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익숙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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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열망이 가득했던 1980년대 후반의 어느 봄날, 최루탄과 벚꽃이 뒤섞여 묘한 감정을 자아내는 대학 교정에서 나는 대학 첫 새내기 입학생이 되었다.
수업의 첫 1교시는 '현대시 수업'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원고지에 나의 첫 시를 작성하고 있었다.
3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현대시 첫 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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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열망이 가득했던 1980년대 후반의 어느 봄날, 최루탄과 벚꽃이 뒤섞여 묘한 감정을 자아내는 대학 교정에서 나는 대학 첫 새내기 입학생이 되었다.
수업의 첫 1교시는 '현대시 수업'이었다. 처음 보는 교수님의 강의를 기대하며 설렘과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교수님의 손에는 현대시 교재가 아닌 커다란 돌이 들려 있었다. 회색빛이 감도는 그 큰 돌을 교탁에 힘겹게 놓으시곤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여러분들, 지금 이것이 무엇인가?" 당시 나를 비롯한 국문과 학생들은 그 질문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것은 당연히 돌이었고 우리는 당연히 돌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님은 "지금 이것이 돌인가? 돌일 수밖에 없는가? 돌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될 수는 없는가?" 계속되는 알 수 없는 질문에 우린 그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교수님이 다시 질문하였다. "돌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보이진 않는가?" 우린 아무리 살펴봐도 돌이기에 침묵만이 이어졌다. 그때 한 학생이 대답했다. "돌 중간의 그림자가 마치 새처럼 보이는데요?" 교수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 역시 그 그림자가 날아가는 새로 보였다. 그때 번쩍하고 생각이 떠올라 나도 대답했다. "교수님, 돌 가운데에서 새가 날고 있네요. 하지만 날 수 없을 것 같아요. 돌 속에 갇혀 있어서요."
그때 잊을 수 없는 교수님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여러분, 창문 너머에 여러분의 청춘과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의 최루탄이 날아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날아가야 하는 자유의 새지만, 이렇게 독재의 바위 속에서 허덕이고 있네요. 틀을 깨고 바위를 깨고 날아가야 하는데 말이죠."
그때 나는 이미 원고지에 나의 첫 시를 작성하고 있었다.
'돌 속에 새가 난다… 결코 날 수 없는 새'
3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현대시 첫 수업이다. 세상을 살면서 나도 익숙하고 편한 것들에 매료되어 불편하고 낯선 것들을 거부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날의 수업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곤 한다.
평범했던 큰 돌이 날지 못하는 새가 되고, 그 새의 날갯짓으로 나만의 시(詩)가 탄생하는 경험.
우리는 살면서 늘 익숙한 것에 마음을 내 줄 때가 많다. 늘 만나는 사람, 늘 가는 식당, 늘 보는 영화 스타일에 편안함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이런 경직된 삶에 순환에 활력을 주는 것은 의외로 '낯선 경험'일 때가 많다. 나만의 세상에서, 나만의 스타일을, 나만의 방식으로 모든 것들을 익숙하게 처리할 때도 우린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행할 때가 많다.
우리의 뇌와 심장에 새로운 자극이 되는 일들은 좀더 우리의 삶을 다양하고 즐겁게 만들어준다. 특히 다양한 영상 매체의 발달은 낯설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지 않던가.
몇 십 년 같은 일을 한 전문가를 나는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 분야에서 많은 세월 갈고 닦은 전문적 지식과 기술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수 십 년 해온 그 분야를 과감히 청산하고 새로운 분야의 영역을 개척하는 사람이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두렵지만 '새로운 낯섦'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경외의 대상이다. '익숙함'이 어쩌면 내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삶의 에너지를 억누르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부터 나는 늘 다니는 길로 다니지 않을 것이다. 낯선 다른 길로 다니면서 내가 보지 못했던 '돌 속의 새'를 찾아 훨훨 날아가게 해주고 싶다.
30여 년 전의 그 첫 수업 날은 3월 3일이었다. 마치 새 두 마리(33)가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숫자인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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