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박경석이라는 불꽃

기자 입력 2023. 3. 2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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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가는 곳마다 장애인권운동가 박경석 체포 소식이 들렸다. 박경석의 체포 모습은 여느 사례와 달랐다. 수갑이 채워진 채 호송되기는커녕, 범죄자라는 이는 진작 경찰서 앞에 자기 몸을 가두고 있었다. 그는 이미 남대문경찰서 앞에 스스로 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감방을 만들어놓고, 그곳에서 경찰을 마주했다.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그는 오랫동안 서울 시내 경찰서에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여 법 앞에 평등할 것을 외쳐왔다. 그날도 그랬다. 그러나 모든 뉴스는 ‘박경석 체포’라는 문구만 반복해 다뤘다. 화면과 어울리지 않는 자막을 보며 생각했다. 공권력이 필요했던 것은 박경석의 몸뚱이가 아니라, 박경석 ‘체포’라는 문구뿐이었다고. 그는 어디로 도망가지도 않고, 매일 같은 삶을 삶았지만, 체포영장을 받아야만 일망타진의 그림이 성립될 뿐이었다. 그것이 체포 이유의 전부라고 느껴졌다.

지금 이 시점, 박경석은 한국 정치의 가장 뜨거운 불꽃이다. 존재 그 자체가 뜨겁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를 쥐려거나 길들이려는 자는 모두 델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는 사람을 골라가며 온도를 조절하지 않고, 장애인 차별 철폐라는 신념만을 믿으며 활활 타는 불꽃이다. 그의 거침없고 변함없는 뜨거움은 소수자 인권을 이벤트쯤으로 여기던 한국 정치에 거대한 논란의 공론장을 형성했다.

나를 만나는 이들은 전장연과 박경석에 관하여 종종 그런 얘기를 한다. 취지는 좋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그러고는 바른길을 인도한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인식 개선 교육과 같은 작은 아이디어부터 시작해서 부총리 면담을 추진해보겠다는 의기양양한 아이디어까지 마주한다. 아무것도 이루어진 건 없다. 그저 박경석이라는 불꽃이 어딘가에 번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동시에 그 불꽃을 자신이 잘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래된 운동 방식보다 온건한 아이디어가 더 낫다며 호언장담하는 위신의 일부였다.

박경석을 제어하려는 이들은 자신의 외형적 권위를 기반으로 그가 박경석보다 위에 있다거나 통제할 수 있다는 은연중 자신감을 갖는다. 뜻처럼 되지 않으면 이내 그 곁을 떠난다. 나는 그 모습을 수없이 많이 봤다. 떠나는 이들은 그가 거리에서 외치는 시끄러운 장애인권에 더는 개입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오히려 그의 목소리에 어긋나는 정반대 정책을 지지하며 복수한다. 떠나간 이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저마다 한때 장담했던 전문성은 ‘장애인’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통제’의 욕망이었음을 깨닫는다.

한 생애 오롯이 장애인이 함께 살 권리를 구호로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은 채 거리를 지켜온 무식한 박경석이라는 사람, 아니 현상을 둘러싼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기준점이다. 누가 뜨거운 불꽃을 마주할 용기가 남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척도다. 손에 쥘 수 없고, 델 것을 알면서도 꺼지지 않도록 바람을 막아주는 이들.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이들일수록, 그를 옹호할수록 이득보다 손실이 많은 이들일수록, 박경석이라는 사람을 둘러싼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은 당신이 한국 정치에서 누구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 파악하게끔 해줄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일수록 더욱.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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