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직원 '다다다다' 설명, 눈높이 안 맞는 진열대 불편해요"
어르신들이 서비스 업장에서 겪는 고충은
편집자주
2년 후 한국은 고령화 과정의 최종단계인 초고령사회(65세 이상 비율이 20% 이상)에 진입합니다. 고령자도 경제활동의 중요 주체가 돼야 하는 인구구조죠. 하지만 외국어가 난무하고 무인 키오스크가 지배하는 국내 서비스 업장은 어르신에게 너무 불친절한 곳입니다. 소비활동의 주축이 될 고령자들이 좀 더 편리하게 이용할 환경을 만들 순 없을까요? 한국일보가 어르신의 고충을 직접 듣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어르신 친화 서비스’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봤습니다.
※ [1000만 고령고객, 매뉴얼이 없다 ①-1] "The Limited, Pick Up, 득템... 무슨 말이죠?" 할머니는 장보기가 두렵다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1509310003029 )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국내 고령 소비자 절반 이상은 '75세'를 노인으로 들어가는 경계 나이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 소비자의 80%이상은 서비스를 담당하는 젊은 직원의 말이 너무 빠르고 목소리 톤이 높아서, 금융기관이나 식당 등의 이용을 힘들어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진열대가 높아 상품을 찾거나 꺼내는 일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는 2일부터 7일까지 수도권과 비수도권 거주 고령층 100명을 상대로 소비생활과 관련한 심층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본보는 민간분야 6대 서비스(①식품·외식 ②의료 ③금융 ④주거 ⑤의류·미용 ⑥교통·통신·여가)를 일상에서 마주하는 13개 상황으로 나눈 뒤, 총 113개의 문항을 통해 각 서비스 이용 시 느끼는 편안함 또는 불편함 등을 물었다. 심층설문에는 △성남시니어산업혁신센터의 고령친화상품 평가단인 '액티브시니어리빙랩지원단' 30명 △서울 종로구 소재 실버전용공간 '추억을파는극장' 이용객 24명 △충북 충주시 성내충인동 고령 거주자 30명 △서울 서초구 고령 거주자 26명 등이 참여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56%는 고령 소비자로 분류되는 나이를 '75세 이상부터'라고 선택했다. 정부가 정한 공식 기준에 따르면 65세부터 고령층으로 분류되지만, 실제 고령층 스스로는 60대와 70대 초반의 나이를 '노년'이 아닌 '중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결과다.
조사 대상 고령층의 절반 이상은 일상생활의 디지털 활동 10가지 중 △휴대폰 문자 주고 받기 △스마트폰 사진 촬영 △온라인으로 음악 듣기 △온라인으로 동영상 보기 △온라인 메신저 주고받기 등 5가지를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온라인 쇼핑 △스마트뱅킹 △ 교통 애플리케이션 사용 △QR코드 활용 등 4가지 활동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답한 고령층은 50% 미만이었다. 인터넷 정보검색의 경우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응답과 불가능하다는 응답이 정확히 50대50으로 나뉘었다.
고령 고객의 대다수는 서비스 업장 직원의 말이 너무 빠르고 음성도 높아 서비스 관련 설명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특히 식당에 갔을 때 87%의 고령고객은 "직원이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한 적이 10번 중 5번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80%는 "매장의 배경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종업원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들은 적이 10번 중 3번 미만"이라고 했다.
노인 고객은 은행 등 금융기관에 갔을때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10명 중 8명(80%)은 '직원이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한 적이 10번 중 5번 미만'이라고 답했다. 60%는 금융상품 등에 대한 전문용어를 남발해서 안내 설명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대중교통과 병원을 이용할 때도 불편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81%는 대중교통(버스, 지하철, 기차, 비행기) 탑승 시 고령 승객 전담직원에게 서비스 받은 적이 10번 중 5번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병원 방문 시 고령 내원자 전담직원을 본 적이 10번 중 5번 이상이라고 답한 고령층은 13%에 불과했다.
고령층에겐 식재료 고르기 또한 "불편한 경험"이었다. 98%는 대형마트나 전통시장에서 직접 장을 보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식재료의 경우 직접 눈으로 보고 사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 어르신들이 상당수였다. 그러나 장을 볼 때 별도의 휴게공간이 있어서 편안했다는 응답은 19%에 그쳤다. 원하는 물건이 손 닿지 않는 곳에 진열돼 있는 등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고 반응한 고령 고객도 70%로 집계됐다.
소비 현장에서 겪는 불편함에 대해 충북 충주시에 사는 김모(81)씨는 “노인만을 위한 상품을 많이 만들어달라는 게 아니라, 시니어 고객을 응대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비슷한 육체·정신적 상태를 공유하는 노인 직원이 또래 고객을 맞으면 소비생활도 더 편해질 것 같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의 '서비스 설계'가 지나치게 젊은 층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김정근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기업들도 고령 소비자를 겨냥하는 것이 모든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보편적 디자인'의 관점에서 서비스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스마트폰 빠삭한 75세 '젊은 오빠'도... 키오스크는 피하고 싶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1415410004818
▶"우엉을 오와으일아요?" 당신 말은 어르신에겐 이렇게 들린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0218270003042
▶'1000만 고령 고객, 매뉴얼이 없다'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1517460003108
윤현종 기자 belly@hankookilbo.com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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