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연계’에만 쏠려…기초학문 무너질라[윤석열 정부 교육 개혁 1년]

남지원 기자 2023. 3. 2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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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살릴 대학만 살리겠다” 지방대 향한 메시지
라이즈·글로컬대학 ‘지역 산업의 연계’에 방점
“대학의 자율성 위축·학문의 다양성 훼손” 우려
수도권 대학 정원 문제는 손 못 대 ‘쏠림’ 가속화

“교육부는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 교육부의 첫 번째 임무는 산업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다.”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현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을 관통한다.

윤석열 정부는 첫 고등교육 관련 정책으로 첨단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는 방안인 ‘반도체 인재양성 전략’을 내놨다. ‘대학 자율성’을 강조해온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취임 후 이 기조는 지자체에 대학 지원 권한을 이양하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라이즈)와 일부 지방대에 지원을 몰아주는 글로컬대학 정책으로 이어졌다.

두 사업의 취지는 비수도권 대학과 지역이 동시에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방대의 위기’가 현실화한 상황에서 대학정책의 중심을 비수도권 대학에 놓은 것 자체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그 방법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라이즈 사업으로 2025년부터 연간 2조원 규모의 교육부 재정지원사업 집행 권한이 지자체로 넘어가는데, 오히려 대학의 자율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홍창남 부산대 교수는 “대학과의 협력 경험이 적은 지자체가 관리감독기관이 되면 시·도지사의 성향에 따라 대학 지원이 정치화되거나 대학을 더 압박하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 30곳을 골라 1개교당 5년간 1000억원이라는 ‘역대급’ 지원을 전제로 대학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글로컬대학 사업은 ‘살아남을 대학만 살리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의 지난해 추계에 따르면 대학 입학 가능 인원은 2021년 43만명에서 2040년 28만명으로 줄어든다. 2021년 수도권과 지방국립대 입학정원이 약 26만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산술적으로 글로컬대학 선정에서 밀린 지방대는 살아남기 어렵다.

라이즈와 글로컬대학 모두 ‘산업과의 연계’에 방점을 찍고 있다. 라이즈는 사업 목적 자체가 지자체·대학·지역산업의 연계를 강화해 지역과 대학이 동반성장하는 것이고, 글로컬대학의 목표도 지역산업과 연계된 특화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산업수요 중심의 대학 육성을 강조하는 라이즈와 글로컬대학 사업으로 학문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기초학문 연구 기능이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BK21이나 대학혁신지원사업, 인물학술연구 R&D 등 다른 정책을 통해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반면 김병국 대학노조 정책실장은 “글로컬이나 라이즈 사업에 재원을 투여하는 반면 기초학문 지원·육성에 들어가는 예산이 적은 것은 정부의 정책 비중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 정책은 대학을 산업의 하부구조로 보고 있고, 산업과 연계되지 않는 학과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지방대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책들을 내놓으면서 수도권 대학 정원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종로학원 자료를 보면 수능 응시 인원은 2013학년도 62만1336명에서 2023학년도 44만7669명으로 10년간 28%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 소재 주요 대학 10곳의 입학정원은 1만1088명에서 1만1511명으로 3.8% 늘었고 지방권 일반대학 모집정원은 23만8180명에서 21만3789명으로 10.2% 줄었다. 지방대만 구조조정 되고 상위권 대학 정원은 늘어나면서 서울권 대학 쏠림 현상이 더욱 가속화됐다.

교지와 교사 기준 완화, 교수 채용 기준 완화 등 대대적 규제 완화를 포함한 대학 설립·운영규정 개정에도 고등교육계의 우려가 쏟아진다. ‘공공적 고등교육정책을 요구하는 전국교수연대회의’는 최근 성명에서 “많은 사학이 기준을 채우고 남는 유휴자산을 자유롭게 상업시설로 전환하거나 매각해 교육과 연구가 아니라 법인과 사학 소유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쓸 수 있고, 사리사욕을 위해 대학을 통폐합하는 일도 쉬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지난 15일 친윤계 공부모임 ‘국민공감’ 강의에서 “우리나라처럼 사학의 자유를 국가가 억압하는 나라를 찾기 힘들다”며 고등교육법과 사립학교법을 전면 개정하겠다고도 예고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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