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국무회의 날 고건 총리한테 ‘정면 경고’ 받은 까닭은”

한겨레 2023. 3. 20.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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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7화-포석의 어려움

초대 내각 구성을 보면,

경제 부처는 보수관료 일명 ‘늘공’

비경제 부처는 개혁파 ‘어공’

두 갈래로 확연히 갈라졌다.

노 대통령은 보기와 달리

중요한 인사나 정책 결정에는

대단히 신중하고 조심성이 많았다.

2003년 3월3일

서울시장의 국무회의 배석을 없앴다.

그 다음날 오후

고건 총리가 나에게

전화로 항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2월26일 청와대 집현실에서 전날 임명장을 받은 수석보좌관들과 첫 회의를 하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유인태 정무수석, 나종일 국가안보보좌관, 박주현 국민참여수석, 문희상 비서실장, 노 대통령, 이정우 정책실장, 문재인 민정수석, 김희상 국방보좌관 등이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3년 2월26일(수) 아침, 평생 처음 관용차로 출근을 했다. 오전 8시 노무현 대통령 주재 첫 수석회의가 열렸다. 대통령은 제1성으로 대구 지하철 참사에 애도와 유감을 표시했다, 사후 대책 담당을 민정수석실에서 정책실로 총괄 이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대통령은 사고 수습은 역시 민정수석실이 맞겠다고 수정했다. 그래서 정부청사 별관 18층의 민정수석실에 들러 담당이 바뀌었음을 통보해주었다. 그리고 4층으로 내려갔더니 불과 며칠 전까지 도떼기시장 같았던 인수위 공간이 고요하기가 절간 같았다. 재경부에서 파견 나와 두 달간 도와주었던 이연희씨 혼자 방 정리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꾼의 괴로움은 모른다’(人知坐輿樂 不識肩輿苦)라는 다산의 말이 생각났다.

2003년 2월26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첫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희상 국방보좌관, 문재인 민정수석, 이정우 정책실장, 노 대통령, 나종일 국가안보보좌관. 노무현사료관 제공

이어 오후 3시 대통령 취임 축하객으로 온 (푸틴 측근이라고 하는) 러시아의 가스프롬 사장과 면담을 했다. 나이가 불과 41살. 함께 온 주한 러시아 대사도 40대로 아주 젊었다. 가스프롬의 직원 숫자가 무려 36만명이라고 해서 놀랐다. 과거 다수 국영기업이 민영화했지만 옛 소련의 대기업, 대공장 모델의 잔재가 남아 있다. 스탈린은 한때 이렇게 명령한 걸로 유명하다. “달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공장을 지어라!” 소련 경제가 망한 이유 중 하나는 대기업, 대공장에 대한 집착이다. 그 바람에 운영의 유연성과 효율성이 떨어지고 고비용이 초래됐다. 기업에는 적정 규모라는 게 있는데 사회주의경제는 그걸 무시한 것이다.

2월27일(목) 아침 일찍 고건 총리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했다. 참여정부 초대 총리를 누가 맡을지 만인의 관심사였다. 여러 명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일찌감치 고건 총리로 정해졌다. 고건 총리는 평생 수많은 관직을 두루 거친 ‘행정의 달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세간에선 ‘개혁 대통령’에 ‘안정 총리’라고 해석했다. 초대 내각 구성을 보면, 경제 부처는 보수관료 일명 늘공(늘 공무원), 비경제 부처는 개혁파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확연히 갈라졌다. 전자에는 재경부 김진표, 산자부 윤진식, 정통부 진대제, 건교부 최종찬, 기획예산처 박봉흠 등이 임명됐고, 후자에는 교육부 윤덕홍, 노동부 권기홍, 환경부 한명숙, 문화관광부 이창동, 여성부 지은희 등이 포진했다. 이런 분업은 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즉, 경제 분야는 경험 많고 안정감 있는 관료에게 맡기되 사회 분야는 개혁파에 맡긴다는 구상이다. 그 대신 경제 부처이지만 경제검찰이라 불리는 공정거래위, 금융감독위는 부처 성격에 맞게 개혁적 인사를 기용하려고 꽤 고심했다. 공정거래위원장은 개혁파 학자 강철규로 일찍 정해졌고, 금융감독위원장은 난산이었다.

2월27일 정부종합청사에서 고건 국무총리 취임식을 마치고 초대 내각 장관들이 전체 기념촬영을 했다. 앞줄 왼쪽부터 김두관 행자, 조영길 국방, 강금실 법무, 김진표 재경, 고 총리, 정세현 통일, 김화중 보건복지, 깅영진 농림, 진대제 정통부 장관. 둘째줄 왼쪽부터 이창동 문화, 윤진식 산자, 지은희 여성, 한명숙 환경, 윤영관 외교, (한사람 건너) 권기홍 노동,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 등이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노 대통령의 개혁적 성향이 인사에 반영된 것은 사회 부처였고, 경제 부처는 그렇지 못했다. 이는 노대통령의 성격이 보기와는 달리 온건하고 조심성이 많음을 보여준다. 흔히 사람들은 노 대통령이 급진적, 격정적 성격이라고 생각하는데, 대중연설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 국정 운영상 중요한 인사나 정책 결정에는 대단히 신중하고 조심성이 많았다. 노 대통령의 철학은 약자에 대한 동정심이 강하고 효율보다는 공평과 정의를 추구하는 전형적 진보 성향이지만 동시에 개혁 일변도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굉장히 조심했다. 그리고 과거에 진보적 이념서적을 많이 읽었지만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이념적 진보, 틀에 박힌 진보는 불신했다.

