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검사 사외이사’
경향신문이 30대 그룹 주요 상장사 180곳을 조사해보니 새로 선임한 사외이사 8명 중 1명이 전직 검사라고 한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최근 삼성SDS 사외이사로 간 것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대검 차장을 지낸 강남일·구본선 변호사는 각각 HL만도와 한화시스템의 사외이사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이동열 전 서울서부지검장(대한전선·현대위아), 차경환 전 수원지검장(롯데케미칼·현대건설기계), 권순범 전 대구고검장(고려아연), 이상호 전 대전지검장(이마트)도 주요 기업 사외이사에 내정됐다.
사외이사제도의 근본 취지는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재벌 총수와 대기업 경영자의 독단적 기업 운영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사외이사는 기업 경영에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추는 게 기본이다. 외국에서는 금융·회계 전문가나 학자, 퇴직 임원들이 주로 영입된다. 검사 출신이라고 사외이사를 맡지 못할 이유는 없다. 감사나 내부통제에 신뢰감을 주고, 소비자 이익 보호에 일익을 담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검사 출신을 대거 영입하는 목적은 따로 있다. 정권에 줄을 대기 위한 방편으로 검사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검찰의 영향력도 더 커지고 있다. 사외이사제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기대하기는커녕 ‘검경유착’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윤석열 정부의 검사 기용은 이제 열거하기도 지친다. 법제처장과 국가보훈처장 등 내각은 물론 대통령실과 국정원, 금융감독원장 등 권력기관의 주요 자리를 검사 출신으로 채웠다. 민주평통자문회의 사무처장에 대통령 친구이자 검사장 출신을 앉힌 데 이어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국민연금 상근전문위원에까지 검사 출신을 기용했다. 서울대병원 감사에는 검찰 수사관 출신을 들여보냈다. 아들의 학교폭력 전력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까지 검사 출신이 꿰찰 뻔했다.
현 정부에서 공무 담임권은 검사에게 유독 넓게 열려 있다. 검사 출신들은 공직을 채운 것도 모자라 이젠 민간기업의 사외이사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공정과 법치를 앞세워 집권했다. 이것이 공정인가.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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