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뜨거워진 강원연극, 무대에 펼치는 시대 자화상

김여진 2023. 3.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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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강원연극제 내일 강릉 개막
내달 2일까지 9개 작품 경합
가족극 주류 속 노인·이웃 조명
16년만 출전 극단 등도 눈길
대상팀 6월 대한민국 연극제로

2023강원연극제가 22일 개막, 내달 2일까지 강릉에서 열린다. 올해 40회째를 맞는 강원연극제에는 지역 극단 9곳이 강릉 작은공연장 ‘단’과 단오제전수교육관 무대에 올라 경합한다.

특히 일상회복 본격화에 따른 각 극단들의 활동 재개와 새로운 도전이 눈에 띈다. 먼저 태백의 동그라미가 활동 공백을 깨고 극단 재정비를 거쳐 무려 16년 만에 연극제에 도전한다. 춘천지역 극단의 출전도 오랜만에 성사됐다. 그간 없었던 춘천시의 지원금이 마련되면서 춘천연극협회가 내부 협의를 거쳐 출품작을 선정했다. 2019년 창단한 속초의 하늘천땅지도 출전한다.

다양한 상황에 처한 에피소드를 그리는 가족극이 가장 많은 가운데 범죄수사와 이웃갈등, 그리스 비극과 국내 대표 희곡까지 범위가 넓다. 납북귀환어부, 실향민 등의 소재도 다뤄진다.

강릉 백향시어터의 ‘만선’(연출 권대혁·작가 김원)에서는 무대 위에 표류하는 배 한 척을 만날 수 있다. 배에는 치매 걸린 할아버지, 팔 다리를 하나씩 잃은 아버지, 장애가 있는 딸, 지명수배가 된 비리경찰 아들 등 삶의 의욕을 잃은 가족들이 올라타 있다. 서로를 밧줄로 묶은 후 망망대해로 나간 가족의 모습을 통해 성난 파도와 고요한 심해를 오가는 듯한 감정과 가족애를 다룬다.

원주 씨어터컴퍼니웃끼의 ‘아버지의 상자(연출 최창규·작가 이석표)’는 같은 띠의 3대 대가족 이야기다. 아버지가 소중히 여기는 상자, 나이 차가 많은 남매 등의 소재와 설정 속에 아버지와 딸·며느리, 할아버지와 손주 간 갈등 등이 전개된다. 누구나 마주하는 세대 간 불통을 엿보며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다. 코로나이후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난 가족의 의미를 담는다.

속초 파람불의 ‘옥이가 오면(연출 손건우·작가 이선희)’은 가족극이다. 치매 노인을 부양하기 위해 개인 간병인 ‘옥이’가 한 가족에 방문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노인을 통해 실향민의 아픔을 보여주고, 노인돌봄문제도 극으로 풀었다. 간병 분담을 고민하던 가족은 ‘옥이’를 고용했지만 치매 걸린 ‘황노인’이 그를 과거 연정을 품었던 이로 착각하며새 국면을 맞는다.

속초 하늘천땅지는 황석영 소설가의 대표 희극 ‘山菊(산국)’(연출 권다림)을 선보인다. 신분철폐를 외쳤던 1907년의 구한말이 배경이다. 지금은 신분제도도 없어지고, 실시간 연락도 가능해졌지만 수저 색깔로 구분짓는 21세기의 현실이 100년전과 다를 것 없다는 고민 속에 올리는 작품이다. 처절히 싸우면서도 굽히지 않는 인물들의 의지를 통해 관객들에게 용기를 준다.

동해 김씨네컴퍼니는 ‘그들만 아는 공소시효’(연출 김민경·작가 김란이)를 통해 평범한 이웃사촌 사이의 일을 그린다. 변두리 주택가에 주인 모를 쌀통이 버려지고, 이때문에 다투게 되자 주민들은 쌀통을 버린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각자 유리한 결말을 위해 모이고 흩어지는 이웃들의 분위기는 갈수록 서늘해지고, 사건의 공소시효를 설정해 가는 과정을 궁금하게 만든다.

속초 청봉은 바다를 마주한 선술 카페를 배경으로 숨죽여 살아야 했던 납북귀환어부의 아픔을 전한다. 작품 ‘에니그마(Enigma)’(연출 김일태·작가 양재천)는 풀리지 않는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는 수수께끼 같은 세상을 그린다. “흩어져 있던 수많은 조각들을 모아 퍼즐을 맞춰 간다”는 연출의 말처럼 SNS 속 수많은 정보와 공허함, 조작과 불신,현실과 상상을 한데 담는다.

삼척 극단 신예는 범죄수사극 ‘숨바꼭질’(연출 김상덕)을 선보인다. 한 형사의 살인범 추격기를 담았다. 동생의 사망소식을 듣게 된 주인공 ‘서형사’. 이후 실종 사건 등 각종 범죄를 쫓는 그는 모든 사건이 1명에 의한 범죄라는 단서를 찾아가며 수사망을 좁혀간다. 밝혀내는 실마리 끝에는 동생이 죽은 이유가 서 있다. 유영철 사건일지를 모티브로 한 픽션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땀도 조명한다.

춘천 art-3 씨어터는 그리스 비극의 정수인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연출 정은경)를 올린다. 오이디푸스 왕가의 혈육 간 전쟁을 배경으로 한 2500년 전 작품에서 현대인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다. 자신의 신념만을 주장하다가 비참한 끝을 마주하는 안티고네와 크레온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오만함, 어리석음을 꾸짖는다. 김주홍과 노름마치의 연주가 함께 한다.

태백 동그라미는 ‘다시 봄날’(연출 홍현정·작가 김미아)을 공연한다. 다른 사연을 갖고 청춘하우스에 모여 사는 세 할머니의 전국노래자랑 도전기다. 인생 2막을 열정적으로 여는 주인공들을 보며 잊었던 꿈을 다시 꺼내보도록 돕는다. 노년은 곧 우리가 마주할 미래임을 깨닫고 세대 공감을 유도한다. 40년 역사의 동그라미는 이번 무대를 극단의 2막, 부활의 계기로 삼겠다는 각오다.

이번 대회는 한국연극협회 강원지회가 주최하고 강릉지부가 주관하며 강원도와 도의회, 강원예총, 강원도민일보 등이 후원한다. 대한민국연극제 강원 예선대회로서 대상팀은 오는 6월 제주에서 열리는 대한민국연극제에 도대표로 출전한다. 김여진·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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