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멍 든 아들의 허벅지” 남의 마음에 피멍 들게 하지 말라 [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 sayno@korea.com 2023. 3. 21. 07: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격주 화요일 독점 연재] 세이노의 가르침

2️⃣정순신 변호사 아들 학폭으로 본 敎테크(下)

10여 년 전 어느 금요일 저녁의 일이다. 가깝게 지내던 대기업 이사 A로부터 갑작스레 전화가 왔다. A에겐 공부할 만큼 했고 좋은 외국계 회사에 다니며 결혼을 앞두고 있던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들 앞으로 어느 경찰서에서 폭행 혐의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출석 요구서(소환장)가 왔다는 것이다.

A는 “얼마 전에 아들이 새벽에 귀가한 적이 있다”며 아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직장 동료와 술을 좀 마신 후 택시를 탔다. 찬바람을 쐬어 정신을 차리려고 창문을 열었다. 그런데 나이 많은 택시 기사가 이상하게 행동했고 별것도 아닌 일로 시비가 붙었다. 기사가 택시를 경찰서로 몰더라. 그래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술에 너무 취해서 잠을 잤다. 새벽이 되어 집에 가라고 해서 이제서야 왔다.”

A는 내게 물었다. “아들이 대수롭지 않게 말해서 별일 아니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폭행 혐의 조사라니, 괜찮을까요?”

이때 내가 물은 것은 딱 하나였다. “혹시 출석 요구서에 특정범죄가중처벌법(줄여서 특가법) 어쩌고 하는 말은 없던가요?” A는 그 말이 있다고 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상대방을 주먹으로 한 대 때렸다면 폭행이다. 하지만 운행 중인 택시나 버스의 운전자를 한 대 때리면 특가법이 적용되고 얘기가 달라진다. 특가법이 적용되면 형벌이 확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반 폭행은 피해자와 합의하고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를 내기만 하면 형사 처벌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특가법이 적용되는 폭행은 그런 탄원서가 제출되어도 (형량이 좀 줄어들 순 있겠지만) 형사 처벌을 받을 확률이 아주 높다.

내 말에 A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들은 여전히 별일 아니라고 하고 기억도 잘 안 난다고 하는데 제발 좀 도와주세요.”

그런데 뒷조사를 해보니 아들이 한 얘기와 실제 상황은 전혀 달랐다.

잠시 곁길로 간다. 뒷조사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마피아들에게 물건을 수출하면서 국내외 어둠의 세력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래전 어느 경찰서의 자문위원이기도 했었다. 수십 년 전에는 그냥 ‘자문위원회’라고만 있었고 자동차 앞유리에 붙이는 무궁화 자문위원 마크를 지급받았다. 지금은 교통자문, 경미범죄심사, 정책자문, 외사협력자문, 경찰발전, 집회시위자문, 안보자문 등 여러 위원회들이 많지만 대부분의 경찰서에서 운용하는 것은 해당 지역 요건에 맞는 한두 개이다. 자문위원회 가입 자격은 폭넓게 개방된 편이지만, 유흥업소 종사자는 안 된다. 참고로 경찰서 자문위원은 가끔 기금을 내야 할 경우도 있고, 젊을 때 해야 세월이 지나면서 인맥이 넓어진다.

내가 들은 택시 기사의 진술은 이랬다. “도시고속도로에서 운행 중이었는데 뒷좌석에 앉은 손님이 창문을 열더니 상반신을 창문 밖으로 내밀었다. 위험하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게 운전석에서 창문을 잠갔다. 그랬더니 뒷좌석에서 발길질을 하고 운전하는 내 손을 때리고 목까지 조르려고 하였다. 바로 경찰서로 가서 현행범 신고를 했는데, 어린 놈이 경찰서에서도 내게 계속 쌍욕을 했다.”

