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푸틴 체포영장’으로 본 우크라 아이들의 러 불법이주 실상
13세 아이에게 동생들의 양육권에 동의하라 강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우크라이나 아동들을 러시아로 불법 이주시킨 혐의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점령지 아이들에 대한 ‘구조’를 빙자해 러시아가 ‘납치’를 저지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는 전쟁고아뿐 아니라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러시아로 이주시킨 뒤, 아동들에게 양육권 요청 동의서에 서명하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1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세 아이와 생이별을 했다가 가까스로 재회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주민 예브헨 메제비(40)의 사연을 전했다. 크레인 운전기사로 일하며 세 아이를 홀로 키우던 메제비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 아이와 함께 병원 방공호 등을 전전하며 대피 생활을 했다. 지난해 3월17일 러시아군이 도시의 방어선을 돌파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13세 아들 마트비가 병원 방공호에서 자고 있는 그를 흔들어 깨웠다. “아빠, 계단에 러시아 군인들이 있어요….”
마리우폴은 전쟁 초기 잔혹한 전쟁범죄로 민간인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곳이다. 러시아 군인들이 병원 방공호에 들이닥친 날, 러시아군은 민간인들이 대피해 있던 마리우폴 극장에도 무차별 포격을 가해 600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극장 앞에는 아이들이 피신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러시아어로 ‘어린이들(дети)’이라고 쓰인 표식이 있었다.
러시아군에 체포된 메제비는 45일 만에 풀려났지만 그사이 큰아들과 9세·7세 두 딸의 행방이 묘연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결과 아이들이 모스크바의 ‘수용소’로 옮겨진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는 “점령지에서 러시아로 건너가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면서 “(수용소를 운영하는) 러시아 아동옴부즈맨 사무소는 아이들을 데려가려면 친러 반군 공화국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사회복지서비스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아동옴부즈맨 사무소는 푸틴 대통령과 함께 ICC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러시아 아동인권 담당 위원 마리야 리보바벨로바가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메제비는 마리우폴로 돌아가지 않고 현재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살고 있다.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푸틴 대통령이 마리우폴을 방문한 사실에 분노한 그는 “(러시아는) 고작 열세 살 어린아이에게 자신과 여동생들에 대한 양육권 요청서에 서명하도록 했다”면서 “지금도 나와 내 아이들이 겪은 일을 믿을 수 없지만, 나는 아이들을 되찾았고 다행히 우리는 함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전쟁 발발 후 어린이 1만6000명 이상이 납치돼 러시아로 보내졌다. 이들은 고아원에 보내지거나 러시아 가정에 입양됐다. 리보바벨로바 역시 아동 18명을 입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메제비처럼 부모가 아이들을 찾아 우크라이나로 다시 송환된 아이는 119명에 불과하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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