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교토에서 산 ‘관동팔경’

최선주 동양미술사학회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 입력 2023. 3. 2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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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을 표현한 회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통천 총석정과 강릉 경포대 그림이 있다. 박물관에 있는 대부분 유물이 그러하지만, 이 그림 역시 우여곡절이 있었다. 국립박물관의 유물 수집은 발굴에서 출토된 유물의 국가 귀속, 유물 구입, 기증과 기탁 등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어려운 것이 유물 구매다. 사야 할 분야와 대상을 찾는 것도 일이지만, 유물의 진위를 가리고 가치를 판단해 적정한 가격에 매입하고 박물관 유물로 등록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그리 간단치 않다.

일러스트=허예진

국립중앙박물관 ‘일본실’의 전시 유물을 확보하기 위해 교토(京都)에 조사하러 간 적이 있다.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 고미술품 상점을 한 곳 찾아갔다. 우리 일행을 맞이한 주인은 의외로 젊은 30대였다. 미리 선정해 두었던 작품을 실사한 후 가격을 얘기하자 “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팔아도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주인의 배짱에 놀랐다. 예상치 않게 조선시대 그림 몇 점을 더 보여줬는데, 그중 관동팔경 그림 두 점이 눈에 확 들어왔다. 범상치 않은 작품이었다. 동행했던 큐레이터들과 자료들을 찾아보니, 예상대로 그것들은 관동팔경 그림 중 이른 시기인 16세기 중반에 그려진 작품들로 판명됐다.

'총석정도' /국립중앙박물관

마음이 급해졌다. 당면한 문제는 예산이었다. 다행히도 그때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유물 구입 조건으로 기부한 분이 계셨다. 자수성가한 재일교포로 일본에 고려 불화가 많이 반출돼 있다는 뉴스를 보고 곧바로 박물관에 전화를 걸어 “내가 기부할 테니 꼭 고려 불화를 사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불화를 살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기부자의 동의를 얻어 고려 불화 대신 일본에 있는 총석정과 경포대 작품을 사들여 우리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두 작품이 들어오자마자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특별전’(2019)에 나란히 전시됐다. 이렇게 뜻밖의 행운으로 우리 곁에 돌아온 전시품을 마주할 때면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해외에 뿔뿔이 흩어진 우리 문화재는 22만여 점에 달한다.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유물들이 돌아와 빛을 발해주기를 기원한다.

최선주 전 국립경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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