택시 기사는 주말이 지나 병원 진단서를 제출하기로 했고, 가해자 처벌을 원한다는 진술까지 한 상태였다. 나는 이런 내용을 A에게 일요일에 전달했고, 변호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안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A의 아내가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왔다. A가 아내는 들어오지 못하게 방문을 잠그고 하나 뿐인 아들, 심지어 곧 인도양 모리셔스로 신혼여행을 떠날 아들의 엉덩이와 종아리를 굵은 각목으로 셀 수 없이 때렸다는 것이다.

아들의 하반신은 피멍으로 검붉게 물들었고, 제대로 걷지 못할 지경이라고 했다. 전과자가 되면 미국에서 일하지 못하게 될 텐데, 이건 나중 문제였다. 당장 몇 주 후에 바닷가로 신혼여행을 떠나야 하는데 수영복은커녕, 절뚝거리면서 결혼식장에 입장해야 할 상황이 됐으니 이를 어쩌면 좋으냐며 울먹였다. 그래서 아들 사진을 내게 좀 보내 달라고 했는데, 사실이었다. 피멍 정도가 아니었다.

/일러스트=한상엽

본래 나는 뒷조사를 해주는 정도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보자마자 마음이 바뀌었다. A의 아들이 기소유예(죄를 짓기는 했지만 기소에 의하여 시작되는 형사재판을 받지 않으므로 전과가 생기지 않는다)를 받도록 적극적으로 조언해 주기로 했다.

우선 부모가 택시 기사를 만나 아들의 피멍 든 다리 사진을 보여주면서 무릎을 꿇고, ‘저희가 이미 혼냈으니 용서해 달라’고 애걸하면서 합의금을 제시하라고 했다.

합의서는 경찰 제출용(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과 개인 보관용(사건과 관련한 모든 민·형사적 책임과 특별손해에 대해 묻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2개 만들고, 구체적인 내용은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아들의 최근 개인적 상황들을 수집하고 법적으로 고려될 수 있는 사항들도 정리해서 알려줬다(결혼을 앞두고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이나 회사에서 겪는 실적 압박감처럼 누구라도 공감을 느낄 사항들을 당사자와 대화하면서 정리해야 한다. 변호사들이 이런 것도 알아서 챙겨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 절대 안 된다).

정순신 변호사처럼 검찰에 있다가 개업한 변호사들을 찾아내고(법조계에 인맥이 있어야 찾기 쉽다) 어떻게 접촉해야 하는지 팁도 전달했다.

지난 2007년 3월 7일자 조선일보 A12면 기사. 입학식에서 학부모들에게 회초리를 나눠주는 유치원이 있다는 내용이다. 아이들의 잘못은 엄하게 회초리로 다룬다./조선DB

결정적으로 A에게 아들의 다리와 허벅지 사진을 첨부한 탄원서를 쓰게 했다. “아비가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앞둔 하나뿐인 아들을 이 정도로 혼을 냈으니 부디 선처를 빈다”고 말이다.

당신이 검사라고 치자. 제아무리 특가법이 적용되는 폭력 행위일지라도 가해자는 이미 피해자와 합의했고, 아버지는 가해자인 아들을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팼고, 아들 스스로도 계속 잘못했다고 울고 있다.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안 들겠는가?

게다가 외국법인에서 일하는 젊은이가 형사 처벌을 받게 되면 앞날이 어두워질 것이 뻔히 보이는데? 아무리 돈 받고 하는 일이라지만 변호사 역시 정말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안 들겠는가. 결국 결혼식 직전에 아들은 기소유예를 받았고, 신혼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엔 언제나 긴바지 차림이었다.

내가 정 변호사 같은 학교폭력 가해자 부모들에게 말하려는 것은 이것이다. 피해자와 부모가 원하는 게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가. 진심 어린 사과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냐? 어떤 부모는 정작 피해 학생과 그 부모에게는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위원회에만 반성문을 보냈다는데…

이 멍청한 연놈들아! 법률 기술자를 찾아서 법적으로 꼼수 부리며 질질 끌지 말고, 행정처분 받았으니 더 이상 용서 안 구해도 된다는 개소리는 집어치워라.

