는 철사로만 연결되어 있었다! 순간 망측한 상상이 들었지만 내겐 저 위와 연결된 로프가 있었다.

실제로 5~10분쯤 내려온 것 같은데 마음은 1시간은 된 것 같았다. 사다리가 끝나자마자 로프를 풀어서 올려 보냈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한 돌무더기가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더 안전한 곳이 나올 때까지 내려갔다. 위를 올려다보니 한쪽은 사람이, 다른 한쪽은 짐이 내려오는 중이었다. 바위에 부딪히며 내려오던 짐이 바닥에 닿자마자 눈 속에 처박혔다. 짐을 꺼내는 것도 일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내려오기까지 1시간이 걸렸다.

내려가는 유일한 방법은 알루미늄 사다리였다. 2개의 사다리가 가는 철사로만 연결되어 내내 불안했다

어느새 해가 기울었다. 금방일 줄 알았던 하산 길에서는 눈구덩이와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인드라가 잘 지나간 곳도 내가 지나갈 때는 구덩이가 되었다. 내가 멀쩡히 지나간 곳에선 일행이 빠져서 허우적댔다. 눈구덩이가 등산화를 놓아주지 않기도 했다. 양말이 벗겨진 채 발만 쑥 빠져나오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하이캠프(4,960m)부터 급경사가 시작됐다. 앞을 보고 걸으면 그대로 고꾸라질 것 같아서 게처럼 옆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저녁 6시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대기하는 시간까지 12시간이나 걸린 셈이었다.

다음날은 기분 좋은 햇살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어제는 극한으로 몰리더니 하루가 지났다고 다른 세상이 되었다. 1시간 반 만에 컁진 곰파Kyangjin Gomp(3,830m)에 도착하니 비로소 살 것 같았다. 오후에는 맘먹고 빨래하고 등산화에 왁스칠을 했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한 지 반나절 만에 출발 준비를 마쳤다. 나는 다음 여정을 위해 지도를 펼쳤다. 과연 틸만 패스는 듣던 만큼 위험하고 힘든 곳일까?

하산길, 눈구덩이가 등산화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양말이 벗겨진 채 발만 쑥 빠져나오는 일이 반복됐다

Q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씻는 것과 대소변은 어떻게 처리하나요?

A

히말라야에서는 가장 먼저 고소 적응이 필요해요. 적응 단계에서 체온 유지가 중요해 몸을 씻지 않아요.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간단한 세수와 발을 닦는 정도는 동전티슈를 이용해요(하루에 4개 정도). 먼저 세수하고 다음에 손과 발을 닦는 식이지요. 마지막에는 먼지 묻은 등산화나 텐트 바닥을 닦기도 해요. 고소에 적응되면 계곡에서 머리를 감을 수 있어요. 서비스 수준에 따라 스태프들이 물을 끓여 주기도 하고요. 네팔처럼 롯지(여행자 숙소)가 잘 돼 있는 곳은 지역에 따라 뜨거운 물 샤워도 가능해요.

네팔과 인도 일부는 롯지마다 화장실이 있어 크게 불편하지 않아요. 캠핑 트레킹 때는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화장실 텐트를 설치해요. 여러 명이 사용하다 보니 용변을 본 후에는 살짝 흙을 덮어서 다음 사람을 배려해요. 빙하에서는 화장실을 설치할 수 없어 각자 자연에서 해결해요.

걍진 곰파를 앞두고 포터들과 랑탕 히말. 히말라야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들이다.

트레킹 정보

일반적인 코스

샤브루 베시(1,503m) - 라마 호텔(2,380m) - 랑탕(3,430m) - 컁진 곰파(3,830m) - 간자 라 BC(4,330m) - 간자 라(5,130m) - 켈당(4,420m) - 둑파(4,040m) - 타르케걍(2,600m)

틸리초 콜라 베이스캠프에서 하이 카르카까지 2일간의 야영이 필요하다. 트레킹은 12일이면 되지만 예비일과 이동 시간을 포함해 17~20일 정도가 좋다. 난이도는 안나푸르나 토롱 라Thorong La(5,415m)보다 약간 높은 편이다. 트레킹 적기는 날씨가 가장 좋은 10~11월이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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