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전기차 세액공제에 인력난까지···"한국 투자 매력 떨어져" [biz-플러스]

김기혁 기자 2023. 3. 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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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기아 오토랜드 화성 전경. 사진제공=기아

미국·유럽연합(EU)·중국 등이 과감한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앞세워 자국의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선 전기차 공장 하나 짓는 데도 제대로 된 인센티브가 없어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55억 달러를 투자해 2024년까지 연간 30만대 생산능력의 전기차 전용공장을 짓는데 주 정부로부터 약속받은 인센티브(재산세·소득세 감면)는 투자금액의 3분의 1인 18억 달러에 이른다.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상 최대 30%의 세액공제 혜택도 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전기차 공장을 지으면 투자시설에 대한 1% 세액 공제가 전부다. 국내에 완성차를 생산하는 업체는 현대차(005380), 기아(000270) 외에도 한국GM, 르노코리아, 쌍용차 등이 있지만 현재 신설 중인 전기차 공장은 단 3곳(울산·화성·광명)에 그친 주된 이유로 꼽힌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국의 전기차 투자 환경이 주요 국가 대비 매력적이었다면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인 GM과 르노가 먼저 움직였을 것”이라며 “현대차, 기아가 짓고 있는 국내 전기차 전용공장을 제외하면 국내 전기차 생산 시설은 사실상 ‘제로’인 상태로 정부와 정치권이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특법 세제혜택 아직 불분명
기아 화성 공장 EV6 생산 라인에서 직원들이 차량의 이상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현대차그룹

여야가 전기차도 최대 25%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뚜껑을 열어보면 ‘반쪽짜리’ 법안에 불과하다. 조특법상 세제혜택을 받으려면 시행령상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돼야 하고 해당 기술을 사업화하는 시설이 시행규칙에 반영돼야 한다. 게다가 여야가 국가전략기술에 포함시키기로 한 전기차의 경우 △자율주행 기술 △주행지능정보처리 기술 △전기구동 시스템 고효율화 기술 등과 같이 연구개발(R&D)과 관련된 기술들만 포함될 뿐 전기차 조립 공정은 핵심기술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의 경우 조특법상 신성장 원천기술에 포함돼 있는 여러 기술들이 국가전략기술로 상향 지정돼 혜택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조립 공정은 신성장 원천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말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국내에서 전기차 공장을 지을 때 받는 세액공제 혜택은 여전히 1%라는 얘기다.

문제는 부족한 생산시설 인센티브가 누적될 경우 향후 국내 전기차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자동차 소비자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전기차에 대한 거부감이 낮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가 전세계 주요 자동차 시장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글로벌 자동차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전기차(하이브리드·플러그인 하이브리드·전기차)를 다음 차량으로 사겠다고 답한 한국 소비자의 비율은 57%로 가솔린·디젤(38%)을 크게 앞섰다. 순수 전기차만 놓고 보며 한국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17%로 중국(27%)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권은경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산업연구실장은 “한국 소비자들은 글로벌 주요 국가와 비교할 때 친환경차에 대한 관심이 높고 전기차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 “전기차 인프라 개선에 따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이 울산공장(20만대), 화성(10만대), 광명(15만대) 등 전기차 전용공장을 완성하면 연간 45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보유한다. 하지만 국내 전기차 생산의 절반 정도를 수출하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내수 전기차는 연 22~23만대 정도에 그친다. 이 때문에 충전 인프라 확충과 전기차 가격 인하 등으로 내수 전기차가 확대되면 부족한 공급을 해외 공장에서 들여오거나 수입 전기차로 대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가 2030년 온실가스감축(NDC) 목표 달성을 위해 설정한 내수 전기차 450만대(누적) 보급 계획도 지금과 같은 투자 환경에선 실현 가능성이 낮다.

태국·인니도 법인세 면제로 다국적 기업 ‘구애’

태국·인도네시아 등 신흥 국가의 투자 환경이 한국보다 낫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까지 흘러나온다. 두 국가는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전기차 제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데다 전기차 생산시설에 대한 과감한 세제 혜택으로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태국은 2020년 10월부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와 순수 전기차(BEV)를 생산하는 기업에게 법인세를 면제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태국 국영에너지그룹인 PTT는 대만 폭스콘과 합작회사인 호라이즌 플러스를 설립하고 2024년까지 20만대 규모의 전기차를 생산 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중국의 전기차 회사 비야디도 해외 첫 전기차 공장 건설 국가로 태국을 점찍었다.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니켈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인도네시아도 전기차 공장 유치에 적극적이다. 인도네시아는 투자 규모에 따라 짧게는 5년, 20년까지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인력난까지 심각해 국내 투자 매력도 떨어져
현대차그룹 싱가포르혁신센터 조감도. 사진 제공=현대차그룹

국내 자동차 산업의 미래차 전환을 위해서는 인력 문제도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완성차 회사들이 전기차 생산을 확대하려면 연구개발(R&D)이나 소프트웨어 등 우수 인재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계가 산업 재편을 도외시한 채 미래차 인재 양성에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미래차 분야 산업 기술 인력 수요는 2020년 기준 7만 2326명에서 2030년 10만 7551명으로 연 평균 4%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0년간 3만 명 이상의 추가 수요가 발생한다고 정부는 예측했다. 특히 대졸 이상의 고급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수도권 대학 중 미래차 관련 학과를 세운 곳은 고려대·국민대·평택대·한양대·건국대·인하대·아주대·신한대 등 8개 대학에 그친다. 매년 모집하는 인원도 올해 정시 기준 117명에 불과했다.

대학이 미래차 전환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정부에서는 그나마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인력 부족에 대응하려고 하는데 대학이 문제가 많다”면서 “과거 기계공학과 출신 교수들이 미래차 전공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고 상당수 대학에서는 가르칠 교수가 아예 없다”고 전했다. 민간과 정부에서 미래차 전환에 힘쓰고 있지만 대학이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국내 완성차 업계도 해외에서 인력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차의 글로벌혁신센터(HMGICS)다. 4월 싱가포르에 준공하는 시설로 다품종 소량 생산 실험을 추진하게 된다. 우수 인력들이 미래차의 기획과 R&D 등 새로운 시도에 나서는 ‘미래 공장’인 셈이다.

현대차가 사실상 자동차 생산 인프라가 없는 싱가포르에 이러한 시설을 세운 것은 현지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위함으로 분석된다. 세계인적자원경쟁력지수(GTCI)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지난해 기준 인재 경쟁력 지수에서 전 세계 133국 가운데 스위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특히 정보기술(IT) 수용도가 높아 우수한 디지털 인재를 확보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 미래항공모빌리티(AAM)·자율주행 등 신(新)사업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싱가포르를 택한 배경으로 꼽힌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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