자녀를 진정 바르게 키우고 싶다면 법률적인 꼼수는 찾지 말고 이제라도 너희 자녀를 상종 못할 버러지 취급을 하며 혼쭐내라. 다시는 그런 쓰레기짓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눈물 콧물 침 질질 흘리며 잘못했다고 빌 때까지 매를 들어라. 피멍이 들도록 몽둥이로 줘 패라. 피해 학생과 그 부모의 가슴은 피멍보다 더 진한 검은 멍이 든 채 찢겨 있음을 떠올리면서 호되게 때려라(학교폭력 가해자가 가정폭력 피해자인 경우가 있는데 여기선 논외로 하자).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에서 학교폭력 피해를 당하던 어린 문동은이 학폭으로 추락사한 윤소희의 사망 현장을 둘러보다 담임 교사와 통화하는 장면./넷플릭스

그리고 너희가 때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피해 학생과 그 부모에게 찾아가 자식을 얼마나 때렸는지를 보여주고 그대로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라. 인간이라면 무릎을 꿇어야 할 때와 꿇지 말아야 할 때를 알 것 아니냐. 옷에 흙이 묻을까 봐 신문지부터 찾는다면 너희부터가 처맞아야 할 연놈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제 아무리 지위가 높건 돈이 많건 간에 상관없다. 어깨에서 힘을 빼고 제대로 자식 교육부터 시키고, 너희도 교육을 받아라. 그게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는 법이다.

가해 학생의 미래? 가해 학생의 인권? 가해 학생의 학습권? XX 떨지 말아라. 돈이나 권력으로 기르는 자식은 조만간 이 사회의 똥물이 될 연놈들이라는 것을 알아라. XX놈의 XX들아.

자녀를 때리면 폭행이라고? 자녀 징계권이 명시되어 있던 민법 제915조가 2021년 1월 26일 삭제된 건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고등학생이 아동이냐? 성경조차 “아이를 그가 가야 할 길에 따라 훈련시켜라. 그가 늙어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을 것”(잠언 22:6)이라고 했다.

지난 1992년 상영된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담임 김 선생(최민식 분)이 엄석대(홍경인 분)의 횡포를 벌주기 위해 '엎드려'를 시키는 장면./뉴스1

혹시라도 학폭 가해자라면 지금이라도 피해자를 찾아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라. 어둠 속 어딘가에서 너를 향한 복수의 칼이 숫돌에 갈려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 물론 매맞은 자녀가 너희에게 배운 것이라고는 법적 꼼수들뿐이니 너희를 형사 고소할 수도 있겠다만 자업자득이다. A의 아들이 신혼여행 중에 내게 보낸 글은 자기가 매맞아 쌀 짓을 했다는 반성뿐이었다.

👉상편(”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 검사 아들이 으스대는 이유)도 놓치지 마세요. 조선닷컴에서 여기를 클릭하세요.

민사고의 책임교사는 ‘학부모가 책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면서 진술서를 코치해준 것 같다’ ‘굉장히 실망스럽다’ 등 소신 발언을 위원회에서 하면서 2차 가해를 지적하고 추가적 처분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를 보면서 나는 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의 담임 선생이 생각났다. 담임은 ‘어린애 팔뚝만 하던 매’로 엄석대의 ‘엉덩이를 모질게’ 내려쳤고, ‘매는 금세 끝이 갈라지고 조각조각 떨어져’ 나갔으며… ‘매는 반토막으로 줄어 있었으나 매질은 멈추지’ 않았고 ‘아픔을 못 이겨 몸을 비틀면서도 어지간히 견디던 석대도 마침내는 교실 바닥에 엎어지며 괴로운 신음을 뱉어냈다… 잘못….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이 소설을 학생들에게 강제로라도 읽히고 토론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교과서에 이 소설이 일부 수록된다는데, 전문을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정치에 무관심하기는 하지만 국가의 인사 정책은 티끌 없이 공정하길 바란다. 앞으로 고위 공직자가 임명 후에 본인이나 가족이 숨겼던 일로 사퇴하는 경우, 임명 당시 기준으로 본인과 배우자의 자산의 절반 이상을 몰수하는 특별법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