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병역 비리

최동열 2023. 3.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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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내리 6선을 지내고, 대선 후보로도 나섰던 존 매케인.

그는 월남전에서 5년 넘게 포로 생활을 하며 지독한 고문 후유증에 평생 시달렸다.

해군 제독을 지낸 조(祖)·부(父)의 뒤를 이어 조종사로 베트남 전에 참전한 그는 1967년 하노이 폭격 임무를 수행하다가 격추당해 5년 넘게 혹독한 포로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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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내리 6선을 지내고, 대선 후보로도 나섰던 존 매케인. 그는 월남전에서 5년 넘게 포로 생활을 하며 지독한 고문 후유증에 평생 시달렸다. 해군 제독을 지낸 조(祖)·부(父)의 뒤를 이어 조종사로 베트남 전에 참전한 그는 1967년 하노이 폭격 임무를 수행하다가 격추당해 5년 넘게 혹독한 포로 생활을 했다. 그때 그의 아버지 매케인 2세가 태평양함대사령관이라는 것을 알게 된 월맹군이 협상 카드로 석방을 제안했을 때 그의 아버지가 한 말도 유명하다. “먼저 잡힌 포로부터 풀어줘라.” 월맹군의 제안을 거절한 아버지는 오히려 하노이 폭격 명령을 내렸다.

중국 공산당 초대 주석을 지낸 마오쩌둥의 맏아들 마오안잉(毛岸英). 그는 1950년 11월 25일 북한 평안북도 동창군 대유동에서 죽었다. 나이 28세, 결혼 1년 만이었다. 마오안잉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됐을 때 군(軍) 수뇌부는 만류했으나 마오쩌둥은 “내 아들이 참전하지 않으면 누가 전쟁터에 간다는 말인가”라며 말리지 않았고, 전사 소식을 듣고는 “다른 병사들도 시신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북한 현지에 매장토록 했다.

매케인과 마오안잉은 모두 부모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세칭 로열패밀리였지만, 전쟁터에서 불구가 되거나 사망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사회지도층일수록 공동체에 더 큰 책임을 진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울림이 적지 않다.

여기서 또 다른 장면을 한번 소환해 보자. 조선왕조실록에는 영조 때 한 대신이 임금 앞에서 한 말이 이렇게 기록돼 있다. “사대부는 백대(百代)가 지나더라도 군역(軍役)을 지지 않습니다.” 조선 후기 병역 의무가 양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임금 면전에서 강조한 것이다.

병역 면탈에 온갖 꼼수를 동원하고, 나중에는 양반은 아예 군역에서 빠지는 관행까지 만들어 낸 조선 양반사회의 무책임이 전염된 것인가.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간 재판에 넘겨진 병역면탈자가 109명에 달한다고 한다. 연예인과 프로운동선수, 의사, 변호사·한의사 자녀 등 사회지도층이 상당수 포함됐다. 혀를 찰 노릇이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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