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감시’ 변호사

최원규 논설위원 2023. 3. 20.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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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2019년 2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에서 김정은과 만나는 동안 미국은 트럼프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의 폭로로 발칵 뒤집혔다. 트럼프의 ‘충견’이자 ‘집사 변호사’로 불렸던 그는 하원 청문회에 나와 “트럼프는 사기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고는 트럼프 지시에 따라 과거 그와의 성관계를 폭로하려던 포르노 배우 등에게 입막음용으로 돈을 건넸다고 폭로했다. 코언은 이 일과 위증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당시 트럼프는 “가짜 뉴스”라고 했지만 이 일로 조만간 기소될 수 있다고 한다. 트럼프도 그렇지만 집사 변호사의 타락을 보여준 코언의 행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라고 다를 게 없다. 2조원대 다단계 사기로 2007년 징역 12년이 확정된 제이유그룹 주수도 전 회장은 3년 8개월간 구치소에서 총 5050번의 변호인 접견을 했다고 한다. 휴일 빼고 하루 평균 다섯 번가량 접견한 셈이다. 교도소를 응접실처럼 쓴 것이다. 접견을 전담하는 집사 변호사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주가 조작 등의 혐의로 구속됐던 이용호씨는 2003년 ‘옥중 경영’을 하다 적발됐다. 구치소에서 변호사가 건네주는 휴대전화와 증권거래 단말기를 이용해 주식거래와 기업 인수합병까지 했다. 이 집사 변호사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잘 드러나진 않지만 법조 브로커가 변호사를 고용해 ‘바지 사장’으로 앉혀 놓고 머슴처럼 부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최근엔 ‘감시’ 변호사 의혹까지 등장했다. 대장동 사건 핵심 인물인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이 법정에서 “(민주당에서) 보내준 변호사들이 저를 위하지 않고 다른 행동을 했다”고 증언하면서 불거진 의혹이다. 이들 변호사가 작년 국정감사 때 김의겸 민주당 의원과 통화한 것이 알려지자 유씨는 “가짜 변호사들이 나를 정치에 이용했다”고 했다. 극단 선택을 한 김문기 전 성남도개공 개발1처장 유족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고 한다. 검찰도 이들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위해 유씨 등이 진술을 하지 못하게 감시하거나 진술 내용을 이 대표 측에 전달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사실이면 업무상 비밀 누설죄다. 범죄 여부를 떠나 변호사법이 규정한 변호사의 사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다. 변호사법 제1조가 ‘사회정의의 실현’이다. 다른 전문직과 달리 이를 첫머리에 내건 것은 법 기능공이 되지 말라는 취지다. 감시 변호사는 정당에 잘 보여 나중에 공천이라도 받아보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의뢰인을 돕지 않고 감시하는 변호사라니 정말 한국엔 없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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