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공 든 범생이들, 56년만에 ‘3월의 반란’

이영빈 기자 2023. 3. 20.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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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대 선수들이 19일 미주리대와의 NCAA(미국대학스포츠협회) 남자 농구 32강전에서 78대63으로 승리한 뒤 라커룸에서 샴페인 파티를 벌이고 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16강에 진출한 프린스턴대는 25일 크레이튼대와 벌이는 대결에서 한 번 더 이변을 꿈꾼다./NCAA 트위터

약팀이 강팀을 잡아낼 수 있는 농구 전술이 있다. 바로 ‘프린스턴 오펜스(Princeton Offence)’. 아이비리그에 속한 명문대인 프린스턴은 학업 성적이 좋아야 하고, 체육 장학금을 따로 지급하지 않는 탓에 좋은 선수가 몰리지 않는다. 그래서 1967년부터 21년 동안 프린스턴대 지휘봉을 잡았던 피트 캐릴(2022년 사망) 감독은 개인 능력이 필요 없는 전술을 고안해 냈다. 드리블을 최소화하고 패스로만 골대 가까이로 전진하는 방식이다. 프린스턴 학생들은 부족한 개인 역량 대신 명석한 이해력을 갖췄기에 이를 쉽게 체화해냈다.

이 전술은 대학 무대를 넘어 2000년대 미프로농구(NBA)를 주름잡았다. 자존심 강한 명문팀 LA레이커스부터 새크라멘토 킹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휴스턴 로키츠 등 여러 팀들이 프린스턴 오펜스를 응용한 전술을 채택했다. 국내 프로리그인 한국농구연맹(KBL)의 부산 KT(현 수원 KT)가 2010-2011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쥘 때 주로 사용했던 전술이 프린스턴 오펜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불어온 3점슛 열풍에 밀려 고루하다는 취급을 받았다.

그런 프린스턴 오펜스가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프린스턴대가 올해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남자 농구 토너먼트 ‘3월의 광란(March Madness)’에서 ‘범생이들의 반란’을 일으키면서다.

프린스턴대는 지난 17일 NCAA 남자 농구 토너먼트 64강전에서 AP(현지 기자단 투표) 랭킹 8위 팀인 애리조나대를 59대55로 물리쳤고, 19일 32강전에서는 미주리대(23위)를 78대63으로 꺾으면서 56년 만에 16강에 올랐다. 아이비리그 대학으로선 13년 만이다. AP 랭킹은 25위까지만 집계하는 탓에 프린스턴대는 따로 순위가 없다. 그만큼 기대와 동떨어진 팀이었는데, 전미를 놀라게 한 것이다.

17일 64강전에서 애리조나 대학을 꺽은 프린스턴 타이거즈 선수들이 환호하는 모습./Kyle Terada-USA투데이스포츠 연합뉴스

프린스턴대 돌풍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2011년부터 모교 지휘봉을 잡고 있는 미치 헨더슨(48) 감독이다. 그는 1996년 프린스턴대가 전년도 토너먼트 우승팀이었던 강호 UCLA를 43대41로 꺾는 NCAA 역사상 최대 이변을 일으켰을 때의 주역이기도 하다. 당시 피트 캐릴 전 감독에게 팀 플레이의 소중함을 배웠다고 한다.

2011년부터 모교 사령탑에 오른 헨더슨 감독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절제다. 한 명이라도 욕심을 내면 어그러지는 프린스턴 오펜스를 이해시키기 위해 “자신을 통제(control)하고, 또 통제하라”라는 말을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한다고 한다.

헨더슨 감독의 뜻을 코트 위에서 제일 잘 수행하는 선수는 포워드 토산 에와마(22)다. 영국 뉴캐슬에서 나고 자란 에와마는 프린스턴대 스카우트팀의 눈에 띄어 2019년 입학했다. 졸업반인 에와마는 경기당 평균 14.8점 6.3리바운드로 크게 뛰어나지 않지만, 이리저리 지시하고 패스하며 물 흐르는 듯한 공격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피트 캐릴 전 감독이 지난해 사망하기 전 에와마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프린스턴대 감독 미치 핸더슨 /USA투데이스포츠 연합뉴스

주전 가드 블레이크 피터스는 16강 진출을 확정하고 “우리는 코트 위에 나가서 서로 절대적으로 믿으며 뛰었다”며 “신뢰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헨더슨 감독은 “누구도 두렵지 않다. 우리는 프린스턴의 농구를 펼친다”라고 했다.

프린스턴대가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갈지는 알 수 없다. 프린스턴대는 25일 크레이튼대와 16강전을 치른다. 213㎝의 장신 센터 라이언 카크브레너(21)가 버티고 있는 강팀이다. 미국 CBS 스포츠는 “객관적인 전력은 당연히 프린스턴대가 열세지만, 지난 주말처럼 경기가 진행된다면 결과는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명의 페어레이 디킨슨대 역시 지난 18일 프린스턴대와 비슷한 파란을 일으켰다. 64강전에서 우승 후보였던 퍼듀대(AP랭킹 3위)를 63대58로 물리쳤다. 하지만 20일 32강전에서 플로리다 애틀랜틱대에 70대78로 지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토빈 앤더슨 디킨슨대 감독은 “지는 건 언제나 행복하지 않다”라며 “언젠가 다시 여기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3월의 광란(March Madness)

3월 개막하는 NCAA(미국대학스포츠협회) 남자 농구 토너먼트는 재학생과 동문, 그리고 지역 주민까지 가세해 펼치는 응원 열기에 예측 불가의 이변이 속출해 ‘3월의 광란(March Madness)’이라 불린다. 인기가 프로 스포츠 못지않아 초당 중계 광고료가 미프로농구(NBA) 플레이오프의 약 3배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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