결과적으로 참여정부 초대 내각은 진보와 보수의 조화로 이루어졌다. 진보 대통령에 보수 총리, 보수 경제부처에 진보 사회부처, 보수 부총리에 진보 정책실장, 이런 식이다. 당시 보수언론에서는 걸핏 하면 참여정부 인사를 ‘코드 인사’라고 공격해댔는데, 실제 인사 내용을 보면 전혀 코드인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조화, 타협으로 가다 보니 국정이 종종 삐거덕거렸고, 그게 참여정부의 한계였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부는 100% 보수 인사로 채우는데도 보수언론은 절대로 코드 인사를 비판하지 않는다. 일관성이 전혀 없다. 언론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총리 취임식에 바로 이어 오전 9시 대통령 주재 수석회의가 열렸다. 노 대통령이 길게 발언했다. “국정 전반은 정책실이 아니라 총리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국정과제위원회에 전념하겠다. 단, 긴급 상황, 부처 갈등 상황은 파악해야 한다. 제목만 관리하고 있다가 총리가 보고해주면 대통령이 총리에게 의견을 주겠다. 국정 중심은 정책이 아니고, 정치다. 정치적 관점에서 비서실장이 관장하라. 정책실은 상황만 파악하고 지켜보기만 하라. 정책실은 장기 정책과제 중심으로 가야 한다,” 이는 앞으로 참여정부 운영에 대한 기본원칙의 천명이었다. 이 원칙은 6회에서 소개한 책 <대통령의 성공조건>에 나온 것인데, 나는 이때까지 이 책을 읽지 않아 대통령 발언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국무회의 운영안이 의제로 올라온 데 대해서 대통령은 “이것은 수석회의에 올릴만한 안건이 못된다. 매주 ‘통과의례’ 국무회의를 마친 뒤 ‘테마’ 국무회의를 갖자. 수석들도 의제를 제안할 수 있다. 외부 전문가도 참석시키자, 예를 들어 오전 9-10시는 통과 국무회의, 10-12시 (뿌리뽑는) 테마 국무회의, 이렇게 하면 좋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토론을 좋아하는 노 대통령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3월3일(월) 오전 9시 대통령 주재 수석회의에서 국무회의 참석 범위를 토론했다. 정책실장, 국가안보보좌관, 금감위원장을 배석자에 추가했다, 지난 정부 시절 어느 인사가 고의로 금감위원장 배석을 막았다고 하니 기가 찼다. 그리고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로 서울시장과 통상교섭본부장이 배석해왔으나 내가 ”지자체장 중 유독 서울시장만 참석할 이유가 없으니 서울시장도 빼는 게 맞다고 봅니다“라고 하니 대통령도 동의하여 본인 양해 하에 빼는 걸로 결론이 났다. 이때는 이명박 시장이 국무회의에 배석하고 있었다. 오후에 권오규 정책수석이 서울시 부시장과 통화했다. 서울시는 지자체협의회장 자격으로 배석을 주장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3월4일 노무현(가운데) 대통령이 고건(왼쪽) 총리·김진표(오른쪽) 재경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참여정부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정부기록사진집

3월4일(화)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만 앞줄에 앉고 배석자들은 뒷줄에 앉기로 정했다. 오후에 고건 총리가 나한테 전화해서 국무회의에 서울시장 배석 뺀 것을 항의했다. 짐작컨대 총리 자신이 얼마 전까지 서울시장이었기 때문에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자 고건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정식으로 이야기하겠는데, 그런 문제는 총리하고 의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쯤 되면 정면 경고다. 이런 문제가 바로 앞서 이야기한 청와대와 총리실의 중복, 옥상옥 문제다. 국무회의 의장인 대통령이 배석자 범위를 정한 것인데, 총리하고 다시 의논하라고 하니 일이 복잡해진다.

그날 밤 이의근 경북지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국시장도지사협의회에서 원래 이 지사가 4선 도지사로서 협의회장으로 추대됐지만 국무회의 참석 편의성을 고려하여 서울시에 양보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서울 중심, 지방 소외가 심각한데, 국무회의에 서울시가 배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해결책으로 각 지자체가 윤번제로 참석하는 방안, 현안이 있는 지자체가 참석하는 방안, 부지사가 대신 참석하는 방안 등 여러 가능성을 의논했다. 이 문제는 3월7일(금) 수석회의에서 현안이 있는 지자체 장이 참석하고, 시도지사협의회의 요청이 있으면 대통령이 적극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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